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력한 대권주자 박근혜 전 대표에게 동생들의 ‘육영재단’ 분쟁은 낯부끄러운 집안사가 아닐 수 없다. | ||
박근혜 전 대표는 차기 대통령 후보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독차지하고 있다. 아직 대선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지금 이대로라면 이명박 대통령의 뒤를 이을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정치권 인사들은 박 전 대표가 청와대 입성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잠재하고 있는 몇몇 불안요소들을 떨쳐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충고한다.
그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수많은 고소·고발과 사건 등으로 얼룩져 있는 ‘육영재단’이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도 당시 이명박 후보 선거캠프 측은 박 전 대표의 육영재단 이사장 시절(1982~1990년) 최측근으로 꼽혔던 고 최태민 목사를 타깃 삼아 공세를 가하기도 했다.
지난해 박근령-지만 남매가 육영재단 운영을 놓고 마찰을 빚으며 또다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자(<일요신문> 863, 869호 참고) 박 전 대표 측근들은 근본적인 해법 마련에 고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자칫 박 전 대표에게까지 불똥이 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한나라당의 한 3선 의원은 “친박 의원들이 육영재단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됐지만 언젠가는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 의원은 “(육영재단) 설립 후 조용했던 적이 없었다. 박 전 대표가 대통령 후보가 될 경우 그 문제들은 본격 이슈화돼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상대편으로는 좋은 ‘공격거리’인 셈이다. 박 전 대표도 그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리 차단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그간 육영재단에 대해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올해 초 박근령 전 이사장과 박지만 회장 측이 용역업체 직원을 동원해가며 사무실 점거에 나서는 등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지만 박 전 대표는 끝내 ‘무대응’ 원칙을 고수했다. 한 친박계 의원 보좌관은 “지금 박 전 대표는 육영재단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동생들의 싸움이 안타깝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 있어 나서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를 놓고 일부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박 전 대표의 최대 팬클럽인 ‘박사모’의 한 회원은 “국민들은 육영재단을 박 전 대표와 연관 지어 바라볼 수밖에 없다”며 “동생들도 제대로 관리 못하면서 어떻게 국가를 경영할 수 있느냐라는 지적에 뭐라고 답할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그런데 최근 박 전 대표의 태도 변화를 감지할 만한 정황이 포착됐다. 9월 3일자로 새로운 임시이사 5명이 육영재단 법인 등기부등본에 올랐는데 이 가운데 백 아무개, 곽 아무개 씨 등 2명이 박 전 대표와 관련 있는 인물로 알려진 것이다. 둘 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 전 대표 선거캠프에 몸담았던 경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백 씨의 경우 대기업 임원 출신으로 캠프 홍보 업무를 총괄했고, 곽 씨는 지역조직 관리를 맡았다고 한다. 선거캠프에서 기획 업무를 맡으며 이들과 같이 일했던 한 인사는 “특히 두 사람 중 한 명은 박 전 대표가 상당히 신임했던 인물이다. 경선이 끝난 이후에도 박 전 대표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었다”고 귀띔했다.
박 전 대표 측은 이들의 임명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부인했지만 사전에 어느 정도 교감이 있었을 것이란 말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박 전 대표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을 느껴 측근들을 통해 육영재단 사태 수습에 나선 것으로 풀이해야 할 것 같다. 내년 지방선거만 끝나면 이제 대권레이스는 본격적으로 막이 오를 텐데 그 전에 어떻게든 짚고 넘어가야 할 것 중 하나가 육영재단 문제”라고 말했다.
여의도 주변에서는 박지만 회장이 박 전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란 말도 들린다. 기존의 육영재단 이사진은 지난 2008년 11월 서울동부지방법원이 선임한 9명으로 꾸려져 있었다. 모두 박지만 회장이 추천한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박근령 전 이사장은 3월 초 기자회견을 자청해 “동생 지만 씨가 육영재단 폭력강탈의 배후에 있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동생인 박지만 회장과의 마찰만은 피하려 했던 박 전 이사장이 공개적으로 이름을 거론하며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이로서 남매간 갈등은 봉합되기는커녕 감정의 골이 오히려 더 패이게 됐다.
이를 바라보는 박 전 대표의 고민 역시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을 터. 이사진 교체가 이뤄진 것도 이 무렵이다. 3월 9일에 9명 중 5명의 이사들이 사퇴했고 이들은 물러나면서 다시 새로운 이사들을 법원에 추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엔 앞서 언급한 박 전 대표 선거캠프 참여 인사들을 비롯해 박지만 회장 측 인사들이 포함됐다고 한다. 육영재단 감독을 맡고 있는 서울특별시 성동교육청(백일순 교육장) 관계자는 “최근 임명된 이사들은 전임이사들이 사직하면서 추천했던 인물들이 맞다”고 밝혔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지난 7월 14일 추천된 이사들을 모두 임명하는 판결을 내렸고 이들은 7월 중순부터 육영재단 업무를 보고 있다. 지난 9월 초엔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사진 구성만 놓고 보면 박지만 회장과 박 전 대표가 한배를 탄 모양새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이사진 임명을 두고 육영재단 내부에서는 안도하는 목소리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직원은 “취임한 지 100일이 겨우 지난 이사들이 사표를 던질 때만 해도 다시 싸움이 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컸었다. 그런데 새롭게 임명된 인사들 면면을 보고 안심했다.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인 박 전 대표가 관여한 것이 사실이라면 동생들도 모두 수긍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번에 새로 이사로 임명된 한 인사는 지난 10월 2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육영재단에 출근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말할 입장이 못 된다”며 말을 아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