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파호 주변의 벚꽃. | ||
섬진강변 구례와 하동을 잇는 십리벚꽃길이 길다지만, 전군가도에 비할까. 전주에서 군산에 이르는 전군가도 벚꽃길은 무려 백리가 넘는다. 슬슬 눈치를 보던 벚꽃은 이번 주말이면 전군가도를 새하얗게 물들일 것이다.
군산은 대표적인 일제 수탈 전진기지다. 전북 곡창지대의 쌀과 일대의 문화재들을 군산항을 통해 실어 날랐다. 이때 건설된 것이 바로 전군가도, 현재의 국도 26호선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전군가도변에 벚나무가 없었다. 벚나무길이 조성된 것은 해방 후 30년이 지나서였다. 1975년 전군가도 확장 당시 벚나무를 심었다.
그런데 그 막후의 진실을 알고 나면 마음이 무겁다. 명목상으로는 재일본 관동지구 전북인회 회원 2000여 명이 700만 원을 기증하고, 국가 및 시·군·도 예산 3500만 원을 합해 벚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하지만 재일교포에게서 나왔다는 돈은 일본사람들의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식민지배를 그리워하며 벚나무를 보냈다는 것이다. 벚나무 길의 아름다움에 취하기 이전에 한번쯤 되새겨볼 만한 시대의 교훈이다.
벚꽃의 마중을 받으며 전군가도를 달려가면 그 끄트머리에 월명공원이 있다. 월명·장계·설림·점방·석치산 능선에 조성된 이 공원은 온통 벚꽃 천지다. 비록 해발 100m 높이에 불과하지만, 해망굴 왼쪽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공원에 올라가면 동북쪽의 내항을 비롯해 서쪽 바다가 훤히 보인다. 바다조각공원과 수시탑, 채만식문인비 등이 공원 내에 있다. 채만식은 군산을 배경으로 소설 <탁류>를 썼다. 월명공원에서 서쪽 설림산 아래에는 백제 무왕 때 원광국사가 창건한 고찰 은적사가 고즈넉이 앉아 있다.
은파호의 벚꽃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은파호는 1985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호수다. 은파호의 가장자리를 두르는 6㎞의 순환로에는 벚꽃이 터널을 이룬다.
천천히 걸으면 두 시간쯤 걸리는 거리. 차를 끌고 ‘휘’하니 달리기에는 너무나 운치가 있는 길이다.
▲ 은파호 주변의 벚꽃터널을 거니는 상춘객들. | ||
꽃길을 10분쯤 걸었을까.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 하나가 눈에 띈다. 은파 물빛다리다. 한낮에 볼 때는 별 볼 것 없는 평범한 다리다. 하지만 어둠이 내리면 다리는 완벽히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다리에 조명이 하나둘씩 들어오고, 그 앞 분수대에도 불이 켜진다.
그리고 산책로 주변 스피커에서 노래가 나오기 시작하면 다리 조명과 분수는 색깔을 달리하며 춤을 춘다.
또 하나의 벚꽃여행지를 추천하련다. 군산시 임피역이다. 벚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화려하게 핀 곳은 아니다. 다만 역 앞에 서 있는 커다란 벚나무가 외로운 역사와 어울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는 곳이다.
임피면 술산리에 자리한 임피역사는 1912년 준공된 것으로 서울역보다 13년이나 먼저 세워졌다. 현존 역사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2005년 11월 11일 등록문화재 제208호로 지정되었으며 원형도 잘 보존돼 있다.
임피역은 이제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는다. 2006년 11월부터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게 된 이 간이역에는 지난해 5월까지만 해도 상하행선 두 번 기차가 섰다. 하지만 채산이 맞지 않는 탓에 임피역을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임피역의 운명은 어쩌면 태생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원래 역사는 사람들이 많은 임피면 읍내리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유림들의 반대에 부닥쳐 한적한 현 위치로 정해졌는데, 사람들은 산을 넘어 다니며 기차를 이용해야 했고, 곧 버스가 대중화되면서 그 불편함 때문에 기차는 잊혀지고 말았다.
그러나 임피역의 역사적 가치를 고려한다면 완전 폐쇄라는 결정은 무척 안타깝다. 사람의 기운이 머물지 않는 건물은 폐가나 다름없다. 버젓이 역사 앞에 걸어놓은 등록문화재 간판은 건물의 현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다.
한편 경암동의 철길도 임피역과 사정은 다르지 않다. 벚꽃도 역사도 없는 경암동 철길을 임피역에 갖다 대는 것은 그 운명의 기구함이 닮았기 때문이다. 경암동은 집과 집 사이로 기차가 다니는 곳이다. 군산시 조촌동에 자리한 신문용지 제조업체 ‘페이퍼코리아’사의 재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군산역과 페이퍼코리아 공장 사이에 1944년 4월 4일 철로가 놓였다. 길이는 2.5㎞. 기차는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들어왔다가 11시경 나간다. 철길을 머리에 이고 사는 사람들의 풍경 때문에 군산의 명물이 됐던 곳이 바로 경암동이다. 하지만 이곳의 기차는 지난해 7월부로 운행을 중단했다.
군산 벚꽃여행길에는 과거의 아픈 흔적들을 찾아보는 데도 시간을 할애해보도록 하자. 해망동이나 월명동, 장미동과 같은 동네에서 일본식 건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장미동에는 구 군산세관과 구 조선은행 건물이 있고 월명동에는 히로쓰 가옥이 있다. 히로쓰는 일제강점기 때 군산에서 부를 축적한 일본 상인의 이름. 내항에도 일제의 흔적이 있다. ‘뜬다리’라 불리는 부잔교다. 일제가 전라도 곡창지역에서 걷어낸 쌀을 일본으로 송출하기 위해 이용했던 것으로 물이 들면 다리가 떠오르고, 물이 빠지면 다시 다리가 가라앉는 구조다.
[여행안내]
★길잡이: 서해안고속국도 동군산IC→21번 국도→군산대학→은파호→월명공원. ★먹거리: 바닷가 동네 군산에서는 싱싱한 해산물을 싸게 즐길 수 있다. 나운2동 주민센터 인근에 있는 현대횟집(063-462-6042)은 상차림이 푸짐하기로 유명하다. 해삼과 멍게 등은 기본이고, 간재미회를 비롯해 본상 전에 나오는 각종 해산물이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잠자리: 군산시내 중심지인 나운동 일대에 리츠플라자호텔(063-468-4681), 아네스빌관광호텔(063-468-2127)을 비롯해 뉴월드파크모텔(063-461-3003) 등의 숙박시설이 많다. ★문의: 군산시 문화관광포털(http://tour. gunsan.go.kr), 군산관광안내소 063-453-4896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