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경묘 주변은 우리나라 제일의 소나무숲이다. 소나무의 굵기가 사람 몸통의 두세 배에 달한다. | ||
삼척시 미로면. 태백으로 내려가는 38번 국도에서 살짝 오른쪽으로 빠져 들어간 이곳에는 준경묘와 영경묘라는 조선 태조의 선대 무덤이 있다. ‘그곳에 있다더라’ 정도로 스쳐 지나도 무방하지만, 이 두 무덤에 주목하는 이유는 소나무숲 때문이다.
준경묘와 영경묘 일대의 소나무숲은 우리나라 최고로 꼽힌다. 단지 소나무가 크고 숲이 울창한 것뿐만 아니라 조림도 잘 돼 있어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2005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년의 숲’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준경묘는 조선 태조의 5대조인 양무장군의 무덤이고, 영경묘는 그 부인인 이 씨의 무덤이다. 두 무덤은 4㎞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영경묘는 도로와 접하는 하사전리에 있고 준경묘는 십리 밖 마을인 활기리에 있다. 영경묘의 소나무숲도 좋지만 준경묘에 비할 바는 아니다.
준경묘는 활기리에서도 다시 1.8㎞를 걸어가야 한다. 준경묘까지 임도가 나 있지만 차량통제를 하기 때문에 마을 슈퍼 앞 공터에 차를 두고 가야 한다. 요즘은 차량들이 빈번하게 그 길로 올라가곤 하는데 모두 공사차량이다. 준경묘의 배수로 작업이 한창이라서 석재를 싣고 오르는 트럭들이 엔진음을 높이면서 가파른 산길을 계속 오르내린다. 아침 8시가 넘으면 그 소음을 감수해야 한다. 진정 준경묘 숲길의 호젓함을 느끼고 싶다면 이른 새벽부터 나설 것을 권한다.
숲길은 800m가 콘크리트로 포장돼 있고 나머지 1㎞는 비포장이다. 포장된 길은 경사가 급하다. 쉼 없이 계속 오르막이다. 아직 새벽 공기가 차지만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등짝이 다 흠뻑 젖는다. 처음부터 기대했던 소나무숲길은 아니다. 이 고비를 넘어야 비로소 소나무숲의 입구를 열어젖힐 수 있다.
드디어 시작된 비포장 길. 하나둘씩 잘 빠진 소나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리 굵고 큰 소나무는 아니다. 숲의 중심으로 갈수록 소나무는 점점 위용을 갖추어간다. 그러더니 준경묘를 200여m 앞둔 지점에서부터 소나무는 약속이나 한 듯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어댄다. 이곳의 소나무는 황장목이다. 줄기가 황갈색을 띤다. 임금의 관을 만들 때와 궁 건축 때 기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원채 목재가 단단해 금강석과 같다고 해서 ‘금강송’이라고도 부른다.
▲ 자연 암반 위에 세운 누각으로 유명한 죽서루. 아래는 갈남마을 언덕에서 바라본 해신당 앞 바다. | ||
이 숲에는 특별한 하나의 소나무가 있다. 정이품송과 혼례를 치른 소나무다. 산림청 임업연구원이 한국을 대표하는 소나무의 혈통보존을 위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형질이 우수한 소나무다. 나이는 95세, 키는 32m, 둘레길이 2.1m. 이 소나무는 충북 보은의 천연기념물 제103호 정이품송을 신랑으로 맞아들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사람들이 주례와 혼주를 맡고 정식으로 식을 치렀다는 것이다. 2001년 5월 8일 산림청장이 주례를 맡았고 보은군수가 신랑의 혼주로, 삼척시장이 신부의 혼주로 참석했다.
‘혼례’ 소나무를 지나면 푸른 ‘잔디옷’을 입은 준경묘역이다. 커다란 봉분의 무덤이 언덕에 등을 대고 있다. 그 주변은 거대한 황장목들이 장수들처럼 호위를 하고 있다. 혼례 소나무보다 더 굵은 소나무들이 지천이다. 그 소나무들 사이로 숲을 헤집고 걸어본다. 차분히 가라앉은 새벽공기에 실려오는 소나무의 알싸한 향기. 해가 뜨면 곧 공기 중으로 부유해 버릴 것이 아쉬워 그 향기를 가슴에 담느라 바쁘다.
한편 죽서루와 도경리역 등 황장목 숲으로 찾아가기 전에 잠깐 들러야 할 곳들이 있다. 성내동에 자리한 죽서루는 자연 암반 위에 서 있는 누각으로 유명하다. 창건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원종 7년(1266년) 이승휴가 시를 남겼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그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죽서루는 누각 현판의 글씨가 참 좋다. 전면 ‘죽서루’와 ‘관동제1루’ 현판은 숙종 41년 부사 이성조의 글씨이고 누각 내에 게시된 ‘제일계정’ 현판은 현종 3년(1662년) 부사 허목의 글씨다. 죽서루는 대나무숲의 서쪽누각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죽서루의 오른쪽에 대나무숲이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사르르 거리며 잎을 부대끼는 대나무들. 이 또한 정신을 깨우기에 안성맞춤이다.
강릉의 정동진이나 동해의 추암이 해오름의 명소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삼척에도 못잖은 명소가 있다. 갈남마을 앞 월미도라 부르는 작은 갯바위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해오름은 한마디로 장관이다. 월미도 앞에는 기묘한 바위덩어리들이 십수 개 바다에 박혀 있는데 이 또한 인상적이다. 뭉툭한 바위덩어리들이 아니라 주름지고 깎이어 하나하나가 예술작품을 연상케 한다.
이곳뿐만 아니라 해신당 앞에도 이러한 바위덩어리들이 있다. 해신당은 신남마을과 갈남마을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절벽 위에 당집 하나가 놓여 있는데 이것이 해신당이다. 남근 숭배사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으로 당집 앞에 공원이 조성돼 있다. 공원에는 갖가지 남근들이 수두룩하니 전시돼 있다. 공원 한편에는 삼척어촌민속전시관이 있다. 각종 어구와 어부들의 생활모습을 생생히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여행 안내
★길잡이: 영동고속국도 강릉분기점→동해고속국도 동해IC→삼척 방면 7번 국도→도경삼거리에서 우측 38번 국도→상정리에서 우측 길→영경묘, 준경묘
★먹거리: 임원항에 방파제 옆으로 해촌횟집(033-573-8577) 등 횟집촌이 형성돼 있다. 곁다리로 나오는 해산물이 없는 대신 횟값이 싸고 양이 많다. 4만~5만 원이면 4명이 먹기에 충분하다. 임원항은 울진과도 지척이다. 그래서 대게가 많이 잡힌다. 임원대게(033-573-9557) 등이 대게찜을 잘 한다.
★잠자리: 신남, 갈남, 장호리 등의 일출이 멋있다. 신남·갈남마을 등지에는 딱히 묵을 만한 곳들이 없다. 장호리에는 장호용화관광랜드모텔(033-573-6321)이 있다. 가까운 임원항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이곳에는 동광비치모텔(033-573-6123), 여래장(033-573-4646)이 있다.
★문의: 삼척시 문화관광포털(http://tour.samcheok.go.kr) 관광정책과 033-570-3545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