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기와그림(위)과 ‘만휴’의 내부 모습. | ||
일제강점기 전까지만 해도 기와그림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예부터 사찰이나 궁궐의 처마 지붕 위에는 그림이 그려진 기와를 얹는 게 보통이었다. 단순히 지붕을 보호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집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장식적 역할을 하는 게 기와그림이었다.
도깨비인지 용인지 논란이 있긴 하지만 흔히 ‘귀면’(귀신의 얼굴)이나 사천왕 등 불교 호법신장들이 그림의 주 소재였다. 하지만 기와그림은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그 맥이 끊기다시피 했다.
기와그림전시장 ‘만휴’는 지난 2005년 4월 개관했다. 천등산을 등지고 있는 팔각정 모양의 한옥이 기와그림을 전시하는 곳이다. 대들보와 서까래, 창틀, 난간, 댓돌 등 모든 것이 소나무로 이루어졌다.
이 전시장을 설립한 이는 봉정사 지조암에서 기와그림을 그리는 귀일스님이다. 사라져가는 전통을 아쉬워하며 기와그림을 그린 지 10여 년. 이곳에는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그린 기와그림들이 빼곡히 전시돼 있다.
기와 속 그림은 귀면에서부터 하늘에 살면서 땅을 왕래한다는 여자 선인(仙人)을 그린 비천상, 연꽃문양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중 귀면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얼굴표정, 뿔, 눈동자, 수염 등 같은 것이 거의 없다.
이곳의 기와는 200년 이상 된 것들이다. 기와가 거의 문화재급이다. 오래된 기와는 색이 잘 먹는다. 온전한 것은 온전한 대로 깨진 것은 깨진 대로 하나의 캔버스가 된다. 기와만 그 재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와그림을 알리기 위해 버려진 서까래를 잘라서 연꽃문양을 그려 넣어 차탁과 접시 등 여러 생활도구를 만들었다. 특히 차받침대 같은 것들은 앙증맞아서 여성들의 소유욕을 자극한다.
한편 기와그림전시장 ‘만휴’는 찻집을 겸한다. ‘만휴’(萬休)라는 이름은 다도의 이론과 실재를 정립한 초의선사가 막역한 사이였던 추사 김정희에게 보낸 글귀이기도 하다.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를 떠났을 때, 초의선사는 ‘만휴’라는 글귀를 편지에 적어 보내며 ‘만 가지의 번뇌를 다 버리고 마음의 휴식을 취하고 오라’고 위로했다.
그래서일까. 찻집 안으로 들어서면 정말로 잡다한 생각들이 다 사라지는 것 같다. 찻집은 귀일스님이 운영하던 것을 지금은 대구에서 차를 공부한 전문가가 대신 맡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특히 국화차가 좋다. 봉정사에서 재배한 국화를 따서 정성껏 말려 차로 내는데 지난 가을의 향기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길잡이: 중앙고속국도→서안동IC→안동 방향 34번 국도→송양교삼거리에서 영주 방향 924번 지방도→봉정사 아래 만휴
★문의: 만휴(http://www. manhue.com) 054-855-2268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