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천 다랭이마을. 산을 깎아 만든 계단식 논과 푸른 바다가 어울려 고즈넉하고도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 ||
남해에서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곳은 가천 다랭이마을이다. 산을 깎아 층층이 계단처럼 논을 만들고 그 속에 마을을 이룬 이곳에는 초록 물결이 넘실댄다. 흔히 ‘계단식 논’이라고 부르지만 삿갓을 엎어놓은 것 같다고 해서 ‘삿갓논’이라고도 부르는 이 논들은 남해 사람들의 생존의 흔적이다. 자투리땅이라도 일궈 근근이 생명을 이어가야 했던 척박한 곳. 그러나 이제 이곳은 남해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남쪽 바다와 맞닿은 남면 해안 일대에 자리한 다랭이마을은 페루의 살리나스 소금계곡처럼 뱀의 비늘 같은 무늬를 펼치며 등성이를 따라 펼쳐져 있다. 단지 다른 게 있다면 이곳의 비늘에는 초록색깔이 덧입혀져 있다는 점이다.
논들은 겨우 손바닥만 하다. 넓은 것도 50평이나 될까. 그 작은 논마다 유채와 섬초(시금치), 마늘 등이 심어져 있다. 유채는 노랗게 꽃을 피웠지만 심어놓은 곳이 많지 않다. 대부분 마늘밭이다. 황토색 바닥을 드러낸 채 놀고 있는 땅도 있다. 하지만 이 빈 땅도 5월이 되어 모내기가 시작되면 푸른 물결로 넘실댈 것이다. 또 가을이 오면 빛나는 황금으로 치장을 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챌 것이다.
목초를 심어 놓은 논에는 염소들이 나그네의 방문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열심히 풀을 뜯고 있다. 때때로 아기 염소들이 아래 논으로 굴러 떨어질까 어미들이 신경을 쓸 뿐이다.
다랭이마을은 최고의 해안전망대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남자의 성기 모양과 임부가 누운 모양을 한 암수바위를 지나면 해안절벽으로 난 길이 있다. 전망대로 가려면 흔들다리를 건너야 한다. 뾰족 선 두 개의 바위 사이에 설치된 다리 길이는 기껏해야 7~8m. 그러나 10여m 아래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성난 파도를 보자니 그 끝이 닿지 않는 먼 곳에 있는 듯 아득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남해 바다는 비취색으로 찬연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 색깔로는 다 그 바다의 빛을 설명할 순 없다. 햇살에 부서지면서 산란하는 바다는 시시각각 푸른빛의 농담을 달리하며 눈길을 빼앗는다.
많은 이들이 남해에는 금산만 있는 줄 안다. 그만큼 금산이 유명해서지만 남해에는 망운산이라는 명산도 있다. 높이가 금산보다 100m는 더 높다. 물론 그래 봐야 786m로 백두대간에 자리한 산들에 비하면 아주 작은 산이지만 풍광은 매우 빼어나다.
▲ 작지만 운치 있는 망운산 화방사(왼쪽)와 화방사에서 약수를 마시는 아이들. | ||
망운산은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이곳을 찾아왔던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을 혼자 간직하고 싶어 쉬쉬하기 때문이라는데 주변 풍광을 보면 그 말이 이해된다.
망운산 정상에 오르면 남해 바다 앞으로 올망졸망 떠 있는 섬들이 보이고 강진만과 서상 앞바다, 지리산, 여천공단, 여수, 사천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보통의 경우 화방사까지 차로 올라온 후 화방사에서부터 망운암으로 오르는 숲길을 따라 1시간쯤 등산 겸 산책하며 이 산을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다. 산 정상까지 임도가 나 있는데 차량도 이용할 수 있다.
망운산 중턱에 있는 화방사는 작지만 운치 있는 명찰이다.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임진왜란 때 순국한 장병들의 영혼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호국사찰이기도 하다. 화방사는 참 아담하다. 일주문을 건너면 무지개모양의 홍예다리가 있고 그 앞에는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대웅전과 진리를 캐는 누각이라는 뜻의 ‘채진루’가 조붓한 절 마당을 사이에 마주보고 있다.
남해의 해안도로는 국내의 아름다운 드라이브코스 중 수위로 꼽힌다. 19번 국도를 따라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는 그 맛이 일품이다. 상주해수욕장과 남해의 베니스라고 불릴 만한 미조항을 지나쳐 삼동면 물건리 방향으로 달리는 길은 특히 멋있다. 낭떠러지 같은 길 옆으로 탁 트인 바다가 펼쳐지고 평화롭게 고기잡이를 하는 어선들의 모습이 보인다. 어디에서 자동차를 세우든 남해는 다 그림처럼 아름답다.
남해 곳곳에는 방조림이 형성돼 있는데 이 모습은 남해의 특별한 풍경 중 하나다. 태풍과 염해로부터 마을을 지키고 고기를 모이게 하는 숲이 마을마다 하나씩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물건리에 있는 방조림은 특히 유명하다. 길이 1.5㎞, 너비 30m에 걸쳐 반달형으로 팽나무와 상수리나무, 이팝나무 등이 심어져 있는 이 숲은 조성된 지 300년이 넘었다. 숲길을 따라 거닐며 어촌의 풍경을 감상하기 좋다.
▲ 편백휴양림에서 산책하는 가족들. | ||
독일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편백자연휴양림이 있다. 측백나무라고도 불리는 편백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나무들이 뿜어대는 피톤치드가 차고도 넘쳐 삼림욕하기에 참 좋다. 아직 나비가 날아다니기에는 이르지만 편백자연휴양림에서 나오다보면 나비가 유채밭 사이로 날아다니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나비생태관. 정식 오픈은 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들어가서 나비를 관찰할 수 있다. 인근에 있는 ‘바람 흔적 미술관’이라는 예쁜 이름의 미술관도 들러볼 만하다.
여행 안내
★길잡이: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진주 IC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타고 하동IC에서 나와 19번 국도 타고 달리면 남해대교.
★잠자리: 남해에는 펜션들이 많아서 잠자리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된다. 가천다랭이마을에서 미조면 쪽으로 가다보면 곳곳에 펜션들이 있다. 다시 미조면에서 삼동면 쪽으로 이어진 해안도로변에도 펜션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천다랭이마을에서 멀지 않은 홍현리 황토촌'http://www.honghyun.com 019-524-6242'은 추천할 만하다. 황토의 효과 탓인지 자고 나면 개운하고 주변 풍광도 그만이다.
★먹거리: 남해군청 앞에 있는 한정식집 '미담' 055-864-2277도 들러볼 만한 음식점이다. 싱싱한 해산물과 회, 갈비찜 등 푸짐한 한상차림이 일품이다. 수라상 1인분에 2만 2000원. 일반 한정식 1만 7000원.
★문의: 남해군청 문화관광포털'http://www.tournamhae.net' 055-860-8601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