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악산 진지동굴. 사진/박영규 작가.
[제주=일요신문] 박해송 기자 =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어두운 과거를 응시하는 것은 오늘의 우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송악산 진지동굴. 사진/박영규 작가.
송악산 진지동굴. 사진/박영규 작가.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지난 1945년 제주도는 일본군에 의해 지정학적으로 힘이 충돌하는 군사적 전략지로 선택됐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패전 위기에 직면한 일본은 제주도를 최후의 방어기지로 여겨 7만의 군부대를 주둔시키고 제주 전역에 동굴 진지를 구축했다.
그때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 송악산이다. 수많은 진지 구축과정에는 조선인 강제징집 군인들과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피땀이 서려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육지에서 건너왔으나 나중에 일손이 부족해지자 제주도민들까지 투입됐다.
당시 연합군은 오키나와를 거쳐 제주를 거점으로 일본 본토를 공격할 예정이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제주는 본토 방어를 위한 최후의 보루였다. 일본군은 제주도 전역에 지하 벙커와 진지를 구축하고 연합군의 공격을 대비하게 된다.
특히 송악산의 경우 해안의 동굴진지 외에 알뜨르에 비행장까지 건설하고, 주변에 격납고와 탄약고, 고사포진지, 지하벙커 등이 만들어진다. 일본 해군은 송악산 일대의 해안과 오름, 주변의 평지까지 군사 요새화한 것이다.
알뜨르 비행장은 지금 제주국제공항으로 사용하는 정뜨르 비행장과 더불어 일본의 대표적인 군사시설이었다. 제주는 일본 본토 비행기가 알뜨르 비행장에서 상하이, 베이징, 난징까지 공습할 수 있는 군사 요충지였다.
패색이 짙어진 전쟁 말기에는 자살특공대로 유명한 가미카제를 위한 조종 훈련을 했다고 한다.
정면에서 바라본 송악산 진지동굴. 사진/박영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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