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릿한 향수에 젖게 만드는 봉평 메밀밭과 문화마을 앞 솟대 | ||
해거름 녘이어서일까. 메밀꽃의 향기가 유난히 짙다. 올해도 비는 잦았지만 다행히 지난해처럼 큰 수해가 없어서 메밀꽃밭이 온전할 수 있었다. 8월 말부터 강원도 평창군 봉평읍 일대를 하얗게 물들이기 시작한 메밀꽃이 이제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봉평을 메밀꽃동네로 만든 것은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힘이다. 따지자면 그 소설 전체가 아니라 단 한 문장의 영향이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라는. 마치 시처럼 서정적인 이 문장에 매료된 사람들은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하나둘 봉평을 찾기 시작했다.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가 평생 잊지 못할 하룻밤 사랑을 나누었던 물레방앗간을 기웃거리면서.
이효석 문학비가 있는 가산공원 앞 흥정천을 건너면 물레방앗간이다. 흥정천에는 차량이 다니는 큰 콘크리트다리와 그 옆으로 나란히 섶다리가 놓여 있다. 섶다리는 소나무 가지를 얼기설기 엮은 후 황토를 발라 만든 다리로 해마다 이맘때면 새롭게 건설된다. 다리 아래로는 맑은 강물이 흘러내리며 푸른 하늘빛을 담아낸다.
물레방앗간에서부터 1㎞ 위쪽에 있는 이효석 생가까지 메밀꽃은 물결을 이룬다. 사방이 온통 메밀꽃밭이다. 벌도 취한다는 메밀꽃의 향기가 가을바람을 타고 코끝으로 전해져 온다. 다소 시끌시끌한 주막거리를 지나면 시골의 정취를 맛볼 수 있으니 소설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걸어가보자.
생가 가는 길에는 이효석문학관이 있다. 이효석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조명해 놓은 곳으로 초간본 책과 작품집 등이 전시돼 있다. 높은 언덕에 자리한 문학관에서 아래를 굽어보면 메밀꽃밭이 마치 구름처럼 펼쳐져 있다.
애초 초가였던 이효석 생가는 기와지붕으로 복원됐다. 문학관의 화려함에 비해 생가는 너무 초라한 느낌이다. 이효석의 일대기나 집과 관련된 추억들을 알려주기보다 봉평을 소개한 신문기사들을 창문 곳곳에 붙여놓아 씁쓸한 마음이 든다.
▲ 가을꽃으로 가득한 한국자생식물원은 요즘 벌개미취가 한창이다(위), 다양한 조각들로 풍성한 무이예술관. | ||
볼거리도 많다. 축제의 주 무대에서는 평창군 8개 읍면의 민속공연과 봉평 주민들의 민속공연, 타북공연 등이 연일 계속된다. 시와 노래로 엮는 문학콘서트와 아리랑콘서트, 국립국악단원들의 국악공연 등 다채로운 무대도 열린다. 특히 토요일에는 주민 400여 명이 연출하는 가장행렬이 가산공원에서 출발해 문학관까지 이어진다. 축제를 제대로 즐기려면 그 흥겨운 걸음을 따라 춤추고 노래하며 어울려 보자.
효석문화마을 주변에서도 축제는 열린다. 덕거연극인촌에서는 달빛 아래에서 연극공연과 클래식연주회 등이 열린다. 메밀꽃밭 속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즐기는 문화공연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듯하다.
무이예술관에서는 메밀꽃 그림들을 전시한다. 이곳에는 또 메밀꽃압화, 장승깎기, 도자기만들기 등 온가족이 즐길 만한 다양한 체험거리가 마련돼 있다. 특히 폐교를 개조해 만든 무이예술관은 그 자체로도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곳이다. 유머러스한 조형물로 가득한 실외조각공원과 각종 소품들이 빼곡한 교실전시장은 여느 대도시의 미술관 못지않다.
휘닉스파크와 로하스파크, 대관령고랭지농업연구소 등에서도 이즈음 야외뮤직페스티벌과 불꽃놀이 등 행사가 개최된다.
봉평에는 메밀꽃밭만 있는 게 아니다. 가을의 들꽃들이 향기를 뿜어대는 한국자생식물원이 있다. 이곳에는 요즘 벌개미취(국화과의 풀)가 한창이다.
오대산 월정사로 가다보면 우측으로 자생식물원길이 따로 나 있다. 이 길을 따라 1.5㎞ 정도 달리면 자생식물원이다. 이 식물원은 우리나라 고유의 꽃과 나무들로만 조성된 곳이다. 너무나 쉽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퍼져버린 외래종 식물들. 외래종이 토종의 자리를 점점 밀어내고 안주인처럼 자리한 현실에서 어떤 게 우리 것이고 또 어떤 게 외래종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이 식물원은 더 반갑다.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토종 식물들을 맘껏 볼 수 있고 또 ‘긴가민가’ 헷갈려 할 필요도 없다.
습지원 인근에 군락을 이뤄 피어 있는 분홍바늘꽃은 마치 급제한 어사의 투구에 꽂던 어사화처럼 하나의 꽃대에 수많은 꽃들을 달고 1m 넘는 높이로 자라 있다. 계속된 비에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충분히 아름다움을 뽐낼 만하다. 습지원에는 보랏빛 큰제비고깔을 비롯해 물봉선 등의 꽃들이 만발했다.
습지원과 분홍바늘꽃 군락을 넘어서면 벌개미취 들판이 나온다. 옅은 보랏빛 벌개미취들은 수더분한 아름다움을 뽐내며 가을바람에 한들거린다. 이 꽃들이 지면 자생식물원은 구절초가 유혹하는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어 나뭇잎들이 빨갛게 익어갈 것이다.
여행 안내
★길잡이: 영동고속국도 면온IC→휘닉스파크 방면 직진→6번 국도→무이예술관→효석문화마을
★먹거리: 효석문화마을에 있는 ‘고향막국수’(033-336-1211)는 막국수로 유명한 봉평에서도 알아주는 집. 국물에 꿀을 넣어 독특한 맛이 난다. 순메밀국수 5000원, 막국수 4000원, 전병 5000원, 수육 1만 5000원. 하나 더 추천하고픈 집이 있다. 휘닉스파크에서 직진해 6번 국도와 접하는 부근에 있는 ‘산촌순두부’(033-333-5661)가 그곳. 손님이 주문을 하면 즉석에서 순두부를 만들어준다. 산촌순두부정식(2인 이상) 1만 2000원.
★잠자리: 면온에서 속사 방면 6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왼쪽으로 ‘숲속의요정’(033-336-2225) 펜션단지 가는 길이 보인다. 유럽의 별장 분위기를 연출한다.
★문의: 평창군 문화관광포털(http://yes-pc.net) 033-330-2753, 효석문화제위원회(http:// hyoseok.com) 033-335-2323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