▲ 소망능선 갈림길에서 장수샘으로 가는 등산로 주변 얼레지 군락지. | ||
목적지는 이름마저 예쁜 가평의 연인산이다. 봄이 붉은 색 꽃봉오리로 맺혀 파도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곳. 바람이 훑고 지나는 산등성이엔 작아 오히려 더 빛나는 들꽃들이 무리 지어 핀다. 인제 점봉산 곰배령이 부럽지 않은 ‘들꽃화원’이다. 철쭉 명소로만 알고 있었던 연인산에 들꽃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얼레지, 양지꽃, 홀아비꽃대, 각시붓꽃, 피나물, 둥굴레…. 눈에 꽃들이 밟히고, 눈 속에서 꽃들이 흔들린다. 어질어 고요한 산에서 산을 모태로 자라는 들꽃이 산만큼이나 좋은 곳, 연인산으로 떠나보자.
연인산(해발 1,068m)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승안리와 하면 마일리, 북면 백둔리에 걸쳐 있는 철쭉산이다. 산행코스는 ▲백둔리 장수폭포~장수고개~장수능선~정상(5.7km, 3시간) ▲백둔리 장수폭포~백둔자연학교~소망능선~정상(3.8km, 2시간) ▲마일리 국수당~우정고개~우정능선~정상(5.9km, 3시간) ▲마일리 국수당~연인골~연인능선~정상(5.0km, 2시간30분) ▲승안리 용추휴양소~청평능선~장수능선~정상(8.8km, 4시간30분) ▲승안리 용추휴양소~산림도로~연인능선~정상(10.8km, 5시간) 등 6개.
가장 볼거리가 많고 산세가 완만해 초보자들도 쉽게 오르는 코스는 장수능선. 철쭉은 장수고개로부터 정상에 이르는 능선에 있다. 승안리에서 올라가는 길은 용추구곡이 숨어 있어 계곡과 철쭉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코스. 길이 험해 산악 전문가나 등산에 자신있는 사람들에게 권할 만하다. 이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코스, ‘장수능선을 타고 정상에 올랐다 소망능선으로 내려오는’ 원점 회귀 코스를 택해 들꽃트레킹에 나섰다.
출발 기점은 백둔리 장수폭포다. 장수폭포에서 장수고개까지는 숨찰 일 한 번 없는 산림도로. 노란 산괴불주머니와 붉은 병꽃이 초입부터 길을 밝힌다. 가끔씩 하얀 밥알처럼 송글송글 꽃이 맺힌 조팝나무가 보이고 숨은 듯 드러난 제비꽃들이 눈을 간질인다.
그렇게 쉬엄쉬엄 꽃들 속을 40여 분 걷다보면 장수고개다. 장수고개에서 장수능선으로 접어들면 울창한 참나무, 잣나무, 단풍나무 숲길.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5월의 숲을 닮은 새소리와 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소리로 사람들을 품는 산. 마음이 편하다.
장수고개를 벗어나 숲을 타면 길은 어느새 철쭉 군락지 앞이다. 연한 분홍빛 꽃봉오리로 맺혀 파도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철쭉. 여느 곳보다 꽃빛이 연해 철쭉은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거리듯 보인다.
드문드문 보이던 철쭉이 터널이 되는 곳은 해발 700m 지점의 능선이다. 사람 키를 훌쩍 넘어서는 철쭉나무들의 무리는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고 능선을 휘감을 듯 군락이 넓다. 분홍물이 뚝뚝 떨어질 듯 환하다. 철쭉의 꽃말이 ‘사랑의 기쁨’이라 했던가. 누군가의 말대로 ‘우정으로 올라 사랑으로 내려올 만’하다.
다소 편평한 듯 보이는 능선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을 몇 굽이 지나면 장수능선과 청풍능선이 만나는 지점이다. 그때까지 산길의 주인은 철쭉. 하지만 철쭉의 발치께선 들꽃도 우후죽순 피어오른다. 둥굴레며 노랑제비꽃이며 각시붓꽃 같은 야생화들이 처음엔 한두 그루씩, 다음엔 무더기씩 피어올라 객의 마음을 흔든다. 아니, 흔들리는 건 마음이 아니라 바람이고 들꽃이다.
