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살을 늦추기 위해 큰 돌들을 박아 놓은 도깨비살. | ||
섬진강은 전북 진안에서부터 발원해 제철소의 뜨거운 열기를 식히려 저 멀리 광양만으로 달려간다. 그 흐르는 강물을 좇아가는 길은 항상 즐겁다. 날씨가 변덕스러워도 좋다. 심술궂은 하늘이 비를 흩뿌리면 오히려 더 운치가 있기도 하다.
딱 강물의 유속만큼의 빠르기로 나란히 달리는 섬진강 드라이브는 곡성 호곡리에서부터 시작된다. 17번국도를 타고 남원을 지나 곡성방면으로 내달리다보면 호곡리에 이르러 왼쪽으로 넓은 물길 하나가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섬진강이다. 물길과 찻길은 애증관계의 남녀처럼 평행선을 그리며 나아간다.
고리실나루터를 넘어 두가리, 그리고 가정리에 이르면 아쉽지만 함께 동행했던 강물을 저 혼자 흘려보내고 잠시 휴식이다. 가정역은 곡성 기차마을에서부터 출발한 열차의 회차 지점이다.
지금은 전라선 복선화 공사로 폐선이 된 구 곡성역에서 가정역까지 10km 구간을 추억의 증기기관차가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신나게 달린다. 이 기차는 1960년대에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운행했던 것으로 기관차 2량과 객차 3량의 미니열차다. 시속 40km도 채 안 되는 속도의 느림보 기차지만 그 재미만큼은 기대 이상이다. 찻길보다 조금 더 높은 지점에 있는 기차길 위에서 강물을 굽어보는 맛이 있고, 항상 페달을 밟고 있어야 할 발과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할 손, 전방을 주시해야 할 의무가 있는 눈에게 자유를 줌으로써 완벽한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
물길이 달리고 찻길이 달리고 또 기찻길이 달리는 섬진강변 17번국도. 이곳에는 낭만이 있고 자유가 있다.
가정역에서 조금 더 머무르도록 하자. 이곳은 우리나라 제일의 하이킹코스이기도 하다. 가정역 자전거대여점에서 자전거를 한 대 빌려 강변하이킹을 즐겨보자.
▲ 섬진강에서 래프팅하는 사람들(위), 옛 선비들의 풍류를 맛볼 수 있는 운조루. | ||
이 다리를 건너 압록역으로 가는 길. 강물은 여전히 흐르는 듯 마는 듯 조용하다. 따가운 햇살이 부담스러울 계절. 그러나 고맙게도 태양이 숨어있어 더 좋은 하이킹코스다.
그 고요한 강물도 딱 한 군데, 도깨비살에서만큼은 요란스럽다. 도깨비살은 도깨비가 만든 살뿌리를 뜻하는 둑이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강물에 큰 돌들을 박아 물살을 늦춘 곳이다. 마치 징검다리 같은 도깨비살 사이로 빠져나가는 강물이 숨겼던 존재감을 드러낸다. 도깨비살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이곳에만 보존돼 있다.
섬진강변 드라이브를 더 즐기려면 곡성에서 구례로 넘어가 19번국도로 갈아타야 한다. 19번국도에 오르면 곧바로 운조루가 반갑게 맞는다. 토지면 오미리에 자리한 운조루는 270년 역사의 고택으로 류씨 일가 일곱 식구가 살고 있다.
건축 당시 78칸이던 집은 현재 60여 칸이 보존돼 있다. 자신들이 사는 공간을 내어주는 불편을 감수하는 대신 1천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살고 있는 집 몇 칸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두를 개방하고 있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옛 선비들의 풍류를 맛보거나, 갈 길을 잠시 잊고 정자 위에 누워 스르르 잠에 빠져도 좋을 일이다.
구례에서부터 길은 양 갈래다. 강 위로는 19번국도가 달리고 아래로는 861번 지방도가 강과 벗한다. 861번 지방도길은 구례, 19번국도가 난 곳은 하동. 강을 경계로 전라도와 경상도가 나뉘는 것이다.
섬진강 화개장터 부근은 은어낚시 명소다. 어려서 먼 바다로 헤엄쳐 갔던 은어는 다 자라 산란을 위해 섬진강으로 돌아온다. 은어낚시꾼들은 기다란 낚시대를 강물에 드리우며 돌아온 은어를 유혹한다. 은어는 자기들의 세력권을 형성하는 습성이 있는데, 씨은어 한 마리를 낚시바늘에 꿰고 그 세력권 안으로 들여보내면 은어들이 무리 속으로 침범한 그 은어를 밀어낸다. 그 과정에서 씨은어의 몸에 달아놓은 낚시바늘에 은어들이 걸리는 것이다.
여행안내
★길잡이: 호남고속국도 전주IC→17번국도→남원→곡성 가정역→구례→19번국도→하동.
★먹거리: · 구례 화엄사, 천은사 등 유명 사찰 인근에 맛집들이 있다. 화엄사 아래 ‘지리산대통밥(061-783-0997)’은 더덕무침과 갖은 나물 등 반찬이 푸짐하다. 대통밥 1만원. 천은사 앞에는 흔치 않은 사찰음식을 내놓은 ‘초가원식당(061-781-1985)’이 있다. 맵고 짠 일반 음식과 달리 재료 본연의 특성을 살린 깔끔한 맛이 일품. 사찰음식 1만 2000원. · 하동으로 가면 역시 재첩국이다. 하동 송림 인근 ‘동흥식당(055-883-8333)’ 재첩국이 유명하다. 이 식당은 반세기 동안 재첩국 장사를 해온 집이다. 재첩국 7000원, 재첩회무침 2만 원.
★잠자리: 섬진강변에 아름다운 펜션들이 있다. 하동 골망태펜션(055-882-2237), ok빌리지(055-884-6760). 구례에는 운조루 인근 곡전제(061-781-2532)가 민박을 놓는다. 전통 가옥에서의 하룻밤도 참 운치 있다.
★문의: 구례군청(http://www.gurye.go.kr) 061-782-2014, 하동군청 문화관광포털(http:// tour.hadong.go.kr) 055-880-2114, 섬진강기차마을(www.gstrain.co.kr) 061-360-8850.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