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다란 몽돌이 해안 가득 널려 있는 구계등. 돌밭이 아홉 계단을 이룬다고 구계등이다. | ||
전라남도 완도군 군외면 정도리 앞바다. 모래가 한 점도 없는 신기한 해안이 이곳에 펼쳐져 있다. 소설의 문장을 잠시 더 빌리자. “…청환석이라고 해서 푸른 돌들이 해안을 따라 죽 깔려 있죠. 해안선이라고 해봐야 기껏 700미터밖엔 안 되지만 돌밭이 바닷속으로 아홉 고랑을 이뤄 내려가 있다고 하니 장관은 장관인 셈이죠. 그래서 구계등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이곳 해변에 있는 돌들은 모두 둥글둥글한 몽돌이다. 몽돌은 희부연 것에서부터 검푸른 것까지 다양하다. 특히 검푸른, 그래서 ‘청환석’이라고 부르는 돌들은 천년 동안 바닷물에 씻겨 마침내 푸른색을 띠게 되었단다. 어쩌면 오랜 세월 동안 바닷물에 잠겨 있던 그 돌들에 물빛이며 하늘빛이 스며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돌밭이 아홉 계단을 이룬다는 구계등. 바다 속으로 몇 개의 계단이 숨어 잠을 자는지 모르지만 물 밖으로 나온 계단은 보통 3~5개 정도 된다. 그 해안의 폭이 100m가 넘는 곳도 있다. 돌들은 크기가 바지락 껍데기만 한 것에서부터 어른 머리 크기만 한 것까지 다양하다.
거제의 학동 몽돌해변이나 여수의 무술목해변도 몽돌로 유명하지만 이곳처럼 곱고 다양한 크기의 몽돌이 깔려 있지는 않다. 특히 구계등은 그 몽돌들이 얼마나 깊이 쌓여 있는지 짐작하지 못할 정도다.
▲ 맨 위 사진은 완도항 앞 주도의 상록수림. 구계등 해안을 따라 펼쳐진 숲에는 낙엽이 곱게 깔렸다(가운데). 드라마 <해신> 촬영지로 유명한 소세포. | ||
구계등은 특히 해거름이 아름답다. 정도리 일몰은 완도에서도 알아주는 명물이다. 평화롭게 떠 있는 배들과 실루엣이 아름다운 해안절벽 그리고 황금햇살에 물드는 몽돌까지 마음을 포근하고 또 풍요롭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풍경이다.
해가 질 때면 표면이 매끈매끈한 몽돌들은 거울처럼 햇살을 반사시킨다. 파도에 잠겼던 몸을 드러내며 반짝이는 몽돌들은 상쾌한 화음의 노래를 연주한다. ‘촤르르르….’ 파도의 크기와 빠르기에 따라 몽돌의 노래도 변한다.
구계등에는 해안의 길이만큼 방풍림이 조성돼 있다. 언제 조성됐는지는 명확치 않지만 25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에는 40여 종의 상록수와 단풍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계절은 벌써 겨울로 접어들어 첫눈도 내렸건만 이곳엔 여전히 가을이 머물고 있다. 방풍림에는 자연관찰로가 나 있는데 그 길을 따라 들어가 보면 고운 빛깔의 단풍과 수북이 쌓인 낙엽과 마주친다. 가는 길마다 개서어나무며 생달나무 등의 이름표가 붙어 있어서 자연학습장의 노릇을 톡톡히 한다. 도중 곳곳에 벤치도 마련돼 있어서 쉬어가며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완도는 한겨울에 접어들어도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숲산책 일번지’이다. 구계등의 방풍림 외에도 완도에는 멋진 숲들이 곳곳에 있다. 해남에서 완도로 접어든 뒤 77번 국도를 타고 오른쪽으로 달리다보면 완도수목원과 만나게 된다.
이곳은 상록활엽수로는 세계 최고·최대의 집단 자생지이다. 2000㏊의 광활한 면적에 3449종의 식물이 자생하거나 이식돼 자라고 있다. 겨울기온이 웬만해서는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없는 데다가 숲이 바람을 막아 더 없이 포근하다. 요즘 이곳에 가면 넓은 낙엽을 드리운 활엽수림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곳에는 산림전시관과 열대온실, 수생식물원, 전망대 등이 갖춰져 있다.
수목원을 지나자마자 오른쪽 바닷가를 바라보면 긴 방풍림이 보인다. 대문리 모감주나무군락이다. 이 방풍림은 태안 안면도, 포항 발산리 등과 함께 대표적인 모감주나무군락으로 꼽힌다. 흔히 ‘염주나무’라 불리는 모감주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28호로 지정된 세계적인 희귀수종이다. 7월에 황색 꽃이 피고 꽈리처럼 생긴 열매를 맺는다. 이곳에 있는 모감주나무는 474수로 다른 수종과 함께 해안선을 따라 1㎞가량 늘어서 있다. 모감주나무는 생김새가 마치 다섯 손가락을 하늘로 쳐든 형상과도 같다.
섬은 손바닥만 하다. 섬 중앙에는 성황당이 있고 붉가시, 참식나무, 다정큼나무 등 희귀나무들이 빽빽이 섬을 감싸고 있다. 항구와 섬 사이는 고작 30m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배를 타고 건너갈 수 있는데 요즘 빈번한 탐방으로 나무의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배를 빌려 타고 직접 들어가서 보는 것도 좋지만 섬을 코앞에서 바라볼 수도 있는 만큼 눈으로 감상하는 것도 결코 나쁘지만은 않다.
완도는 크고 작은 201개의 섬을 거느리고 있다. 그 섬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있지만 신지도만은 완도읍과 이어져 있다. 보길도나 소화도, 청산도 등은 모두 배를 타고 가야 하지만 완도읍과 신지도를 잇는 연륙교가 생기면서 신지도는 육지생활권이 되었다.
완도 여행길에는 드라이브 삼아 신지도를 훌쩍 돌아보고 나오자. 신지도에는 명사십리해수욕장과 왜가리서식지 등 볼만한 것들이 있다. 명사십리해수욕장은 쌀가루처럼 고운 모래사장이 십 리나 이어진 곳으로 여름철뿐만 아니라 요즘도 찾는 사람이 많다. 바람이 차지 않고 파도가 거의 없어서 바닷가를 산책하기에 좋다. 수백 년 된 소나무 군락지가 어우러진 가인리에는 왜가리들이 무리지어 산다. 소나무마다 왜가리들이 보초를 서듯 앉아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여행안내
★길잡이: 서해안고속국도 목포IC→2번 국도→성전→13번 국도 해남 방면→완도
★먹거리: 완도 주도상록수림 앞에 ‘아시나요’(061-554-3049)라는 식당이 있다. 간판에는 ‘탕전문’이라고 적혀 있지만 더 유명한 것은 전복회덮밥이다. 전복, 해삼, 멍게를 한 마리씩 넣고 톳과 김 그리고 싱싱한 채소를 넣어 비벼먹는 맛이 일품이다. 전복회덮밥 1만 원, 장어주물럭물회 3만 원.
★잠자리: 구계등 국립공원이 있는 정도리에 캡틴하우스(061-552-2020), 청해민박(061-552-1716), 솔밭민박(061-552-1900) 등이 있다.
★문의: 완도군 문화관광포털(http://tour.wando.go.kr), 문화관광과 061-550-5224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