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량산 최고봉 중 하나인 금탑봉. 산자락에 자리잡은 응진전이 고즈넉하다. | ||
숨은 양반의 고장이자 청량산의 비경을 간직한 봉화는 원시자연이 살아 숨쉬는 청정지역이다. 특히 명호면 일대는 태백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강변마을을 형성하는 지점으로 강과 산의 조화가 아름다운 곳이다. 이른 아침이면 몽글몽글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척박한 오지마을도 선경 속에 등장하는 그림 같은 풍경이 된다.
명호면에서 안동시 예안면으로 이어지는 35번 국도는 강변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다. 여름철 ‘래프팅’ 장소로 더 유명한 곳이다. 낙동강 상류의 맑은 물길 옆으로는 아찔한 기암절벽이 보디가드인 양 따라다니고, 강 드라이브에 나선 지 10여 분이면 청량산 입구에 이르게 된다. 이때 청량산은 강이 크게 굽이치기 전에 마치 강 왼쪽 깊숙한 골짜기로 숨어 들어가 있는 듯 보인다. 혹여 그냥 지나칠까 산의 시작 지점에는 퇴계의 시비가 마중을 나와 있다.
청량사를 중심으로 연꽃잎이 겹겹이 둘러싼 듯 자리한 청량산은 일찍이 소금강이라 불리며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했다. 특히 층암절벽으로 이뤄진 곳곳의 기암절벽이 6·6봉(12개의 큰 봉우리)을 이루고, 기이한 암벽 위로는 희귀한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또한 원효대사, 최치원, 김생, 퇴계 이황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재들이 머물렀고, 그 흔적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 청량사 오르는 길(왼쪽)과 응진전. | ||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날 속이랴 못 믿을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 가지 마라 어주자(漁舟子·어부) 알까 하노라 - 퇴계 이황의 청량산가(淸凉山歌).’
당호를 ‘청량산인’으로 지을 만큼 퇴계는 어릴 적부터 청량산에서 글을 읽고 사색을 즐겼으며 말년에도 도산서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청량산에 올랐던 것으로 전한다. 복숭아 꽃잎이 흘러가 어부에게 알린다고 걱정하던 퇴계의 자랑만큼이나 청량산에는 풍성한 볼거리, 청정한 자연환경이 기다리고 있다.
등산 기점은 보통 매표소에서 걸어서 20~30여 분 거리인 청량사와 ‘입석’이다. 청량사 코스는 시멘트로 포장된 가파른 경사 길이 포함돼 보통은 하산 길로 잡는 것이 대부분이다. 사람이 많지 않을 경우 입석까지 차량 진입이 가능하며 입석 맞은편에는 넉넉하진 않지만 주차공간도 마련돼 있다.
입석 코스는 부채꼴 모양을 하고 있는, 청량산의 허리를 따라 걷는 길로 내청량사를 내려다보며 갈 수 있다. 외부에서 주 등산로가 보이지 않는 특이한 지형을 갖고 있다.
등산로에 올라선 지 채 10여 분이나 지났을까. 앞이 확 트인 언덕이 이미 산 중턱에라도 올라선 듯 탁 트인 녹색풍경을 선물한다. 매표소에서부터 청량산 좌우를 가르며 달려오던 아홉 구비의 길이 마치 그림처럼 내려다보인다.
청량산은 최고봉인 의상봉을 비롯해 보살봉, 금탑봉, 연화봉, 축융봉 등 12개의 암봉이 총립해 있고 봉마다 대(臺)가 있으며 산자락에는 8개의 굴과 4개의 약수, 내청량사(유리보전)와 외청량사(응진전), 이퇴계 서당인 오산당(청량정사) 등이 있다.
그 중 입석에서 외청량사로 불리는 응진전까지는 길이 완만하고 전망은 탁월하다. 오솔길처럼 다정한 등산로는 청량사를 아찔하게 굽어 내려다보며 청량사의 특별한 위치에 감탄하게 만든다. 특히 응진전과 금탑봉을 정면에서 마주보고 있는 언덕이나, 연꽃 수술처럼 오밀조밀한 청량사가 마치 펼쳐진 지도처럼 한눈에 들어오는 어풍대 전망대는 청량산의 제1경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아찔한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응진전은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청량사의 암자 중 하나. 아무리 둘러봐도 청량산에서 가장 오묘한 자리에 앉았다. 아름다운 금탑봉이 응진전 뒤에 그림처럼 서 있어 마치 응진전이 9층 왕관을 쓴 듯하다. 응진전을 지나가면 최치원이 마셨다고 전해지는 총명샘이 있으나 지금은 오염으로 음용할 수가 없다. 샘터를 지나면 길은 다시 청량사, 김생굴, 경인봉으로 갈라서게 된다.
꽤 널찍한 터를 갖고 있는 김생굴은 굴이라고 하기엔 그 입구가 워낙 넓고 평평하다. 신라 명필 김생이 10년 공부로 신필을 익혔다는 곳으로 여기에는 재밌는 전설이 따라다닌다. 김생이 9년 글공부를 마치고 내려가려던 차에 베를 짜는 처녀가 찾아왔다. 그는 불을 끄고 실력을 겨루기를 청했는데, 그 결과 김생의 글씨는 엉망이었고 여인의 베는 가지런했다. 그래서 김생은 1년을 더욱 정진한 뒤에야 산을 내려갔고 그후 명필이 됐다고 한다.
