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암사에는 목련도 수줍은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 ||
월등면은 순천과 곡성의 경계에 자리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이곳에는 농선, 월룡, 갈평, 운월, 신월, 송천, 계월 등의 작은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지역은 전남 최대의 복숭아 단지. 대부분 복숭아 생산 농가다. 해발 80~250m의 산간에 마을들이 형성돼 있다. 비록 땅은 비옥하지만 농경지가 협소해 이곳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복숭아나무를 심어 소득원으로 삼았다. 때문에 어느 마을 할 것 없이 4월 중순 무렵이면 복사꽃 흩날리는 무릉도원이 된다.
이 복사골은 그러나 아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희아산(763m)과 문유산(688m), 바랑산(619m) 등 산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꼭꼭 숨어 있는 탓이다. 전주에서부터 남원, 곡성, 순천을 거쳐 여수까지 이어지는 17번 국도가 옆으로 지나가는데 이 도로변에 계월리가 있다. 계월리는 순천의 향매실마을로 봄꽃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에게 더러 알려진 곳이다. 복사꽃이 피기 전 사람들은 계월리의 매화를 보고 그게 다인 줄 안다. 그 매화가 지면 더 깊은 골 쪽으로 복사꽃이 매화보다 흐드러지게 핀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모른 채.
월등면은 복숭아마을이긴 하지만 다른 유실수도 많이 가꾸는 편이다. 복사꽃 붉은 틈바구니에서 하얀 꽃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자두꽃이다. 아직 감꽃은 피지 않았지만 자두와 함께 감도 꽤 재배한다.
다른 종류의 유실수 숫자가 점점 느는 이유는 일손 부족 때문이다. 복숭아처럼 손이 많이 가는 과일도 없다. 하지만 젊은 인력이 거의 없어 어쩔 수 없이 복숭아보다 신경을 덜 써도 되는 매화와 자두, 감나무 등을 심거나 아예 폐원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쩌면 이 이름다운 복사골도 머지않아 지금의 정취를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풍경에 취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복사골만큼이나 봄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곳이 또 있다. 봄을 상징하는 절, 선암사가 그곳이다. 조계산 아래 자리한 선암사는 태고종의 총림으로 잘 알려진 곳. 요즘 선암사에선 봄꽃들이 한창 잔치를 벌이고 있다.
▲ 순천 복사꽃마을. 분홍빛 복사꽃이 활짝 피어 사방에 향기를 흩뿌리고 있다. 복사꽃을 솎느라 농부의 손길이 분주하다(오른쪽). | ||
선암사는 매화로 유명한 절이다. 하지만 그뿐이 아니다. 매화가 지자 벚꽃이 피었고 벚꽃이 지자 이번에는 왕벚꽃이 새로 피었다. 그 사이 어느새 목련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고 백일홍도 햇빛세례를 받으며 붉은 꽃을 자랑한다. 절 곳곳에는 동백이 여전히 애잔히 피어 있고 삼성각 옆에는 흔치 않은 하얀 동백도 봄을 만끽하고 있다.
크게 깨달은 스님의 영정을 모신 진영각과 주지 스님의 거처인 무우전 사이로 난 작은 길과 종무소로 사용하고 있는 청파당 앞은 선암사에서도 가장 봄의 색깔이 찬연한 곳이다. 무우전 사이 길은 좌측으로는 동백꽃이 우측으로는 왕벚꽃이 활짝 피었다. 붉은 동백과 하얀 왕벚꽃이 대비되면서 길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청파당 앞은 동백과 수양벚꽃과 백일홍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낸다.
순천만에도 봄이 찾아왔다. 가을과겨울철 갈대여행지로 유명한 순천만. 갈대가 꽃을 피우고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이 장관인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이 계절에도 추천하고픈 여행지다. 습지 위로 새롭게 올라오는 갈대들에게서 봄의 신선함이 느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순천시에서는 대대적인 갈대 베어내기 작업을 했다. 베어낸 지 겨우 며칠 지났을 뿐인데 순천만에는 파릇한 갈대들이 어느새 바닥에 깔려 있다. 마치 청보리처럼 연한 갈대는 바람의 결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햇빛에 싱싱한 몸을 부순다. 아직 남아 있는 갈대와 새로 솟는 갈대. 순천만에는 아직 겨울과 봄이 공존하지만 곧 푸른 갈대들이 누런 겨울의 이미지를 밀어낼 것이다.
순천만은 나무 데크를 따라 산책하기 참 좋은 곳이다. 산책길의 종착점은 용산전망대다. 해룡면 농주리에 자리한 용산전망대는 순천만의 멋진 해거름을 볼 수 있는 곳.
▲ 푸릇한 갈대가 새로 돋아나는 순천만에서도 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 ||
참, 낙안에도 봄이 찾아왔다. 낙안은 읍성민속마을이 있는 곳. 이곳에는 살구꽃과 배꽃이 만개했다. 팝콘을 튀겨 놓은 것 같은 하얀 배꽃들은 성 밖에 피어 있고 성 안으로는 연분홍 살구꽃이 곱게 피어 맘을 설레게 한다.
여행안내
★길잡이: 호남고속국도 승주IC→승주 방면 22번 국도 우회전→월등 방면 857번 지방도 좌회전→월등면
★잠자리: 월등이나 선암사 쪽은 잠자리가 마뜩찮다. 순천만이 있는 대대동에 ‘순천만갈대바람’(061-741-0302)과 ‘흑두루미둥지’(061-742-1737) 등 펜션이 더러 있다. 낙안읍성 내에는 초가민박들이 많다. 시골정취가 물씬 나는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먹거리: 선암사 쪽 연향동 금당지구에 자리한 ‘일품매우’(061-724-5455)를 추천한다. 광양과 순천 등지에서 나는 매실을 먹인 소고기 요릿집이다. 고기가 무척 부드럽고 고소하다. 생갈비, 꽃등심, 안창살, 안심추리 등 특수부위가 1인분에 1만 8000원. 모듬구이스페셜은 7만 원.
★문의: 순천시청(http://www.suncheon.go.kr) 관광진흥과 061-749-3328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