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매화가 만발한 개암사. 무려 600년이 된 매화꽃 향기는 참 멀리도 깊게도 퍼진다. | ||
전북 부안 변산반도는 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변산은 내변산과 외변산으로 나뉜다. 내변산은 변산의 중심 산악지대. 외변산은 내변산을 감싸고 있는 서쪽 해안지대를 일컫는다. 내변산은 산악지대라고 해봐야 그리 높은 산이 없다. 가장 높은 의상봉이 508m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풍모만은 빠지지 않아 ‘호남의 5대 명산’에 당당히 든다.
내변산에는 직소폭포와 변산 전체를 조망하며 해거름을 감상할 수 있는 월명암 낙조대, 선녀탕 등 명소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또한 이곳에는 내소사와 개암사라는 백제시대의 명찰이 있다.
내소사는 두말할 필요 없이 잘 알려진 사찰이다. 백제 무왕(633년) 시절 지어진 유서 깊은 사찰로 매표소에서 일주문까지 600m가량 이어진 전나무숲길이 상쾌하다. 아름드리 전나무들이 늘어선 이 숲길은 번다한 생각을 정리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내소사는 단청(옛 집의 벽 기둥 천장 따위에 여러 가지 빛깔로 그려진 그림이나 무늬)이 돼 있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마치 흑백사진을 보는 듯하다.
이 사찰에는 긴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보물들이 숨 쉬고 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동종과 3층석탑이 절 마당에 자리해 있고 마치 이들을 굽어보기라도 하듯 대웅전이 위치해 있다. 이곳 대웅전은 꽃살무늬창으로 유명하다. 창에는 연꽃과 국화가 활짝 피어 있다. 전나무숲길이 끝나고 경내에 이르는 사이에 도열한 벚꽃은 이제 막 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 주말이면 내소사의 봄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개암사는 내소사에 비해 덜 알려진 사찰이다. 지어진 시기는 내소사보다 1년 늦다. 개암사의 대웅전 창틀도 꽃살창이다. 이곳에도 대웅전과 동종, 영산회괴불탱 등 보물들이 가득하다.
개암사에는 내소사보다 봄이 먼저 찾아왔다. 개암사에는 무려 600년이 되었다는 매화나무 한 그루가 홀로 서 있다. 홍매화다. 절 마당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는 내내 매화꽃의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마치 팝콘을 튀긴 것처럼 매화는 활짝 피었다. 대웅전 앞에는 노란 수선화가 가득이다. 수선화 뒤편으로는 목련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그리 크진 않지만 제법 많은 꽃들을 피워냈다.
▲ 개암사 대웅전 앞 노란 수선화(왼쪽). 채석강 해식동굴(오른쪽)과 꽃처럼 피어난 따개비. | ||
변산에서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꽃은 호랑가시나무꽃이다. 감탕나무과에 속하는 호랑가시나무는 사철나무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빨간 열매를 맺는데 이 열매가 떨어지면서 수세미를 뭉쳐 놓은 것 같은 연노랑색의 꽃을 피운다. 가시처럼 뾰족하게 생긴 잎이 호랑이의 등을 긁는 데 쓸 만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호랑이등긁기나무라고도 한다.
변산에는 호랑가시나무군락이 한 군데 있다. 천연기념물 122호로 지정된 귀중한 자연자산이다. 내소사에서 30번 국도를 따라 채석강 방면으로 달리다보면 모항이라는 곳에 이르는데 이곳 뒤편 언덕에 호랑가시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는 50여 그루의 호랑가시나무가 있다. 나무들의 높이는 2∼3m 정도 된다. 호랑가시나무는 남해안 일대에 많이 분포하는데 변산이 북방한계지역이다.
한편 변산 바다에도 봄이 완연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수온이 올라가자 ‘갯벌농사’가 시작됐다. 요즘은 백합 캐기에 한창이다. 부안은 전국 최대의 백합 양식지다. 넓디넓은 갯벌에 어린 씨앗을 뿌렸다가 캐낸다. 백합의 산란기는 5~6월. 산란기를 앞둔 지금이 가장 영양소가 풍부한 때라 맛이 좋다.
채석강에도 봄꽃이 피었다. 채석강은 변산반도 맨 서쪽에 있는 해식절벽과 바닷가를 지칭하는 지명. 격포항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나온다. 격포항 앞으로는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사이로 오가는 배들의 모습이 한가롭다.
채석강은 당나라의 이태백이 놀았다는 장소와 꼭 닮았다고 해서 그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이곳엔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 절벽이 높이 솟아 있다. 멀리서 보는 것도 아름답지만 과감히 앞으로 다가가 보라. 두껍게 한 겹 한 겹 쌓여있는 것처럼 보였던 바위는 사실 종잇장처럼 얇은 판이 켜켜이 겹쳐져 있다. 살짝 만지는 것만으로도 과자부스러기처럼 부서진다. 만져보면 마치 녹슨 철의 표면 같다. 흙처럼 보드라운 부분도 있다.
채석강에는 파도의 침식작용에 의한 해식동굴들이 여러 개 있다. 수만 년 세월에 걸쳐 파도가 절벽의 약한 부분을 파헤쳐 만든 동굴들. 이 속에서 보는 해거름의 감동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다만 이곳에서의 해거름은 물때가 잘 맞아야 감상할 수 있다. 물이 밀려오기 시작하면 채석강은 건너갈 수가 없다. 당연히 이 해식동굴에서 해거름을 보겠다는 꿈도 접어야 한다.
여행 안내
★길잡이: 서해안고속도로→부안IC 통과 후 바로 좌회전(부안군 관광안내소 사거리)→23번 국도(좌회전)→개암사→줄포→30번 국도(우회전)→모항 호랑가시나무군락→채석강
★먹거리: 봄철 부안의 먹거리는 백합이다. 백합요리를 잘하기로는 계화회관(063-584-0075)이 유명하다. 행안면 신기리 부안소방서 인근에 자리한 계화회관은 다양한 백합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으로 특히 백합죽이 맛있다. 백합의 고유한 맛을 잘 느낄 수 있도록 조미료를 거의 첨가치 않고 쌀과 야채 그리고 백합만 넣어 끓인다. 한 그릇에 7000원. 작당마을에서 모항으로 넘어가는 해안과 변산해수욕장 앞에도 솜씨 좋은 백합전문요리집들이 있다.
★잠자리: 부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거름을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인 솔섬 옆에 자리한 솔설펜션(063-584-0550)을 추천한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건물이 깔끔하고 주인 내외도 친절하다.
★문의: 부안군청 문화관광과(http://www.buan.go.kr) 063-580-4191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