▲ 철쭉으로 뒤덮인 연인산 전경. 여느 철쭉과는 다르게 연한 분홍빛을 띠고 있다.(위). 아래는 연인산 정상. | ||
청풍능선과 장수능선 갈림길에서 조금 더 오르면 장수봉이다. 장수봉에서 소망능선 갈림길까지는 길이 좁은 오르막길. 홀아비꽃대, 양지꽃, 피나물 같은 들꽃들이 없다면 다소 힘들고 지루할 길이다. 하지만 꽃들을 벗삼아 걷노라면 20여 분이 채 못 돼 장수능선과 소망능선 갈림길에 닿게 된다.
백둔자연학교로 이어지는 소망능선 갈림길은 본격적인 들꽃 트레킹이 시작되는 곳. 철쭉 대신 작고 미천한(?) 야생화들의 무리가 산길의 온전한 주인이다. 트레킹의 백미는 소망능선 갈림길에서 정상으로 가는 0.9km 구간 중 장수샘으로 이어지는 0.5km 구간. 완만한 등산로 주변이 온통 보라색 얼레지밭이다. 밟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꽃밭이 넓어 탄성이 절로 난다.
장수샘에서 정상까지는 0.4km 거리다. 먼 길은 아니지만 길이 제법 가팔라 30여 분 이상 걸린다. 장수샘~정상 구간을 채운 꽃은 대부분 얼레지와 노랑제비꽃. 등산로를 제외한 풀숲이 모두 꽃밭이다. 길을 조금만 벗어나도 꽃이 밟힐 정도. 조심하지 않으면 꽃의 목을 부러뜨리는 실수를 범하고 만다.
드디어 정상이다.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 연인산’. 정상을 넘어 북쪽으로 가면 백두대간의 서쪽 지릉인 명지산이고, 왼쪽으로 가면 마일리(우정능선 코스)다. 맑은 날에는 연인산을 둘러싼 가평의 산자락들이 눈앞에 있는 듯 가깝게 다가선다.
하산은 왔던 길을 되돌아와 소망능선을 탄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우정능선이나 연인능선을 타도 좋지만 차를 가지고 왔다면 원점회귀 코스인 소망능선을 타는 것이 좋다.
깊은돌계곡으로 이어지는 소망능선은 연인산 정상을 오르는 최단시간 코스. 하지만 장수능선에 비해 길이 가파른 데다 볼거리까지 없어 하산길로 적당하다. 내려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정도. 백둔자연학교 곁에 있는 깊은돌계곡에서 발의 피로를 씻으며 산의 넉넉함을 반추해보기 좋다.
▲교통정보: 팔당대교를 건너 양수리쪽 경춘국도(46번 국도)를 타고 가평까지 간다. 가평 읍내로 들어가 직진하면 북면. 북면 면사무소 앞에서 75번 국도를 탄다. 다리(백둔교) 앞이 적목리와 백둔리로 나뉘는 갈림길. 왼쪽 다리를 건너 직진하면 백둔계곡, 허수아비마을, 연인산 등산로 입구가 차례로 나온다. 장수능선쪽 등산로 입구보다는 소망능선 등산로 입구 주차장이 넓다. 현재 백둔교에서부터 연인산 등산로 입구까지는 도로 공사중. 길이 험해서 운전에 신경써야 한다.
▲숙식정보: 허수아비마을을 비롯, 백둔교에서 연인산 등산로 입구까지 가는 길에 민박, 펜션 등이 즐비하다. 그 중 규모가 큰 곳은 방갈로가 깨끗한 허수아비 마을(031-581-4477). 대신 취사는 할 수 없다. 숙소만큼 음식점도 많은 편. 그 중 용두뜨락(031-582-7900)의 돌솥밥 한정식이 유명하다.
들꽃축제
가평군은 5월20일부터 22일까지 3일 동안 ‘연인산 철쭉제’를 연다. 20일에는 평양연극예술단의 공연이 펼쳐지고, 21일에는 연인산과 인근 백둔리 산촌마을에서 풍년기원제와 축제 개막식이 열린다. 야생화 전시회, 연인산 자생꽃 촬영대회 등도 함께 열려 축제의 재미를 더한다. 연인산 축제 추진위원회 031-580-20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