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수산 벼랑에 터를 잡은 정방사. | ||
‘제천’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시원스레 펼쳐진 청풍호반 드라이브와 문화재단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곳에 주목하고자 한다. 바로 금수산 자락에 자리한 정방사와 구학산 골짜기의 배론성지다.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사찰과 천주교성지다.
정방사는 벼랑에 터를 잡은 사찰로 청풍호를 내려다보는 금수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금수산은 그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풍광이 뛰어난 명산이다. 해발고도 1016m의 금수산 등반에는 왕복 5시간 가까이 걸린다. 제천시 수산면 능강계곡을 따라 가거나 단양군 적성면 상리 방향에서 올라가는 방법 등이 있다.
정방사는 능강계곡에서 오르는 길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 걸어서라면 1시간쯤 걸리는데 자동차도 올라갈 수 있도록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 있다. 하지만 다소 힘들더라도 계곡 초입에 자동차를 주차해두고 걸어 올라가길 권한다. 울창한 숲길이 무척 상쾌하다. 길을 걷는 내내 계곡 물소리가 그치지 않는데 능강계곡은 수려할 뿐만 아니라 수량이 무척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계곡에는 마지막 더위를 떨쳐내려는 듯 아직까지도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방사는 신라 문무왕 2년(662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로 충북 보은에 자리한 속리산 법주사의 말사다. 그 역사에 비해 규모는 내세울 정도가 아니다. 거의 손바닥만 하다. 벼랑에 자리를 잡으면서 애초에 규모에는 미련을 버린 사찰이다.
정방사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은 ‘해우소’다. ‘근심’을 비우는 공간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화장실임에 틀림없다. 뻥 뚫린 창 너머로 멀리 청풍호가 내려다보인다. 해우소를 지나치면 다시 왼쪽으로 요사채가 나오고 이어 오른쪽으로 종각, 그리고 법당과 산신각, 나한전 등이 차례로 자리해 있다. 1825년에 세워진 법당에는 숙종 25년(1689년)에 조성된 목조관음보살좌상과 후불탱화 산중탱화가 모셔져 있다.
사찰 건물들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법당 뒤편에 병풍처럼 펼쳐진 의상대라 불리는 암벽. 우뚝 솟은 모양이 늠름하고 멋있다. 암벽 아래에는 약수터가 있다. 바위틈에서 솟아나온 물이 고인 곳으로 쌉싸래하면서도 단맛이 나는 게 특징이다.
한편 정방사는 법당의 주련(사찰이나 한옥의 기둥에 쓴 글)이 또 아름다운 곳이다. ‘산중에 무엇이 있을까, 산마루에 흰 구름 많이 머물러 있구나. 다만 나 홀로 즐길 수 있을 뿐, 그대에게까지 바칠 수가 없구나.’ 법당 앞에 서서 청풍호를 바라보며 음미한다면 더욱 가슴으로 다가올 주련의 글귀다.
▲ 옹기가마터. 박해를 피해 산골로 숨어든 천주교도들은 화전과 옹기를 구워 생계를 연명했다(맨위). 로사리오 동산의 은행나무와 함께 평화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대성당(가운데). 능강계곡은 수려할 뿐만 아니라 수량이 많아서 물놀이하기에도 좋다(맨 아래). | ||
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배론’이라는 이름은 이곳이 치악산 동남 기슭의 구학산(985m)과 백운산(582m)이 맞닿은 골짜기로 그 모양이 마치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졌다.
배론은 조선 말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들어와 살았던 곳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배론신학교가 있었던 지역이다. 또한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 신부로 기록된 최양업의 묘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배론성지에는 중앙을 가로질러 흐르는 작은 시내를 기준으로 왼쪽으로 대성당과 로사리오길, 오른쪽으로는 순교자들의 무덤과 경당, 옹기가마터 등이 자리하고 있다.
대성당은 최양업 신부를 기념해 지은 것으로 외형상으로는 전혀 성당의 느낌을 풍기지 않는다. 십자가도 걸려 있지 않다.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잘 지은 미술품전시관으로 오해할지도 모른다. 성당이 있는 로사리오동산 앞에도 현대식 건물이 하나 들어서 있는데 식당 겸 방문객들의 쉼터인 ‘순례자들의 집’이다. 이 건물은 ‘2004년 제천시 자랑스러운 건축상’을 수상한, 건축미학적으로도 높이 평가받고 있는 건물이다.
로사리오길은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따라 난 작은 오솔길로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겨우 600m 남짓한 길이지만 구절초, 벌개미취, 개망초 등이 길섶에 흐드러지고 잘 익은 밤나무의 밤송이가 바람결에 후두둑 떨어지는 게 시골길의 정취가 한껏 묻어난다.
로사리오길이 끝나는 부분에는 최양업 신부 조각공원이 있다. 500여 평 규모의 공원에는 최양업 신부의 일대기를 석판에 조각하여 전시해 놓았다. 공원을 나와 시내가 흐르는 왼쪽 작은 다리를 건너면 커다란 개량 한옥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성직자들의 휴식처로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신학당 건물 오른쪽에는 옹기가마터가 있다. 천주교성지에 웬 가마터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옹기는 우리나라 천주교사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박해를 피해 산골로 숨어든 천주교인들은 대부분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워 생계를 연명해나갔다. 옹기의 전통은 그들 덕분에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옹기가마터를 지나 길은 왼쪽으로 나 있다. 십자가의 길이다. 길은 전혀 다듬지 않은 날 것 그대로다. 길 끝에는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다.
배론성지를 다 둘러보고 난 후에는 향기로운 차 한 잔을 즐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성지 입구 주차장 한편에 야외 허브찻집이 있다. 찻집 주위로는 들국화를 심어놓아 더욱 운치 있다.
여행 안내
★길잡이: 중앙고속국도 남제천IC→제천 방면 82번 국도→청풍대교 앞에서 좌회전→정방사
★잠자리: 정방사 인근에 ES리조트(043-648-0482), 국민연금청풍리조트(043-640-7000) 등이 있다.
★먹거리: 정방사 쪽보다 봉양이나 송계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봉양에는 두부전골로 유명한 사또가든(043-653-4960)이 있고, 송계에는 쏘가리매운탕을 잘 하는 송강매운탕(043-651-8115)이 있다.
★문의: 제천시 문화관광포털(http://tour.okjc.net) 043-641-5141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