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비생태관의 나비를 관찰하는 관람객들. | ||
꽃이 피면 벌과 나비가 날아드는 게 자연의 섭리. 하지만 대도시에서는 아무리 꽃이 흐드러지게 피기로서니 도통 녀석들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이유인 즉 향기 때문이다. 대기오염 탓에 꽃향기가 150여 년 전에 비해 90% 이상 줄었단다. 향기를 맡을 수 없으니 꽃을 찾는 벌과 나비도 줄어들 수밖에. 미국 버지니아대 환경과학과 연구팀의 미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라고 사정이 다르지는 않다. 그래서 세상의 온갖 나비를 다 볼 수 있는 함평으로 떠나는 여행은 특별한 추억을 선사한다.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드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마치 그림을 그려놓고 감상하는 듯한 기분, 계절은 찬란하지만 생기가 느껴지지 않은 느낌. 벌과 나비가 없는 5월의 꽃밭은 그랬다. 하지만 천지간에 살기 좋아 ‘함평천지’라 불리는 곳, ‘살아 있는 생태체험장’ 전남 함평에는 천지간에 나비가 천지. 이제야 봄다운 봄을 만났다.
허울 좋은 축제들이 더러 있다. 무엇에 관한 축제인지도 분명치 않은 정체불명의 축제들. 이런 축제들의 공통점은 행사프로그램이 판박이라는 것이다. 노래하고, 춤추고, 먹고…. 그러나 그 다음은?
함평 나비축제는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몇 안 되는 축제다. 속을 뜯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축제는 무엇보다 나비가 주인공이다. 조연은 나비가 사는 아름다운 자연. 이곳에서 사람들은 나비를 비롯한 다양한 곤충을 만난다. 나머지 프로그램은 다소 지겨워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다.
축제가 열리는 함평엑스포공원에는 15개가 넘는 전시관들이 들어서 있다. 꼼꼼히 둘러본다면 하루가 모자랄 만큼 알찬 전시들이다. 전시관 바깥 공간은 하나의 꽃밭이다. 공원 왼쪽 호숫가에는 부들과 창포, 연꽃이 피었고 공원 곳곳에 유채꽃과 팬지, 나리꽃이 흐드러졌다. 공원 뒤쪽 야트막한 산에는 철쭉동산이 조성됐다. 철쭉동산으로 오르는 길에는 커다란 장수하늘소 모형이 설치돼 있다. 전시가 아니더라도 둘러볼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전시들이지만 역시 백미는 국제나비생태관의 전시다. 이곳에서는 38종의 나비를 매일 8000마리씩 방사한다. 가장 흔한 배추흰나비에서부터 도손제비나비, 아스파시아흰나비, 부엉이나비… 등 이름도 생소한 나비들이 팔랑거리며 날아다닌다.
국내의 나비를 방사한 유리온실과 외국의 나비를 방사한 온실로 구분돼 있는데 국내의 나비가 아담하고 수수한 느낌이라면 외국 나비는 크고 화려하다.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가 나비와 함께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사람들은 온실 유리벽에 바짝 코를 붙이고 나비를 관찰하기에 여념이 없다. 특히 아이들은 자리를 떠날 줄 모른다. 그만 보고 다른 데로 가자는 부모의 말에도 요지부동. 아이들은 나비와 ‘대화 중’이다.
▲ (1)학교리에 자리한 급수탑. 증기기관차가 다니던 시절, 동력원인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세워진 탑이다. (2)고막천 석교. 고려 중기 세워진 돌다리로 무려 700년 넘게 버텨올 정도로 견고하다. (3)관람객을 실은 장수하늘소 열차가 방죽 위를 달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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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나비의 성장과정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알에서부터 애벌레와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되기까지 각 과정의 살아있는 표본들이 전시돼 있다. 우화(번데기가 날개 있는 자란벌레가 되는 것)하는 나비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비생태관은 국제나비곤충표본관과 이어져 있다. 450종 7000여 마리에 달하는 세계 각지의 나비와 곤충표본이 전시돼 있다. 화려한 나비와 장수하늘소 등의 곤충표본은 넋을 읽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눈으로만 보기에는 안타까운 사람들은 카메라를 꺼내어 셔터를 누르기에 바쁘다.
