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치 하늘이 불타는 듯한 부석사 해거름 풍경. | ||
경북 영주 땅으로 들어섰다고 해도 부석사로 곧장 달려갈 일은 아니다. 부석사는 해거름이 일품인 곳. 시간을 기다렸다가 늦은 오후에 길을 잡으면 좋다.
부석사 방향으로 난 931번 지방도 주변에 들러볼 곳들이 꽤 많다.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읍내리고분이다. 순흥면 읍내리에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사적 제313호로 지정된 이 고분은 1985년 문화재연구소와 대구대학교 합동발굴단에 의해 발굴·조사됐다. 6세기 초반의 신라 것으로 추정되는데 고분의 내부는 동서 3.35m, 남북 2.14m 규모로 넓은 편은 아니다.
이 고분은 사실 벽화 때문에 유명해졌다. 벽화는 내부의 천정을 제외한 3개 벽면에 그려져 있다. 채색까지 되어 있는데 그 그림들이 심상치 않다. 그중에서도 서쪽 벽의 그림이 단연 눈에 띈다. 뱀을 손에 쥔 나체 인물화다. 그림을 보는 순간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근엄하기보다 우스꽝스럽다는 느낌이 우선 든다. 송곳니를 드러낸 인물은 뭐가 그리 좋은지 희희낙락거린다. 이 그림은 마치 무덤 앞에 장군석을 세우는 것처럼 무덤을 지키는 장수를 그려 넣은 것으로 보인다.
▲ 성혈사 나한전.(왼쪽 위) 섬세하고 아름다운 나한전 문살.(오른쪽) 마치 만화를 보는 듯한 읍내리고분의 벽화.(아래) | ||
성혈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전해진다. 사료가 남아 있지 않아 명확한 창건연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성혈사의 성보문화재인 비로자나불좌상이 9세기 것이라고 볼 때, 성혈사는 그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근에 초암사라는 절이 있는데 의상대사가 초암사에서 수도하던 중 장소가 협소해 성혈사를 창건했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성혈사에 가려면 고분 갈림길에서 15분가량 소백산을 향해 난 임도를 올라야 한다. 길은 좁고 때로 가파르기까지 하다. 주변은 온통 사과밭이다.
성혈사는 나한전이 전부인 절이다. 요사채와 산신각이 있기는 하지만 볼 것은 나한전뿐이다. 규모만 놓고 보자면 올라오는 도중의 갈림길에서 초암사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맞다. 하지만 목적은 이 초라한 절의 존재이유인 나한전에 있다. 나한전은 명종 8년(1553년) 지어진 건물이다. 부처의 16제자를 모신 곳으로 크기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작은 편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그 규모에 대한 미련을 훌훌 날리고도 남을 만큼 멋진 문창살이 있다.
흔히 내소사의 문창살이 가장 아름답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성혈사의 문창살을 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성혈사의 것은 내소사의 것에 비해 훨씬 다양한 문양이 조각돼 있다. 나한전 정면의 세 칸 중에서 양쪽의 두 칸은 꽃창살이다. 눈길이 가는 것은 가운데 칸의 것이다. 이곳의 문창살에는 단순한 꽃문양이 아니라 물고기, 용, 개구리, 배 타는 동자 등이 조각돼 있다. 마치 커다란 연못을 통째로 옮겨놓은 것처럼 보인다.
문창살의 단청은 거의 벗겨진 상태다. 갈라진 부분들이 점점 벌어져 부서질 듯 보이는 곳들도 있다. 이 문창살을 볼 수 있는 날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한전 앞에는 특이하게 생긴 석등 2기가 있다. 거북이가 석등의 기둥을 받치고, 그 기둥은 용이 몸통으로 휘감고 있다.
성혈사 꽃창살을 본 후 부석사 방향으로 다시 길을 향한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소수서원과 선비촌에 들러보도록 하자.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조선 중종 38년(1543년)에 지어졌다. 본래 백운동서원으로 불리다가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할 당시 조정에 건의해 소수서원으로 사액되었다.
▲ 부석사 타종의식(위) | ||
선비촌은 소수서원 너머에 있다. 전통문화체험공간으로 영주의 대표적인 전통마을인 수도리를 그대로 옮겨놓았다. 만죽재, 김뢰진 가옥 등 볼 만한 가옥들이 꽤 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마지막 여행지인 부석사로 간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이곳에는 배흘림기둥으로 잘 알려진 국보 제18호 무량수전이 있다. 부석사라는 이름은 무량수전 뒤편에 ‘공중에 뜬 바위’(부석·浮石)가 있어 그렇게 붙었다. 이름의 유래는 전설과 연결돼 있다.
이 절을 창건한 의상이 중국에 유학할 때 한 여인이 그를 열렬히 사모했다고 한다. 하지만 의상은 신분 때문에 구애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결국 혼자 신라로 돌아왔다. 뒤늦게 의상이 떠난 것을 안 여인은 용이 되어 신라까지 따라왔고, 큰 바위를 공중에 띄워 왜구의 침입을 물리쳐주기도 했단다. 그 바위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무량수전 뒤편의 바위라고 한다.
부석사에는 무량수전 외에도 조사당벽화와 자인당 등의 눈여겨볼 문화재들이 있다. 석불, 석탑, 당간지주, 석등 등 석조문화재들도 눈에 띈다.
또 하나 부석사를 빛내는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법고 소리다. 해거름이 시작되는 저녁 6시가 되면 부석사에서는 법고 소리가 퍼진다. 다리 4개 달린 짐승을 위한 법고로 출발해 날짐승들을 위한 운판, 수중동물을 위한 목어가 울리고, 마지막으로 지옥 생명을 위로키 위한 범종이 울린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위한 그 소리를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 듣노라면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길잡이: 중앙고속국도 풍기나들목→931번 지방도→읍내리벽화→소수서원→935번 지방도→부석사(성혈사는 내죽리 읍내리벽화 지나 좌회전) ★먹거리: 부석사 입구에 영주한우마을(054-635-9285)이 있다. 홍삼엑기스로 숙성시킨 한우고기로 유명하다. 쇠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나지 않는다. 최상급의 고기들이 600g에 4만 원 선으로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생산농가들이 직접 판매에 나서면서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고 한다. ★잠자리: 풍기읍내에 풍기인삼관광호텔(054-637-8800)을 비롯해 숙박업소들이 많다. 선비촌(054-638-7114) 한옥 숙박체험도 권할 만하다. ★문의: 영주시청 문화관광포털(http://tour. yeongju.go.kr) 054-639-6062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