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이나 다름없다시피 고립된 비수구미 마을. 1시간 30분의 산길이 아니라면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 ||
화천으로 가는 길은 새벽 도착을 목표로 하는 것이 좋다. 특별한 해오름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험산준령으로 둘러싸인 화천에서 무슨 해오름을 기대하겠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해산령을 넘어 본 사람이라면 그 말뜻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해산령은 화천군 동북쪽에 자리한 해발 1190m의 해산 8부 능선에 자리한 고개다. 화천읍에서 평화의 댐 방면으로 가는 460번 지방도를 타고 ‘아흔아홉 굽잇길’을 지나야 비로소 해산령에 닿는다. 뱀이 기어가듯 정신없이 굽이치는 이 길은 도무지 창밖 풍경에 신경 쓸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 끊임없는 급커브에 익숙해질 때쯤 길은 어느새 고갯마루에 올라 긴 터널을 뚫고 지난다. ‘최북단 최장 터널’이란 간판을 달고 있는 해산터널이다. 터널의 길이는 1986m. 평화의 댐을 건설하면서 뚫은 터널로 준공년도에 그 길이를 맞췄다.
이 고갯길에서 거의 유일하게 뻗은 직선터널을 빠져나오면 바로 해산령이다. 하지만 조금 더 길을 달려야 한다. 해오름을 보려면 약 3㎞ 전방에 있는 해산령전망대로 가야 한다. 끝났다고 믿었던 굽잇길이 다시 시작되고, 산맥에 막혔던 동쪽이 서서히 열리면서 슬슬 넓은 시야를 제공한다. 그리고 곧 나타나는 해산령전망대. ‘해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산’이라는 뜻을 지닌 해산에서도 가장 좋은 해오름 포인트가 바로 이곳이다.
날이 밝아오면서 하늘과 땅을 가르던 하나의 능선이 십수 개의 능선으로 분화하면서 마치 너울처럼 일렁이고 그 너머로 시뻘건 태양이 불쑥 솟아오르는 광경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만약 운이 좋다면 보다 더 감동적인 해오름을 맞이할 수도 있다. 이 일대는 운해가 무척 자주 형성되는 곳이다. 바로 아래 파로호가 있기 때문이다. 발밑에 깔린 운해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다보면 동해바다에서 해오름을 감상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해산령의 운해를 피워내는 파로호는 1944년 만들어진 인공호수다. 화천과 양구 두 지역에 걸쳐 있는 이 호수는 담수량이 무려 10억 1800만 톤에 이를 정도로 거대하다. 파로호라는 명칭은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 3개 사단을 수장시킨 곳이라 하여 이승만 전 대통령이 붙인 것이다.
▲ ‘베트남 참전용사 만남의 장’이 화천 오음리에 문을 열었다. 베트남전 기념관을 둘러보는 참전용사들이 당시의 기억을 회상하고 있다. (위) 비수구미 마을의 주 수입원 중 하나인 양봉. 한 되에 30만 원을 호가할 정도로 비수구미의 토종꿀은 알아준다. | ||
마을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기는 하다. 새벽녘에 지나온 해산령쉼터 오른쪽 산길로 1시간 30분을 걸어 내려가는 것이다. 사실 이 가을에 추천하고 싶은 쪽은 후자다. 계곡이 산길 내내 함께 따라 흐르는 코스로, 5㎞가 넘는 거리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고 또한 크게 힘들지도 않다. 다만 계곡엔 절대 출입해선 안 된다. 2009년 5월까지 자연휴식년제를 실시하고 있다.
요즘 이 산길에는 가을이 포근히 내려앉아 있다. 산등성이마다 나무들은 마지막 단풍을 밀어 올리며 불게 타오르고 길가에는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 뒹군다. 드문드문 억새가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고 추수에 바쁜 다람쥐들이 이방인의 기척에 놀라 후다닥 달아난다.
상쾌한 산길을 따라 내려가면 만나는 ‘비수구미’는 한국전쟁 이후 화전민들이 모여 살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한때 100가구가 넘게 마을을 이루기도 했지만 70년대 이후 화전민들이 모두 떠나고 현재는 장씨·김씨·심씨네 세 집만 남았다. 마을사람들은 파로호에서 고기를 잡고 양봉을 하며 생활을 꾸려나간다.
만약 비수구미로 내려갈 생각이라면 해산령에서 해오름을 보고 난 후 바로 걸음을 옮기는 것이 좋다. 평화의 댐과 비목공원 등 주위에 둘러볼 곳들이 있기는 하지만 파로호의 물안개가 주는 감동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달궈진 수면 위로 물안개가 아스라이 피어오르는데 그 정도가 심하면 비수구미 마을이 아예 안개에 지워지기도 한다.
파로호는 드라이브를 즐기기도 좋은 호수다. 화천읍에서 파로호를 가운데 두고 길은 양 갈래로 나뉜다. 왼쪽이 해산령 해오름을 보기 위해 떠났던 460번 지방도이고, 오른쪽이 간동면 쪽으로 향하는 461번 지방도다. 호수를 낀 드라이브는 후자 쪽이다.
평화의 댐 말고도 화천에는 ‘안보여행지’들이 더러 있는데 이 길에도 ‘파로호안보전시관’과 ‘베트남 참전용사 만남의 장’ 등이 있다. 간동면 구만리 파로호안보전시관에는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 3개 사단을 격파한 파로호 전투에 대한 기록 등이 보관돼 있다.
한편 지난 10월 23일 문을 연 ‘베트남 참전용사 만남의 장’도 들러볼 만하다. 과거 파월 병사들의 훈련장이었던 간동면 오음리에 자리 잡은 이곳에는 참전기념관과 구찌터널, 베트남 전통가옥, 추모비, 상징탑, 훈련체험장, 내무반 등이 조성돼 있다.
참전기념관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 사용됐던 각종 무기를 비롯해 사진, 전사자 명단 등이 전시돼 있다. 야외 시설물 중에는 구찌터널이 인상적이다. 베트콩들이 만든 지하요새를 본떠 만든 시설로 터널의 길이가 무려 157m에 달한다. 전시실 내부에는 실제와 유사하게 제작된 인물모형들이 전시돼 있다.
★길잡이: 서울→46번 국도→가평→춘천→5번 국도→화천→460번 지방도→해산령→비수구미마을→평화의 댐.
★먹거리: 파로호를 끼고 동쪽으로 도는 461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보면 파로호선착장 주변에 파로호식당(033-442-3124), 강변식당(033-442-5007) 등 매운탕을 잘 하는 식당들이 있다.
★잠자리: 화천에서 평화의 댐 방면으로 조금 올라가다보면 다래하우스(033-442-8577)라는 펜션이 있다. 전망이 좋고 시설이 깔끔하다. 비수구미마을에서 민박을 할 수도 있다. 장씨댁(033-442-0145), 김씨댁(033-442-0962), 심씨댁(033-442-3952).
★문의: 화천군청 문화관광포털(www.hwacheon.gangwon.kr/tour) 033-440-2543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