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산의 진경을 보여주는 태백산에서 눈꽃트레킹을 즐기는 등반객들. 아래는 올해 초 열렸던 태백산 눈꽃축제 모습. | ||
11월 말부터 내린 눈이 소복이 쌓여 태백산이 은빛 세상으로 변했다. 겨울 산행을 고대하던 사람들은 길이 멀고 험함은 제쳐두고 태백산으로 서둘러 향한다. 강원도 태백시와 영월군, 경상북도 봉화군과 접경을 이룬 곳에 자리한 ‘민족의 영산’ 태백산. 봄이면 철쭉과 진달래가 사면을 뒤덮고 여름에는 울울창창한 수목이 더위를 식혀준다. 가을에는 또 오색찬란한 단풍이 장관이다. 그리고 태백산이 그려내는 그림은 마침내 겨울에 완성된다. 봄 여름 가을 동안 입었던 유채색 옷들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무채의 헐벗음으로 돌아간 태백산. 그 나신 위에 포근한 눈이 내리면 산은 수줍게 제 몸을 내어 보인다.
해발 1567m의 태백산은 우람하지만 등반하기 어려운 산은 아니다. 다 올라왔나 싶으면 또 다시 눈앞에 나타나 기겁하게 만드는 ‘깔딱고개’도 없고 기어가듯 조심조심 올라야 하는 암릉도 없다.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고 또 어머니 가슴처럼 부드러워 아이들도 오르기 쉽다. 게다가 등반 시작점이 모두 해발 800m 이상 고원에 자리하고 있어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태백산 등반로는 당골과 백단사 그리고 유일사 기점 등 세 곳. 어디에서 오르더라도 2시간이면 태백산의 주봉에 도달할 수 있다. 그중 겨울산행에서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유일사에서 천제단(1560m)으로 오르는 것. 4㎞ 거리로 주목군락의 눈꽃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다.
유일사 쉼터까지 2.3㎞ 구간의 등산로가 조금 가파르지만 40여 분쯤 걸어 능선에 올라서면 이때부터는 다리가 힘들 일이 별로 없다. 다만 오른쪽 사면을 타고 불어오는 칼바람이 고통스러울 뿐이다. 유일사를 지나면서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주목군락이 펼쳐지는데 아직 완벽한 꽃을 피우지는 못했지만 눈꽃이 눈부시다. 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장관은 장군봉을 거쳐 천제단까지 계속된다.
눈꽃의 향기에 취해 설렁설렁 걷다보면 어느새 장군봉(1567m)이다. 태백산 주봉들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다. 장군봉에 서면 왼쪽 옆으로 손에 잡힐 듯 천제단이 보이고 다시 그 뒤편으로 부쇠봉(1546m)과 문수봉(1517m) 등의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쾌한 조망에 가슴까지 시원하다. 이곳에서 천제단까지는 300m, 약 5분 거리. 뱀처럼 가느다란 산길이 천제단으로 이어지고 그 주변은 온통 새하얀 눈꽃이다. 천제단은 태고 적부터 제천의식을 치르던 제단으로 매년 개천절이면 이곳에서 태백산천제를 올린다.
▲ 문수봉에서 바라본 태백산 전경(위), 당골광장에서 문수봉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위치한 단군성전. | ||
겨울산행을 하는 이들에게 망경사는 더없이 반가운 곳이다. 산에 푹 안긴 듯한 절의 풍취도 좋지만 따끈따끈한 컵라면으로 몸을 녹일 수 있기 때문이다. 2500원에 달하는 엄청난 물가지만 2시간 가까이 눈길을 헤쳐 온 사람들은 거부할 힘이 없다.
망경사에서 반재를 지나 당골광장까지 내려오는 것도 좋지만 태백산의 아름다움을 보다 더 많이 가슴에 담아가고 싶다면 주봉 능선 트레킹에 도전해보자. 천제단에서 부쇠봉을 거쳐 문수봉까지 이르는 능선이 설렁설렁 걸을 만하다. 천제단에서 문수봉까지는 총 3㎞, 1시간 거리다.
태백산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갈리는 지점이다. 장군봉에서 800m 떨어진 곳에 자리한 부쇠봉이 바로 그 자리다. 북쪽으로 태백산과 어깨를 견주는 함백산(1577m)이 솟아 있고 그 서쪽으로는 장산(1415m)도 보인다. 부쇠봉 남쪽으로 뻗어나간 백두대간의 끄트머리에 희부옇게 보이는 산은 소백산(1450m)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줄기를 뒤로하고 도착한 문수봉에는 기묘한 돌탑들이 서 있다. 그 분위기를 대변이라도 하듯 돌탑 주위로 까마귀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이 돌탑들은 한 남자가 자기 수행을 위해 10여 년 전부터 쌓은 것. 그러나 자연 그대로의 문수봉을 기대했기 때문인지 대단하다는 칭찬이 선뜻 나오지는 않는다. 그 탑들을 문수봉이 아닌 자신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았으면 어땠을까.
문수봉 하산길은 소문수봉으로 갈라지는 제당삼거리를 지나 당골광장까지 1시간 30분이면 족하다. 유일사 쪽 길이 바람이 심한 반면 문수봉 길은 매우 포근하다. 헐벗은 나무들일지라도 주목보다 훨씬 큰 키의 나무들이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 제당삼거리까지는 비교적 경사가 급하지만 그 이후로는 완만하다. 이미 태백산은 눈 속에 파묻혔지만 얼어붙지 않은 계곡이 길과 벗하며 흐른다. 마음까지 말끔히 씻어내는 청량한 물소리다.
산행 마무리 지점인 당골에 이르면 좌측에 단군성전이 있다.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을 모시는 곳이다. 당골매표소 근처에는 석탄박물관이 있다. 산행 후 한번쯤 들러볼 만하다. 우리나라 석탄산업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석탄 전문 박물관이다. 야외 전시장에는 채탄기와 광차 등 광산장비를 시대별로 전시해 놓았고 실내 전시장에서는 특수효과를 이용한 갱도체험을 할 수 있다.
산행을 마친 후 시간이 남는다면 동굴탐험에도 나서보자. 금대봉 하부 능선에 자리한 용연동굴은 해발 920m에 자리한 최고지대 동굴로 다양한 석순과 종유석 등을 관찰할 수 있다.
만약 태백산 눈꽃여행에 나설 맘이 생겼다면 태백의 재래장이 서는 날을 이용해 움직이는 것도 좋겠다. 태백에서는 5일장이 열리는데 매월 5일, 15일, 25일에는 통리에서, 10일, 20일, 30일에는 철암에서 장을 펼친다. 아기자기한 시골장의 재미가 참 쏠쏠하다.
★길잡이: 중앙고속국도 제천IC→38번 국도(영월 방면)→31번 국도(석항)→태백산.
★잠자리: 태백산도립공원 내에 민박촌이 있다. 콘도형 숙박시설로 총 15동 73실. 개인형에서부터 가족형, 단체형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먹거리: 태백의 고원에서 자란 한우의 참맛을 볼 수 있는 집이 있다. 상장동 1주공아파트 앞에 있는 ‘태성실비식당’(033-552-5287)이 그곳. 해발 65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자란 한우의 연한 고깃살을 연탄불에 구워먹는 맛이 기막히다. 보통 고기집이 200g을 1인분으로 치지만 이곳은 250g을 기준으로 할 뿐 아니라 가격도 훨씬 저렴하다. 생등심, 주물럭, 육회 2만 1000원.
★문의: 태백시청 관광문화포털(http://tour. taebaek.go.kr) 033-552-1360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