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성트레킹의 출발점인 남문. | ||
충북 청주에 있는 상당산성은 마땅히 갈 곳을 찾기 힘든 초겨울 여행지로 ‘강추’하고픈 곳이다. 날씨와 크게 상관없이 그 풍취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이 맑게 갠 날도 좋지만 구름이 낮게 깔린 흐린 날, 게다가 젖을 듯 말 듯 겨울을 재촉하는 는개(안개보다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 가는 비)라도 내리면 금상첨화다. 이 때면 산성은 구름에 휩싸여 멋진 풍광을 선사한다.
상당산성은 백제시대 때 토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상당산성이라는 이름은 백제의 상당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게 유력하다. 통일신라 때 행정구역인 서원소경이 청주에 설치되었는데 당시 김유신의 셋째아들인 원정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어 이때 쌓여진 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토성이었던 산성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상당산성은 우리나라에서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대표적인 성이다. 둘레가 4.2㎞, 내부 면적이 12.6㏊로 꽤 큰 편에 속한다. 동쪽과 서쪽, 남쪽에 각각 성문을 두었다. 성의 입구라 할 수 있는 남문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만들고 그 위에 누각을 세웠다. 동문과 서문은 평범한 직각 형태의 문이다.
산성은 요즘 드라마 촬영장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배용준이 출연해 관심을 모으고 있는 <태왕사신기>가 남문 앞 잔디광장에서 촬영을 마쳤고, 현재 방영 중인 <대조영>의 안시성 장면 배경이 바로 이곳이다.
▲ 성벽을 따라 걷고 있는 사람들. 구름이 휘몰아쳐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 ||
출발점인 남문에서 서문까지는 1㎞ 정도로 20분이면 닿는다. 경사도 그리 심하지 않아 설렁설렁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남문 바로 옆에는 암문이 하나 있다. 일종의 ‘숨겨진 문’으로 밖에서 보면 문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라도 적에게 발견될 경우 쉽게 메울 수 있도록 안쪽에 돌과 흙을 쌓아놓았다. 상당산성에는 남암문과 동암문 2개의 암문이 있다.
어느새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는개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비는 내리지만 옷은 젖지 않는다. 걷는 동안 바람에 다 마르기 때문이다. 산성은 상당산(491.5m)의 8부 능선부를 휘감고 있다. 산성은 해발 350m 정도의 높이에서부터 거의 정상부까지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서문을 넘어서면서부터 경사가 조금씩 급해진다. 산성의 고도가 높아지자 구름이 산성으로 내려앉는다.
구름은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리면서 한 폭의 수묵담채화를 그려낸다. 옅은 안개와 같다가도 갑자기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풍경을 짓누르는 구름. 발치에서 길이 지워지고 사람들이 마치 허공을 걷는 것처럼 보인다.
운해가 절정을 이루는 서문에서 동암문을 거쳐 동문까지는 약 3㎞, 40분 정도 걸린다. 동문에서는 성내로 들어가 출출한 배를 채우는 사람들이 많다. 성내에는 50여 채의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다. 그중 30여 채가 음식장사를 한다. 청주 특산인 대추술과 토종닭백숙이 주 메뉴. 뜨내기 장사치들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이곳에 터를 잡고 손맛을 팔기 때문에 맛은 보장할 수 있다.
산성한옥마을 앞 저수지를 지나 남문까지는 300m, 겨우 5분 거리다. 반가워야 할 목적지가 오히려 아쉽게 느껴진다. 남문을 통해 성을 내려가야겠지만 두 발은 남문 누각에 꼭 박혀 있고 시선은 자꾸만 지나온 성곽에 닿는다.
▲ 상당산성 안에 있는 한옥마을. 50여 채 중 30여 채가 음식점이다. | ||
상당산은 온 산이 소나무로 덮여 있지만 어깨를 맞댄 우암산은 침엽수와 활엽수가 어우러져 있다. 우암산 순회도로에서 성벽에 이르는 구간과 다시 명암약수터로 내려가는 이 산길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 운치가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떠나가 버린 가을을 아쉬워하며 이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여행 안내
★길잡이: 경부고속도로(중부고속도로)→청주I.C(서청주I.C)→청주→36번 국도→우암산 순환도로→상당산성.
★잠자리: 청주시내 관광호텔이나 인근 모텔 또는 명암유원지의 명암파크호텔(043-257-7451)이나 율량동의 라마다플라자호텔(043-290-1000)을 이용하면 된다.
★먹거리: 산성 내에 한옥마을 식당가가 있다. 50여 호 정도가 들어서 있는데 청주지역 토속 명주인 대추술과 닭백숙 등을 파는 집들이 대부분이다. 이 가운데서도 대우장(043-252-3306)은 특별하다. 청남대가 대통령 별장으로 이용되던 시절부터 3명의 전직 대통령이 이곳에서 닭백숙을 즐겨 먹었다. 이 곳 닭은 인삼공사에서 홍삼엑기스를 뽑고 남은 찌꺼기를 먹여 기른 약닭으로 60일 이상 된 것들을 쓴다. 인삼 대신 황기와 엄나무, 천궁, 구기자 등을 넣어 맛이 깊고 진하다. 토종닭백숙 2만 5000원. 오골계한방백숙 2만 8000원.
★문의: 청주시청(http://www.cjcity.net) 043-220-6282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