청량산이 처음이라면 무조건 의상봉(870m)까지 욕심내기보다는 김생굴에서 경일봉이나 자소봉까지 가는 코스가 추천할 만하다. 김생굴에서 30여 분이 채 걸리지 않고, 경일봉까지 오르면 탁립봉-자소봉-탁필봉까지 능선을 타고 걷는 코스가 청량산을 감상하기에 더 좋기 때문.
특히 자소봉(840m)에서는 지금까지 부채꼴로 돌아왔던 풍경들을 거꾸로 짚어가며 볼 수 있다. 물론 60도의 아찔한 철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어려움도 있지만 그 몇 배의 감동이 뒤따르는 것은 장담할 수 있다. 탁필봉은 후에 주세붕 선생이 그 지형을 보고 ‘보살봉’이라고 이름을 다시 짓기도 했다. 산은 높지도 크지도 않으나 그 품이 넉넉하였던 탓인지 주세붕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청량산에 관한 시와 글을 남겼다고 한다.
봉우리가 연결되는 주 능선길은 큰 나무들이 많아 햇볕이 따갑지 않고 낭떠러지 길이긴 해도 크게 위험하지 않다. 중간 중간 솟구친 바위 언덕에서는 치맛자락처럼 펼쳐진 청량산의 경치가 선계인 듯 황홀하다. 이때, 가슴을 펴고 두 팔을 펼쳐보자. 목덜미, 겨드랑이, 손가락 사이로 지나다니는 바람이 그 옛날 청량산을 아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곤거리는 것만 같다.
▲ 청량산에 폭 안긴 청량사 전경(왼쪽)과 신라 명필 김생이 신필을 익혔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김생굴(오른쪽). | ||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그의 손을 만나면/ 나도 바람이 된다-지현스님(청량사 주지).’
기암절벽들에 둘러싸인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풍수 지리학상 청량사는 길지 중의 길지로 꼽힌다. 유리보전에서 한 바퀴 돌아보면 그 이유를 이내 짐작한다. 보살봉을 중심으로 육육봉(12 봉우리)이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청량사에는 진귀한 보물 2개가 남아 있다. 공민왕이 친필로 쓴 현판 ‘유리보전’과 ‘지불’이 그것이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곳’이라는 뜻으로 울퉁불퉁한 암벽 아래 터를 잡았다. 화려하지 않지만 위엄이 넘친다.
유리보전 내에는 지불을 포함해 많은 불교 조각품이 간직되어 있다. 지불은 국내서 유일한 종이로 만든 부처지만 지금은 금박을 입혀 눈으로는 확인하기 어렵다. 현판을 쓴 공민왕은 홍건적이 고려를 침략했던 1361년 청량사로 피신을 왔다고 한다.
유리보전 정면에는 청량사 석탑이 하늘을 마주보며 고고한 자태로 서 있다. 마치 한 마리 학이 날아갈 듯 유리보전과 마주보며 청량사의 기품을 한껏 살려주고 있다.
오산당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예쁜 전통찻집이 있다. 이는 지현스님(청량사 주지스님)이 지은 시의 제목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바가 있다. 이름만큼이나 찻집의 내부도 아름답다. 지공예로 만든 전통 등이 사람의 마음조차 은은하게 만든다.
그밖에 청량사 주변에는 오가는 등산객에게 무료로 차를 나눠주는 ‘산꾼의 집’이나, 퇴계선생이 15세의 나이에 숙부인 송재 이우 선생으로부터 글을 배웠던 오산당 등이 볼 만하다. 응진전 방향으로 가는 길에 이 모두와 만날 수 있다.
▲찾아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풍기IC(영주IC)-영주 방면으로 달리다가 봉화쪽 이정표를 따라 36번 국도 진입-봉화를 지나 918번 지방도로 우회전-35번 안동 방면으로 가다가 명호면에서 청량사 이정표를 보고 달리면 된다.
▲연락처: 청량산도립공원 054-672-4994 청량사 054-672-1446 비나리마을 농촌체험, 래프팅, 산골미술관 054-673-8650(017-345-6234)
농암종택 054-843-1202 쪾봉화군 홈페이지 http://ponghwa.kyongbuk.kr/
여행 포인트
산행은 아침에 시작하는 것이 좋다. 청량산의 여러 봉우리를 두루 돌아보고, 향 깊은 차 한 잔 기울여도 4~5시간이면 족하다. 이른 아침에 출발한다면 정오쯤이면 하산할 수 있고 오후는 낙동 강변에서 느긋하게 족욕이나, 래프팅을 즐겨보자.
청량산에서 4~5km 북쪽 비나리마을에는 ‘산골미술관’이, 반대 안동 방면으로는 가송리의 농암종택이 있다. 가송리 농암종택이 농암 선생의 종갓집으로서 전통적 숙박체험이 가능하다면, 비나리마을에선 전형적인 산촌마을의 자연체험, 귀농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