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변한 순백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 ||
담양 여행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언제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다. 담양에서 순창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변에 위치한 긴 나무 터널 말이다. 군의 중심을 이루는 것도 아니지만 이 길을 중심으로 담양에 들어왔음을 실감하고, 길을 찾아 가고, 여정을 정리하기 때문이다.
여름날 초록터널로 눈부시던 그 가로수가 어느새 눈꽃터널로 변신했다. 일찍부터 내린 함박눈이 맘껏 조화를 부린 탓이다. 화이트크리스마스에나 볼 수 있는 트리들의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지니 그 누구라도 한번쯤은 걸어줘야 할 것 같다.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터널은 모두 8.5km에 이른다. 그 중 순창으로 달려가는 24번 국도는 가장 크고 시원하게 뻗은 길이다. 대신 달리는 차들이 많아서 한가로이 산책을 즐기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는 석현교 삼거리에서 살짝 비켜선 구도로-한때 개발로 사라질 운명에 처했던 길-가 훨씬 매력적이다. 아치형의 순백터널과 순백의 양탄자 위로 아주 느리게 걸어보자. 고개 들면 가로수 사이로 파란 하늘이 쏟아지고 흰 눈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시선을 자극한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눈이 펑펑 오다가 그친 날이 더욱 좋다. 차들도 멈춰선 숲길은 바람도 비켜가는 듯 포근하다. 작정하고 꾸민 것처럼 완벽하게 조화로운 메타세쿼이아길.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던 어느 시의 한 구절처럼 사랑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싶다. 그러니 ‘겨울연가는 남이섬 대신 담양’이라고 자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더구나 높은 빌딩 하나 없는 담양군도 순백의 평원을 보는 듯 고요하다. 차들은 슬그머니 움직이고 멀리 도시를 에워싼 추월산, 병풍산 등은 8폭 병풍에 놓인 동양화를 보는 듯 선경을 자랑하고 있다. 대숲의 청량함으로 이름난 담양은 바야흐로 겨울 풍경 속에 풍덩 빠져버렸다.
▲ 산성산의 주봉인 철마봉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등산객(위), 금성산성의 남문(왼쪽)과 외남문. 성곽길 모양이 산의 곡선을 거스르지 않고 이어져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 ||
금성산성은 담양읍으로터 6km 떨어진 산성산 내에 위치한 고려시대 유적지. 산성의 둘레가 약 7천3백45m이고 전북 순천군과 도계(道界)의 접경을 이루고 있다. 최고봉인 산성산을 위시하여 연대봉, 노적봉, 철마봉 등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를 능선으로 연결하는 거대한 요새로 여러 개의 능선과 계곡을 거느리고 있다.
특이한 점은 담양 인근에 추월산, 병풍산 등 높은 산이 많지만 어떤 산에서도 금성산성의 성문 안을 엿볼 수가 없다는 것. 그렇게 뛰어난 지형 덕분에 정유재란이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성문과 성벽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게 된 것이다.
금성산성은 겨울 등산에 자신 없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짧은 시간을 들여 담양 시내 전체 혹은 멀리 추월산과 병풍산까지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성 전체를 돌아보는 데는 4시간 30분 정도 걸리지만 겨울철에는 종주보다는 산행 기점에서 가까운 몇 개의 봉우리에 올랐다가 능선으로 내려서는 코스를 택하는 것이 낫다. 산성 길을 따라 30분 정도만 걸으면 시원한 전망이 펼쳐진다. 특히 요즘처럼 눈이 쌓인 산성은 단풍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을 물씬 풍긴다.
트레킹 기점은 담양리조트온천(금성면 원율리) 부근의 주차장. 주차장에서부터 첫 번째 전망대인 외남문(보국문)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외남문에 올라서면 잠시 할 말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담양의 소박한 시내 풍경이 숨김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제 속살 드러내는 겨울 산자락도 매혹적이긴 마찬가지. 눈이 내린 뒤라서 산의 면과 부드러운 곡선이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모두들 외남문의 누각 위에 올라서서 시린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치면서도 그 풍경을 기꺼이 즐길 정도다. 짧은 산행으로 이만큼의 높이 혹은 너른 풍경을 안을 수 있는 곳은 아마도 다도해를 품은 산 이외에는 없을 성싶다.
▲ 금성산성의 외남문. | ||
본격적인 트레킹은 내남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이젠이나 스패츠 같은 겨울 용품을 챙겼다면 산성 외곽을 따라 30분 정도 걸어보자. 보통 외남문에서 시작해 남문-노적봉-철마봉-서문-보국사 터-남문(2시간)으로 내려오거나 아니면 순서를 거꾸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남문에서 서문이나 북문까지의 짧은 코스 중에는 노적봉~철마봉 구간이 가장 절경이다. 철마봉의 우뚝 솟은 암벽도 장관이지만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담양호와 추월산 자락은 가히 선경이라 할 만하다.
옅은 물안개에 잠겨 산자락과 함께 멀어져가는 담양호는 한겨울 칼바람을 잊을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이다. 금성산성의 아름다운 일출을 보지 않아도 충분할 만큼 말이다. 이국적이기까지 한 담양호의 정취와 겨울 산자락의 아름다운 선. 그 조화로움은 겨울이기에 더 특별했는지 모른다. 가족과 혹은 연인과의 좋은 시간을 계획하고 있다면 올 겨울 순백으로 거듭난 도시 담양으로 가볼 일이다
[여행안내]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고서분기점-88고속도로 담양 IC-24번 국도(순창 방면)-메타세쿼이아 길-석현교 삼거리 지나 101번 지방도로(금성면)로 빠지면 금성산성.
★문의: 담양군 문화관광과: 061-380-3150
▶Tip: 모처럼의 눈 산행으로 온 몸이 얼얼하다면 하산 길에 담양리조트온천에 들러보자. 온천수도 훌륭하지만 저렴한 가격에 편의시설은 전국에서 최상급이다. 담양리조트온천(061-380-5000)
박수운 여행전문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