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붉은 단풍 휘장을 두른 계곡. 가을의 오대산은 한폭의 수채화처럼 곱다. | ||
불꽃이 일렁이는 산은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미치도록 설레게 한다. ‘광염소나타’에 홀린 사람들은 저절로 그 위험한(?) 화염 속으로 첨벙 뛰어들고 있다. 바로 불꽃처럼 산과 산을 물들이고 있는 단풍 이야기다.
단풍, 그 ‘아름다운 불꽃’은 올해 더 곱다. 가을 기온이 예년보다 1℃ 이상 높아 일주일가량 늦게 시작된 단풍은 그러나 최근 일교차가 커지면서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낙엽수는 생육 최저온도인 5℃ 이하로 기온이 떨어지면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단풍에는 노랗게 물드는 것과 붉게 물드는 것 두 가지가 있다. 노란색은 잎 속의 초록빛 엽록소가 없어지면서 생기는 것이고 붉은색은 잎 속에서 붉은 색소가 생성되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 오대산에선 그 붉고 노란 단풍이 알록달록 산하를 수놓고 있다.
오대산 단풍산행은 월정사에서부터 시작하거나 혹은 8km 정도 더 올라가 상원사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하루 코스로는 월정사코스보다 상원사에서 출발해 등산을 마친 후 하산길에 월정사까지 가는 게 이상적이다.
상원사에서부터 비로봉 정상까지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넉넉잡아 4시간. 그러나 그것은 단지 쉼 없이 걸었을 때 걸리는 시간일 뿐, 단풍에 취해 띄엄띄엄 걸음을 옮기다보면 사실 하루 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상원사는 월정사와 함께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세운 절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동종(서기 725년 주조)을 보유하고 있다. 산 중턱에 살포시 내려앉은 상원사는 그 주변이 온통 단풍으로 물들어 원색의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단풍 구경에 빠져 정상으로 옮기는 발걸음은 자연 더디기만 하다. “굳이 올라가야만 단풍이냐”며 절 마당에 눌러앉아 앞산의 단풍을 만끽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상원사에서부터 적멸보궁까지는 50여 분 걸린다. 길은 꽤 가파른 편이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은 힘들지만 정겹다. 가을걷이에 열심인 청설모와 다람쥐들이 낯선 이들을 경계하는 기색도 없이 친구처럼 길섶으로 함께 달린다.
▲ 오대산 적멸보궁(위)과 오대산 정상 비로봉에 올라 경치를 감상하는 등산객. | ||
적멸보궁 바로 아래에는 시원한 약수가 솟아오르는 샘이 있다. 산길을 오르느라 땀에 젖은 옷을 말리고 그 흐른 땀만큼 ‘물보시’의 베풂을 맛본다. 다리도 쉴 겸 잠시 등산로를 비켜나 적멸보궁 돌계단을 오른다.
적멸보궁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찰의 법당을 일컫는 말. 태백산 정암사와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영취산 통도사와 함께 이곳의 적멸보궁을 ‘5대 적멸보궁’이라고 한다. 월정사 적멸보궁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오면서 석가의 진신사리를 가져와 봉안하고 이곳에 보궁을 창건한 것. 아담한 법당이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걸터앉아 부처의 자비를 베풀고 있다.
적멸보궁을 둘러본 후 다시 산정으로 길을 나선다. 적멸보궁에서 비로봉 정상까지는 1시간 남짓 걸린다. 길은 더욱 하늘로 솟아 있다. 거리상으로는 겨우 1.5km밖에 안 되지만 걸음을 옮겨놓기가 힘들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나 그 길 곳곳마다 울긋불긋 물든 층층나무와 노린재나무, 당단풍나무의 잎들이 바람에 흔들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듯하다. 그래서 힘듦보다 더한 즐거움이 있다.
오르고 또 오르다보면 못 오를 리 없다는 말처럼 해발 1,563m의 비로봉도 어느 순간 눈앞에 다가온다. 거칠 것 없는 정상, ‘단풍불’의 가장자리에서 한가운데 그 가장 뜨거운 곳에 서는 순간 밀려드는 희열을 어디다 비할까. 그 순간을 붙잡아두고자 사람들은 이곳저곳에서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러댄다.
언제까지나 머물고 싶던 풍경을 뒤로한 채 내려오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아쉬움과 기쁨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발걸음도 가벼워야 할 하산길이 왜 이리 허전한 걸까.
▲ 상원사 동종(왼쪽)과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 ||
월정사는 고려 때 건축한 팔각구층석탑이 유명하다. 이 석탑은 우리나라 북쪽 지방에 유행했던 다각다층석탑의 하나로 고려 초기 석탑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 문양과 자태에서 고려 불교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읽을 수 있다.
물론 산을 오르느라 힘은 들겠지만 월정사에 가거든 조금 더 걷자. 하늘로 쭉 뻗은 전나무들. 월정사 전나무숲길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숲길에 빠짐없이 꼽히는 산책하기 좋은 길이다.
1km 정도 이어진 숲길은 음이온이 충만해 들어서는 순간부터 정신이 맑아진다. 오른쪽으로는 계곡이 흐르는데 그 물가 나무들의 단풍은 붉고 전나무들은 푸른 게 색의 대비가 강렬하다. 가족이나 연인들이 손을 꼭 붙잡고 걷는 모습을 보노라면 행복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진부IC에서 좌회전→삼거리 좌회전→다리 건너 오대산 방향 좌회전→오대산 호텔 지나서 오대산/주문진 삼거리 직진→월정사→상원사
★문의: 오대산국립공원http://www.npa.or.kr/odae/main.asp ☎ 033-332-6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