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수원의 북문인 장안문. 현재 개방되어 문을 통해 드나들 수 있다. 2. 화성 건축시 정약용이 사용한 거중기. 3. 수원화성의 군사통제소인 서장대. 팔달산 꼭대기에 있는 이곳에 서면 수원 시내가 다 내려다보인다. 서장대는 이미 숭례문과 같은 아픔을 두 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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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리에 방영 중인 TV 드라마 <이산>은 정조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정조는 학문 장려와 문예부흥 등을 통해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그러한 정조의 업적 중 하나는 화성 건축이다.
화성은 정조 즉위 18년인 1794년 1월에 착공해 2년 9개월 만인 1796년 9월에 완공됐다. 보통 ‘수원성’이라고 부르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수원성이라는 이름은 일제에 의해 바뀐 이름이다. 효와 덕행이 꽃피는 도시가 되길 기원하며 정조가 직접 지은 ‘화성’(華城)이라는 고유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옳다.
정조는 왕권 강화와 퇴위 후 여생을 보내기 위해 신도시 화성을 건설했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당시는 당파 간의 암투가 극에 달했던 시기로 왕권 또한 이들 당파에 의해 좌지우지됐다. 정조는 이에 화성을 건설하고 왕의 친위부대로 하여금 이곳을 지키게 하며 훈련시켰다.
화성은 서울의 축소판으로 성곽이 도시를 감싸고 동서남북 사대문을 두었다. 동쪽은 창룡문, 서쪽은 화서문, 남쪽은 팔달문, 북쪽은 장안문이다. 성내에는 왕의 거처인 행궁을 중심으로 향교와 관아, 역참, 상가 등이 설치됐다. 완벽한 하나의 계획도시를 향한 걸음이 시작됐던 것이다.
그러나 정조의 꿈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고 더불어 ‘이상도시’ 화성의 꿈도 사라졌다. 화성 건축 4년 후 정조는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만약 정조가 그토록 빨리 사망하지 않았다면 화성의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 서울의 위상을 위협할 거대도시로 바뀌어 있지 않았을까.
미완의 도시 화성은 현대로 넘어 오면서 수차례 고난을 당했다. 특히 한국전쟁 때는 성곽 곳곳이 무너지고 성내의 목조건물들과 누각이 불탔다. 북문인 장안문은 포탄을 맞아 거의 주저앉다시피 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성벽 보수작업이 진행되고, 사라진 건축물들은 ‘화성성역의궤’를 바탕으로 재건되었다.
안타깝게도 그러나 관리는 허술했다. 군사지휘소인 서장대는 2년 전 방화로 2층 누각이 소실됐던 것까지 모두 세 번이나 불에 탔다가 복원됐다. 하지면 여전히 폐쇄회로TV와 무인경비시스템은 갖춰지지 않았다. 순찰자도 밤에는 근무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에는 여중생들이 잃어버린 휴대전화를 찾는다며 화서문 앞 화서공원 억새밭에 불을 붙이는 사건도 있었다. 어처구니 없는 이 사건으로 하마터면 화서문 서북각루가 다 탈 뻔했다. 철저한 관리와 문화재를 사랑하는 시민의식 함양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화성은 정말 아끼며 사랑해야 할 문화유산이다. 성곽을 따라 한 바퀴 찬찬히 둘러보면 그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될 정도로 화성은 아름답다.
성곽순례는 어디에서 시작해도 좋다. 딱히 시작점이랄 곳이 없다. 사대문 어디서 출발하든 혹은 곳곳에 난 암문을 이용하든 성내로 들어와 성곽을 따라 걸으면 된다.
성곽의 총길이는 약 5.7㎞. 쉬엄쉬엄 걷더라도 3시간이면 충분하다. 화성은 동서남북 4대문과 남북 2수문, 5암문, 각종 포루와 적대, 봉돈 등 모두 41개소의 시설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7개의 시설물은 미복원 상태로 남겨져 있다.
▲ 수원의 서문인 화서문. 성문을 지키기 위해 성문 밖으로 갈고리처럼 쌓은 옹성이 특이하다. 아래 사진은 정조가 화성 행차시 머물던 임시처소인 화성행궁. 576칸 규모의 거대 건축물이다. | ||
성의 모든 비밀이 담긴 ‘성역의궤’에는 축성에 동원된 인부들의 이름과 총지출비용, 식비 등도 꼼꼼히 기재돼 있다. 인부들은 강제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았다. 게다가 생업에 종사하는 백성들에게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성벽에 들어갈 돌 하나하나의 치수를 알려준 후 그 치수에 맞는 돌을 가져오면 돈을 지불하는 지혜를 활용했다. 이 어마어마한 공사를 백성들의 불만 없이 2년 6개월 만에 끝낼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다.
화성의 사대문 중 숭례문과 가장 닮은 곳은 남문인 팔달문이다. 남대문시장처럼 지동시장이 있는 것도 비슷하다. 사방팔방으로 길이 열린다고 해서 팔달문이다. 화서문과 창룡문에 비해 팔달문과 북문인 장안문은 보다 크고 화려하다. 팔달문은 다른 문들처럼 반달형 옹성 형태다. 반달 모양으로 둥글게 벽을 쌓아 문을 가리고 침입하는 적들의 접근이 힘들게 했다.
이 팔달문 구간을 제외하고 성곽은 모두 이어져 있다. 창룡문 쪽에서 팔달문 방향으로 성곽을 돌 경우 동남각루에서 길은 끝난다. 동남각루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지동시장이 있고 그 건너에 팔달문이 있다. 순대와 떡이 유명한 지동시장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던 팔달문 옆에 자연스레 형성된 지동시장의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평평하던 성곽 길은 팔달문에서 서남각루로 올라가면서 급격한 경사를 이룬다. 300m쯤 되는 계단길로 숨을 헐떡이게 만든다. 이 길을 계속 따라가면 팔달산 정상의 서장대다. 군사지휘소로 설치된 누각이다. 2년 전 화마의 흔적은 말끔히 지워져 있다. 서장대 누각에 오르면 수원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옛 건축물인 성곽과 현대의 집들이 어울린 수원의 모습이 아름답다.
화성건축물 중에서도 방화수류정은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이 난 곳이다. 장안문에서 창룡문 방향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 방화수류정은 군사시설과 휴식시설의 조화가 절묘하다.
한편 성내에는 화성행궁이 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인 현륭원에 갈 때마다 머물던 임시처소로 궁궐의 축소판이다. 정조 사망 뒤 진영을 봉안한 화령전이 행궁 옆에 있다.
여행 안내
★길잡이: 서울에서 수원으로 이어지는 1번 국도를 타고 가면 창룡문 사거리가 나온다. 이곳에 주차장이 있고 성내로 진입하면 연무대에도 주차장이 있다. 주차는 3시간 기준 2000원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수원역에서 북문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남문이나 북문에서 내리면 된다.
★먹거리: 수원은 갈비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팔달구 우만동에는 그 이름처럼 소갈비집이 많다. 특히 본수원갈비(031-211-8434)는 몇 년 전 집을 다시 올리면서 맛이 예전만 못해졌다는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수원의 갈비집 중에서 최고라는 평을 듣고 있다.
★문의: 화성사업소(www.suwonhs.ne.kr) 031-228-4410~2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