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개에 젖은 안성목장. 파릇한 호밀이 봄을 알리고 있다. 아래 사진은 청룡지 너머에 있는 바우덕이 사당. | ||
사실 안성목장이 가장 좋을 때는 지금이 아니다. 4월이 되어 호밀이 무릎까지 올라왔을 때 안성목장은 그 아름다움이 빛을 발한다. 하지만 신선한 초록에 대한 갈망이 안성목장으로 사람들을 자꾸 불러 모은다.
안성IC에서 나와 38번 국도를 타고 안성 방면으로 가다가 공도읍 서태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들어가면 안성목장에 닿는다. 본래 이름은 ‘안성 농협중앙회 안성목장’이다. 안성목장은 목장 길을 따라 달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구제역 때문에 대관령목장과 서산목장 길은 차량을 통제한 지 오래다.
안성목장은 전체 면적 130만㎡ 중 100만㎡를 한우 사료용 목초지로 할애하고 있다. 이중에서 40만㎡에 호밀을 심는다. 나머지는 알팔파와 같은 사료용 작물을 키운다. 목장에서는 2000마리 가까운 소를 키운다.
호밀은 보리에 비해 조금 더 색깔이 짙고 성장도 빠르다. 이곳의 호밀밭은 청보리밭으로 유명한 고창의 학원농장과 면적 면에서 견줄 만하고 풍취 면에서는 더 낫다. 안성목장은 전형적인 구릉지대다. 능선끼리 서로 교차하면서 젖무덤 같은 골을 만들고 이 길은 목장을 열십(十)자로 가른다. 호젓하게 자동차를 타고 목장 길을 달리며 봄날의 한가로움에 취하는 기분이 그만이다.
목장의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외로운 나무들이다. 미루나무들이 간혹 한 그루씩 목장 길 옆에 서 있다. 호밀은 이파리들이 돋아났지만 미루나무는 아직 가지가 빈약하다. 그러나 미루나무도 이달 중순이면 잎을 틔우기 시작하고 호밀과 함께 안성목장의 푸르름에 한몫할 것이다.
안성의 호수들도 봄을 맞아 몸을 풀고 있다. 수면의 얼음이 녹고 호숫가 버드나무도 하나둘씩 이파리를 밀어내고 있다. 아침녘이면 물안개가 피어올라 제법 운치 있는 안성의 호수들을 봄여행의 테마로 잡아도 좋을 듯하다.
익히 알려진 고삼호 외에도 안성에는 금광호와 청룡호 같은 유명 호수들이 많고 주변 볼거리도 풍부하다. 그중 금광호는 문학기행을 떠나기 좋은 곳이다. 금광호에는 이 시대의 글쟁이 중 한 명인 장석주 씨의 자택 ‘수졸재’(守拙齋)와 시인들의 쉼터인 ‘미평문학관’이 있다.
수졸재는 ‘낮은 자리를 지키며 사는 사람의 집’이라는 뜻으로 금광호의 새벽 물안개를 사랑하며 글을 쓰는 장 씨의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하얀 벽면에 까만 지붕을 올린 두 채의 호숫가 집으로 장 씨는 이곳에서 지난해 여름 <새벽예찬>이라는 책을 냈다. 수졸재 근처에 자리한 미평문학관은 아는 사람만 아는 시인들의 교류처다. 이곳에는 안도현, 정호승, 김기택 등 유명 시인들의 육필원고 1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청룡호도 빼놓을 순 없다. 서운산 기슭에 자리한 청룡호 근처에는 안성의 상징적인 인물인 ‘바우덕이’(조선시대의 빼어난 여성 예인)를 모시는 사당과 고려 말 창건된 유서 깊은 청룡사가 있다.
▲ 가솔리 쌍미륵. 이스트섬의 거대 석상을 닮았다(위).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이곳에선 현장 미술학습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 ||
안성은 문화와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부터 안성은 젊은 미술가들의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스스로 갤러리들을 만들어 작품을 전시하고 지역과 호흡하려 노력한다.
대안미술공간 ‘소나무’도 그 가운데 하나다. 미양면 계륵리 오양골에 자리한 이 갤러리에서는 작품 전시도 하지만 현장 미술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미술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트센터 ‘마노’에서는 지역 도예가들의 작품이 상시 전시된다. 작품보다도 더 ‘작품스러운’ 거꾸로 선 집이 바로 전시관이다. 이곳에서도 생활수공예품과 금속, 섬유, 도자기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너리굴문화마을도 들러볼 만하다. 가족끼리 오붓하게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멋진 숙소와 함께 칠보공예, 천연염색, 신체캐스팅 등 체험거리 또한 다양해서 지루할 틈이 없다. 미술관과 아트숍 등이 있어 눈도 즐겁다. 문화마을 전체로 보자면 하나의 거대한 야외미술관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곳곳에 멋들어진 조각작품들이 눈길을 잡아끈다.
안성은 미륵의 고장이다. 대농리, 아양동, 매산리 등지에 석불이 널려 있다. 그중에서도 가솔리 석불 입상은 안성의 미륵불을 대표할 만하다.
38번 국도를 타고 안성 시내에서 죽산 방면으로 가다가 가솔리 방향으로 좌회전해 들어가면 국사봉 중턱에 있는 쌍미륵사와 만나게 된다. 바로 이 절 앞에 서로 10m쯤 떨어진 채 나란히 서 있는 미륵불 2개가 있다. 파주 용미리의 쌍미륵이 서로 붙어 있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가솔리의 쌍미륵불은 이스트섬의 거대 석상을 닮았다. 미륵불은 각각 남자와 여자의 모습으로 왼쪽에 자리한 남자 미륵불의 키가 5.4m로 5m인 여자 미륵불보다 조금 크다. 미륵불은 갓을 쓴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데 몸과 얼굴이 길쭉하다.
이 미륵불에는 궁예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스스로 미륵불의 화신이라 칭하던 궁예가 이곳 국사봉에서 자신의 형상을 한 미륵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3기의 미륵불 가운데 중앙에 있는 것이 궁예 자신이고 좌불은 문관, 우불은 무관을 상징한다고 한다. 궁예미륵은 영험하다고 소문이 나서 안성 사람들이 자주 찾아와 소원을 빈다. 가솔리 쌍미륵불을 찾아 가게 된다면 20분쯤 발품을 더 팔아 국사봉으로 올라가 궁예미륵을 한번 만나보고 오는 것은 어떨까.
여행 안내
★길잡이: 경부고속도로 안성IC→안성 방향 38번 국도→서태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1.5㎞ 직진 후 좌회전
★먹거리: 안성에는 된장맛이 좋은 서일농원(031-673-3171)이 있다. 1983년 서분례 여사가 시작한 농원으로 된장에 관한 한 국내 최고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장독이 농원 한쪽을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청국장과 된장찌개가 일품. 일죽IC 근처에 있다.
★잠자리: 아트센터 ‘마노’(031-676-7815)에서의 하룻밤을 권한다. 갤러리에서 작품도 관람하고 조각공원에서 산책할 수도 있다. 보개면 복평리에 자리하고 있다.
★문의: 안성시청 문화관광포털(http://tour.anseong.go.kr), 안성시문화관광정보센터 031-677-1330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