황금박쥐생태관과 국제곤충관, 버드하우스 작품 전시관, 친환경농업관 등도 인기다. 황금박쥐생태관은 함평에서 서식하고 있는 세계적 희귀종인 황금박쥐를 테마로 한 전시관으로 어두운 동굴 천정에 매달려 있는 황금박쥐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이 전시관의 또 다른 볼거리는 순금으로 제작한 국내 최대 황금박쥐 조형물.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162kg이라는 어마어마한 순금이 사용되었다. 현금 가치 55억 원. 입이 떡 벌어진다.
국제곤충관에는 국내외에 서식하는 3만 4000여 마리의 곤충을 전시한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큰 헤라클레스 왕장수 풍뎅이가 눈길을 잡아챈다. 이곳에서는 살아있는 곤충들을 직접 만지고 관찰할 수 있다.
버드하우스 작품 전시관에는 6개국 33명의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만든 ‘버드하우스’(새집) 작품 60점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만약 ‘새집을 전시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가지 않는다면 전시의 주제에 대해 한참 동안 고민해야 할 정도로 창의적인 새집들을 선보인다.
친환경농업관에서는 200여 종에 이르는 농작물의 재배장면을 관찰할 수 있다. 전시관으로 들어가는 터널 형식의 입구에 수천 개의 호박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축제장에서는 공연도 매일 열린다. 황금박쥐생태관 앞 주 무대에서 펼쳐지는 봉산탈춤, 가족뮤지컬, 안데스민속공연 등이 축제의 흥을 더 한다. 나비와 곤충 탁본뜨기, 천연염색, 미꾸라지잡기 등 다채로운 체험행사도 종합체험학습장에서 계속된다.
학교리 학다리역 자리에 남아 있는 급수탑은 보기 드문 유적이다.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세워진 탑으로 호남 서남부권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남아 있다. 1921년 설치된 이 급수탑은 등록문화제 63호로 지정돼 있다. 기차의 증기기관이 디젤기관으로 대체되면서 1955년 기능을 다했다.
고막천에 아직도 그 원형의 일부를 간직하고 있는 돌다리는 고려 원종 14년(1273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2년 전 보수공사를 하면서 그 멋스러움을 다소 잃은 감이 있지만 유채꽃 가득 핀 고막천의 풍치를 더욱 정겹게 하는 데는 모자람이 없다.
여행 안내
★길잡이: 서해안고속국도 함평IC→나주 방면 23번 국도→함평엑스포공원
★먹거리: 함평천지한우는 ‘쇠고기 이력제’를 실시할 만큼 육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함평시장에 자리한 대흥식당(061-322-3953)은 생고기야 두말할 나위 없고 육회와 육회비빔밥도 그만이다. 생고기와 육회가 250g에 2만 원, 육회비빔밥은 ‘보통’ 5000원, ‘특’ 1만 원.
★잠자리: 함평여행에서는 평소 접해볼 수 없었던 한옥을 잠자리로 이용해보자. 용천사에서 10분 남짓 거리인 해보면 상곡리 모평마을에 영화황토민박(http:// gloryloess.namdominbak.go.kr 061-323-0300)이 있다. 전통한옥민박으로 고풍스럽고 정겨움이 넘치는 곳이다. 마당에는 연못이 있고 담벼락 아래는 꽃들이 가득하다. 용천사 앞에도 예가펜션(http://www.ykp. co.kr 061-323-7500)이라는 한옥펜션이 있다.
★문의: 함평나비엑스포(http://hampyeongexpo.org) 061-320-3224, 함평군청 문화관광과 061-320-3364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