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리짚을 엮어 여치집을 만드는 어린이들. | ||
햇볕이 쨍쨍한 여름날 오후, ‘타임머신’을 타고 훌쩍 날아간 곳은 한국민속촌. 모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아낙네가 버선발로 반겨줄 것 같은 정겨운 한옥과 드라마에서나 보았을 법한 익숙한 세트장이 즐비한 민속촌은 ‘대국민 관광지’라 할 만큼 널리 알려진 곳이다. 대신 소풍 장소로는 입장료(성인 1만1천원, 청소년 8천원)가 꽤 비싼 편이라 연중행사로밖에는 못 가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그곳에서 요즘 여름 특집 ‘여름나기 민속체험’이 열리고 있다. 우리 조상들의 삶을 엿보고 살짝 체험도 해보는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을 위해 꼭 챙겨줘야 할 여름 보양식이 있듯이, 우리의 역사 속에 담긴 조상들의 삶과 생활 속에서 배어나오는 지혜로움은 아이들의 고른 성장을 위해 권할 만한 ‘살아있는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여름나기 민속체험’은 8월 말까지 주말과 공휴일에만 펼쳐진다. ‘띠배 만들기’부터 ‘나룻배 타기’까지 총 열다섯 가지 정도로 나뉘는데 경우에 따라서 유·무료가 갈린다. 개중에는 민속촌 밖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나 완전한 체험이 불가능한 것들, 예를 들면 ‘짚신 만들기’나 ‘조리 만들기’ 같은 완성도 높은 작업들도 있다.
모든 체험장에는 각 분야에서 ‘기술 장인’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이 작업과정을 보여주거나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 체험을 하기에 역부족인 영유아들을 위해서는 당나귀 마차 타기, 나룻배 타기 등의 놀이 체험이 있어서 지루함을 달래줄 수 있다.
▲ 당나귀 마차에 타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위),‘옛날 두부 만들기’ 체험. 직접 만든 두부가 고소하다. | ||
정문에서 내삼문을 통과하고 나면 본격적인 ‘여름나기 민속체험’이 시작된다.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이 ‘도자기공방’. 공방에는 숙련된 장인이 물레를 돌리며 도자기를 빚고 있다. 물레 위에서 그냥 흙덩이였던 것이 장인의 손을 빌려 눈 깜짝할 새에 ‘완성품’으로 탄생한다.
언제 보아도 멋진 장면! 이러니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의 눈에는 ‘매직’과 뭣이 다를까. 신기했는지 아이들이 저마다 만들어보겠다고 성화다. 물론 체험도 가능하다. 준비된 재료를 이용해 머그컵이나 간단한 컵을 만들고 각자 넣고 싶은 글자나 문양을 만들어 넣기도 한다.
여러 체험들 중에서도 남부지방 대가의 ‘옛날 두부 만들기’가 최근엔 인기 절정이다. 두부 체험은 그 과정이 워낙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라, 마지막 과정인 가마솥에서 끓이고 꺼내서 먹는 체험이 주된 내용(하지만 현장에선 콩을 불리고 삶고, 맷돌에 직접 갈아서 가마솥에 끓이는 과정까지가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지 이어진다).
금방 꺼낸 두부 앞에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들고, 장독 뚜껑에 내놓은 묵은 김치도 순식간에 동이 난다. 두부의 고소함이란 뭐 두말할 것도 없다. 한국보다 더 한국문화를 잘 아는 외국인도 한몫 거든다. 땀을 억수같이 쏟아내는 아낙네는 “비지 필요하면 가져가세요!” 하며 인심을 낸다. 어른들은 맛으로, 아이들은 재미로, 외국인들은 흥미로 쉽게 마음을 여는 것이 역시 ‘먹거리 문화’였다.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는 재밌는 체험들도 있다. 보리 짚으로 ‘여치집 만들기’나 ‘대나무 물총 만들기’ 등은 따라하기 쉬워서 아이들의 호응도가 높은 편. 정자에서 무더위를 피하며 쉬엄쉬엄 할 수 있어, 햇볕 쨍한 날 더욱 좋다.
▲ 도자기 체험(위)과 봉숭아물 들이기. | ||
반면 ‘조리 만들기, 짚신 만들기, 한지 뜨기’ 등은 작업 과정을 보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체험이라고는 하지만, 한 번 보고나서 따라하기도 힘들고 워낙에 숙련된 솜씨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장인들을 직접 만나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수 있어 반갑다.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니 짚신 하나에 서너 시간은 더 걸린다”며 애교 섞인 투정을 하시는 할아버지가 슬쩍 짚신을 내밀며 신어보기를 권한다.
“짚신 신으면 무좀 안 생겨요?”
“아이구 무좀이 뭐야. 있던 무좀 달아나고, 무좀균이 발도 못 붙이지!”
“근데 왜 복조리라고 하죠?”
“요거 생긴 모양을 좀 봐요. 아래의 뾰족한 부분을 이용해서 쌀을 일잖아. 그리고 일어난 쌀을 잘 긁어모으게도 생겼잖아. 그리고 여기저기 생긴 구멍도 모두 복이 들어오는 곳이거든.”
장인은 살아온 지혜까지 담아서 친절한 설명을 붙여주었다.
해가 뉘엿뉘엿할 때까지 운동장을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처럼, 종일을 놀아도 지치지 않는 하루. 바로 민속촌의 ‘여름나기 민속체험’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