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문화공원 전경. 여행객들은 돌하르방과 함께 추억을 남기기도 한다. 이곳에선 휴양지가 아닌 역사 속의 제주가 보인다. | ||
‘돌 바람 여자’가 많아서 삼다도(三多島)라 불리는 제주. 연말께면 남성 인구수가 더 많아져 ‘이다도’(二多島)가 될 거라지만 제주는 우리나라 어느 지역보다 여성들의 사회활동과 위상이 높은 곳이다. 또한 제주는 태풍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바람의 섬’이요, 돌 그 자체가 역사인 ‘돌의 섬’이다. 단지 풍경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생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돌은 제주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제주돌문화공원은 제주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자연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제주다운’ 곳이다.
돌을 테마로 한 세계 최초의 공원인 조천읍 교래리 제주돌문화공원은 제주의 형성 과정과 제주의 역사 속에 깃든 돌문화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생태역사전시공간이다.
공원은 올망졸망 들어앉은 오름(기생화산) 사이의 너른 초원에 펼쳐져 있다. 공원에 발을 들이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2열종대로 늘어선 거대한 바위들이다. ‘전설의 통로’라 불리는 이 바위작품은 한라산 영실에 있는 ‘오백장군’바위를 상징하는 것. 바위들은 정말 장군들처럼 근엄하고 위용 있는 모습으로 문을 지키고 있다.
통로 옆에는 용암수형석과 연못이 있다. 용암수형석은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돌로 용암이 숲을 통과할 때 나무를 둘러싸고 흐르면서 나무는 타서 없어지고 나무를 둘러쌌던 용암만 굴뚝 형태로 굳어서 남은 것을 말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형석 내부에 수십만 년 전 나무의 표면이 그대로 각인돼 있다.
연못은 ‘물장오리’를 상징한다. 물장오리는 제주의 수호신이었던 설문대할망이 자신의 큰 키를 과시하다 빠져 죽은 곳이다. 물장오리 옆에는 석탑 하나가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참 투박하다. 기단도 허술하고 탑신도 기우뚱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것에 더 정감이 간다. 곰곰 생각해보니 그 석탑은 산을 오르다가 혹은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을 향해 가다가 길섶에서 봤던 돌탑을 닮았다. 소원성취를 바라면서 작은 돌멩이들을 올려 쌓은 것들. 그 크기는 다르지만 전혀 다듬지 않은 연못 옆의 돌탑 역시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전설의 문’을 활짝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또 하나의 연못이 나온다. 하늘연못이라 불리는 이 연못은 인공연못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연못은 물을 가두는 것이지만 하늘연못은 다르다. 연못은 웅덩이가 아니라 하나의 판이다. 그 판 위에 물을 끊임없이 흘려보냄으로써 물을 가둔 연못처럼 보이게 하는 것일 뿐이다. 지름 40m, 둘레 125m의 거대한 하늘연못은 공연무대로 사용되기도 한다.
▲ 삼나무 숲이 20㎞나 이어지는 비자림로.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에 선정되기도 했다. | ||
박물관은 기획전시실과 형성전시관, 영상실, 돌갤러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돌과 제주인의 삶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사진작품과 생활물품 전시회가 주기적으로 열리고 형성전시관과 영상실에서는 섬의 중앙부에 한라산이 형성되기까지의 다양한 화산활동과 그 진행과정을 보여준다. 돌갤러리는 화산활동의 결과로 태어난 기묘한 돌들을 전시해 놓은 곳. 어떠한 수석보다 아름답고 독특한 돌들이 눈길을 빼앗는다.
돌문화공원 1코스가 ‘박물관 속 제주’였다면 2코스와 3코스는 생생한 ‘현장 속 제주’다. 2코스는 선사시대의 돌문화를 시작으로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제주인들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돌을 이용하고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각각의 코스를 구분하고 있지만 달리 주제를 나눌 필요는 없어 보인다.
야외코스는 마치 민속촌을 옮겨다놓은 듯하다. 돌담이 길을 안내하고 곳곳에 제주 특유의 지붕 낮은 초가가 보인다. 제주의 돌담은 단순히 경계를 나누는 의미가 아니다. 제주의 흙은 화산회가 쌓여져 만들어진 것으로 아주 가볍다. 바람이 불면 고생해서 뿌린 씨앗마저 흙과 함께 날아가 버리기 일쑤. 돌담은 그 바람을 다스리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엉성하게 쌓은 듯하지만 돌담은 태풍에도 끄떡없을 만큼 단단하다.
돌은 초가를 짓는 데도 사용됐다. 외벽을 쌓는 데 돌을 쓰고 그 틈은 황토를 이겨 발랐다. 부엌에는 솥덕(솥을 받치는 돌)을 만들었다. 돌은 또 무덤에도 이용됐다. ‘산담’이라 불리는 ‘영혼의 울타리’를 돌로 쌓은 것이다. 마을 수호신 역할을 하는 돌하르방을 만들고 액막이 방사탑을 쌓는 데도 사방에 널려 있는 돌을 사용했다.
고립된 섬 제주에도 선사시대의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다. 돌문화공원 야외코스에는 제주 곳곳에서 출토된 고인돌을 그대로 재현한 모형물과 선사시대 사람들이 사용했던 화살촉, 돌괭이, 돌보습, 돌도끼, 절구 등 돌유물들을 복제해 전시해 놓고 있다.
돌문화공원 주변에는 가볼 만한 곳들이 많다. 산굼부리와 제동목장 등을 함께 엮는다면 훌륭한 하루여행코스가 된다.
한라산과 거의 같은 시기에 형성된 산굼부리는 깊이 100~146m, 둘레 2067m에 이르는 거대한 분화구를 가진 기생화산. 산굼부리 분화구는 한라산 백록담보다 더 깊다. 산굼부리는 해발 483m에 이르지만 워낙 높은 지역에 자리한 오름이라 실제 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다. 아래에서부터 마루(꼭대기)까지 10분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