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찻길 옆 원동 매화마을. 기찻길 옆으로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른다. | ||
봄기운이 완연하다. 겨우내 숨죽였던 생명들이 하나둘 기지개를 켜며 무채색이었던 공간에 천천히 색깔을 입힌다. 낙동강변 원동면은 그 속도가 다른 곳보다 훨씬 빠르다. 곱디고운 매화꽃이 마을을 가득 채운 것이다. 그러나 화무십일홍. 이번 주를 놓치면 그 아름다운 풍경도 지고마니 주말 시간은 비워두도록 하자.
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사람들은 섬진강변으로 구름처럼 모여든다. 낙낙히 흐르는 섬진강을 따라 차를 타고 가다가 이윽고 광양매화마을에 이르러 맘껏 봄을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또 사람들은 해남으로 달려간다. 보해매실농원에서 동백꽃과 매화꽃을 동시에 감상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낙동강을 따라 내려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낙동강변에 자리한 경남 양산시 원동매화마을의 풍취를 모르기 때문이다.
일교차가 커지면서 낙동강은 새벽마다 물안개에 젖는다. 풀풀거리며 피어나던 물안개는 해가 토곡산을 넘어 고개를 빼죽이 내밀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허공으로 사라진다. 이슬에 젖었던 원동마을 매화꽃은 이때부터 그윽한 향기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강변으로는 철로가 강물을 따라 나란히 달린다. 이따금 멀리서 경적을 울리며 고속철도가 쏜살같이 마을 앞을 통과한다. 느리다고 구박을 받는 무궁화호는 그러나 천천히 원동역 플랫폼으로 들어와 정차한 후 사람들을 살며시 내려놓는다.
사람들은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탄성을 지른다. 역사 너머 오른쪽 언덕 사면이 온통 매화꽃에 물들어 있는 것이다. 원동역은 삼랑진과 물금 사이에 자리한 경부선 역이다. 하행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오른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왼쪽으로 매화가 만발한 철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은 가장 아름다운 길로 이곳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 통도사 극락전 옆의 백매화와 홍매화. 아래는 통도사 영각의 홍매화. 수령 350년이 더 된 이곳의 매화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기품이 흐른다. | ||
이 지점에서 다시 200m가량 앞으로 가면 순매원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곳도 못지않은 전망대다. 간이주차장 뒤편에 팔각정이 설치돼 있다. 순매원으로 내려가자 꽃기운에 달뜬 사람들이 수다스럽다. 꽃길을 거닐거나 투호를 하거나, 아니면 매실주에 취하거나 봄과 어울려 노는 방법은 가지가지다. 순매원에서는 매실장아찌와 매실즙, 매실주 등 이곳의 청매실로 담은 특산품을 판매한다.
원동에는 이곳 말고도 농장들이 많다. 순매원에서 물금 방면으로 500m 정도 가면 달호농원이 나온다. 마치 바다의 만처럼 쏙 들어간 지형이다. 그래서 이곳의 매향은 더욱 짙다. 어디로 달아나지 못하고 그 속에 갇히기 때문이다.
순매원 바로 위쪽은 관사촌이다. 예전 원동역 관사들이 이곳에 있다. 그래서 원동매화마을 일대를 관사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관사촌 주변은 매향산방농원이다.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석좌교수이기도 한 주인장이 2층 집을 지어놓고 농장을 가꾼다. 낯선 발걸음에 집을 지키는 개가 시끄럽게 짖어댄다. 그 소리에 주인은 문을 열어놓고 들어와 차라도 한 잔 하고 가란다. 손수 담은 매실차의 향도 좋지만 그이의 마음이 더 깊고 달다.
매향산방 2층에서 내려다본 원동마을 일대는 정말 그림 같다. 꽃구름이 몰려온 듯, 솜이불을 펼쳐놓은 듯 푸근한 풍경에 넋을 잃을 정도다.
한편 영포리도 매화가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배내울 방면으로 7㎞ 정도 달리면 영포리에 이른다.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허름한 집이 다소 초라해 보이지만 화려한 매화꽃에 덮여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영포리에서 신흥사 가는 길에도 매화꽃 천지다. 신흥사는 단청과 벽화가 뛰어난 통도사의 말사다. 신라시대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삼신각 가는 길은 대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부는 바람에 대숲이 일렁이며 청량감을 준다.
양산을 찾은 김에 통도사에도 들러볼 일이다. 사찰 탐방의 목적도 좋지만 통도사의 매화를 빼놓고 올라가면 섭섭하다. 군락을 이루어 피지 않더라도 매화가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곳이다.
형극의 세월을 산 것처럼 이리저리 뒤틀린 몸뚱이에서 진한 꽃을 피워낸다. 통도사 매화는 영각 앞에도 있다. 홍매화다. 햇빛이 매화꽃에 머물자 마치 강물이 부서지듯 반짝거린다. 화엄전 뒤뜰에도 한 그루 숨어 있다. 수줍은 듯 몰래 꽃을 피워내며 사람들의 시선을 겨우 견디는 백매화다.
아무리 매향이 좋다한들 너무 취해 통도사의 진면목을 놓쳐선 안 된다. 대웅전의 꽃살문이라든가 대웅전의 단청과 벽화 등은 오래 머물고 있어도 좋을 만큼 아름답다. 그리고 또 하나, 통도사로 갈 때는 반드시 차를 두고 가자. 넉넉잡고 20분쯤 걸어야 하지만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이 매력적이다. 알싸한 소나무 숲의 향기를 맡으며 길을 걷노라면 마음의 찌꺼기가 다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여행 안내
★길잡이: 경부고속국도 동대구 분기점→대구-부산 간 고속국도→삼랑진IC→삼랑진 방면 58번 국도→1022번 지방도→원리삼거리에서 우회전→원동관사마을
★먹거리: 원동역 근처 원동횟집(055-382-5321)을 추천할 만하다. 매기매운탕을 잘 하기로 소문난 집이다. 값도 2만 원으로 비싸지 않은 편이다.
★잠자리: 원동에서 배내골방로 가면 청매실쉼터펜션(055-338-1628)이 있다. 계곡가에 자리해 풍취가 아주 좋은 곳이다. 근처에는 밸리산장(055-910-7070)도 있다.
★문의: 양산시 문화관광포털(http://www.yangsan.go.kr/tour) 055-384-4101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