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계가 다녔다는 ‘녀던길’ 초입에 자리한 고산정. | ||
농암종택은 조선 연산군 시절 형조참판,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농암 이현보(1467~1555)가 나고 자란 곳이다. 현재 이곳에는 그의 자손들이 500여 년 동안 대를 이어 살아오고 있다. 집은 농암이 태어나기 훨씬 전인 1370년 무렵에 지어졌다. 종택은 안채와 사랑채, 별채, 문간채로 구성된 본채 외에 긍구당, 명농당 등의 별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종택에서 왼쪽으로 100m가량 떨어진 곳에는 농암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분강서원이 있다.
▲ 한옥은 열린 공간이다. 문 하나 걸리지 않은 대청마루에 앉아 바깥의 낙동강과 청량산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더위가 싹 씻겨 내려간다(맨 위). ‘녀던길’을 거니는 가족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농암종택 앞을 흐르는 낙동강. | ||
길 왼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푸르디푸른 청량산이다. 이 길에서 조금 들어가면 왼쪽으로 강 너머 벼랑 아래에 정자 하나가 앉아 있는 게 보인다. 고산정이다. 고산정은 조선 중기의 문인 성성재 금난수가 1564년에 지은 정자. 퇴계 이황도 자주 이곳을 찾아 시조를 즐겼을 만큼 운치가 빼어나다.
고선정을 지나 5분쯤 들어가니 너른 벌판 같은 강변이 보이고 오른쪽에 큰 고택이 보인다. 바로 농암종택이다. 종택 앞 주차장에는 이미 여러 대의 차량이 주차돼 있다. 시끄러운 세상으로부터 피난을 온 사람들의 것이다.
농암종택에는 사랑채와 긍구당, 명농당, 대문채, 별채 등 숙박 가능한 방이 많다. 농암의 후손들이 거주하는 안채를 제외하고 모든 곳에서 숙박가능하다.
사실, 이곳에서는 할 게 거의 없다. 뜨거운 여름 한낮에 종택에 도착했으나 무료하기 짝이 없다. 마치 정서불안처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대청마루에 그냥 누워버린다. 하지만 그게 ‘정답’이다. 이 찌는 듯한 오후, 종택에서 할 일이란 솔솔 불어오는 강바람을 맞으며 늘어지게 한숨 자는 것뿐이다.
잠자는 것도 지치면 바로 앞 강변으로 나가 물놀이를 즐기면 된다. 낙동강의 상류 지역인 종택 앞 강변은 물이 차고 무척 깨끗하다. 물살이 세지도 않고 또한 깊지도 않아서 물놀이를 하기에 적당하다.
그렇게 낮을 보내고 찾아온 밤. 달빛이 창호를 뚫고 은은히 방 안으로 들어온다. 문밖에서는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정겹다. TV를 끄고, 컴퓨터를 끄고, 또한 모든 신경을 끄고 누운 두어 평 남짓한 황토방. 대신 두런두런 이야기소리가 밤새 이어진다.
환상적인 강변 풍경을 보고 싶다면 새벽같이 일어나야 한다.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해가 떠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린다. 그 안개 속에서 강변산책로를 따라 걷는 기분이 무척 상쾌하다.
고산정에서 농암종택으로 이어지는 길도 예던길의 일부지만, 그 운치는 농암종택에서 학소대, 한속담, 경암, 미천장담을 지나 백운지교로 이어지는 길에는 미치지 못한다. 길을 걷다보면 낙동강을 따라 산줄기가 장쾌히 흐르고 강변에는 조약돌이 넓게 깔려 있다. 길섶으로는 나리꽃과 코스모스가 그득 피어 있다. 오랜만에 밟아보는 흙의 감촉이 보드랍다.
길을 따라 3㎞쯤 걸어가면 예던길 전망대가 나온다. 한편 길이 끝나는 곳 주변에는 퇴계종택과 도산서원, 이육사 생가 등 둘러볼 만한 곳들이 많다. 모처럼 만의 휴가, 역사의 숨결을 한껏 들이마시고 오는 것도 또 하나의 재충전이 아닌가 싶다.
여행 안내
★길잡이: 중앙고속국도 서안동IC(좌회전)→34번 국도→안동시에서 35번 국도→도산서원 지나 고산정 방향 우회전→농암종택
★먹거리: 안동을 대표하는 맛은 간고등어다. 월영교 앞에 간고등어정식을 내놓는 집이 많다. 그중 특히 양반밥상(054-855-9905)이 유명하다. 간고등어구이와 조림이 함께 나온다. 양반밥상 옆에는 까치구멍집(054-855-1056)이라는 헛제사밥 전문 토속음식점이 있다. 제사상에 오르는 각종 나물을 대접에 놓고 공기밥에 깨소금이 들어간 조선간장에 비벼먹는다. 안동은 찜닭 열풍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시외버스터미널 부근 구시장 안에 찜닭집들이 몰려 있다.
★문의: 농암종택(http://www. nongam.com) 054-843-1202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