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으로 한국은 물론 전세계가 열광의 도가니 속에 빠져들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로 두해째를 맞는 역사적 남북정상 회담도 퇴색해 가는 분위기다. 물론 여기에는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별 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는 데도 이유가 있다. 그동안 금강산 관광이나 이산가족 방문 등 남북간의 노력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북 장관급회담이나 남북경제협력추진위(경추위)가 번번이 무산돼 실질적인 성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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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북한이 12월 대선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른바 남한 대선을 목표로 한 북한의 비밀 프로젝트가 시작됐다는 것. 그렇다면 과연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각하고 있는 대선게임은 어떤 것일까.
국방부는 지난달 24일, 5월 말로 예정된 2002년판 국방백서 발간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주적 표현’ 유지 입장을 강조해온 국방부가 백서발간을 연기한 것은 대북화해협력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온 현 정권에서는 사실상 발간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를 두고 정치권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그런데 북한이 국방백서 발간 연기 이후 전과는 다른 적극적 메시지를 보이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남북관계가 소강상태에 빠져든 시점에 지난달 중순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가 평양을 방문한 후에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북한은 국방백서 발간 연기에 대한 화답으로 금강산댐 수위조절 사실을 정부당국과 박 의원에게 사전 통보해왔다. 지난달 31일 북한은 국토환경보호성을 통해 “장마철을 앞두고 금강산댐 수위조절 계획을 동포애와 인도주의 정신에서 사전에 통보한다”며 이를 우리측에 알려왔다. 이 시점은 금강산댐 붕괴위험을 놓고 당국이 여론의 비난을 받을 때였다.
현 정권에 대한 북한의 ‘자상한 포즈’는 계속됐다. 지난달 22일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6·15공동선언 2항에 대해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가겠다”고 말해 공동선언을 놓고 정치권이 논란을 벌인 바 있다.
이 무렵 북한은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을 통해 중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이 신문은 5월30일자 논평에서 “6·15공동선언 2항은 북과 남이 통일방안에 완전히 합의했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의 통일방안의 공통점을 인식한 데 기초해 그것을 살려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는 그동안 북한이 2항을 “고려연방제에 기초한 통일 조항”이라고 주장하던 입장을 완전히 철회한 것이었다. 이는 그동안 이 문제와 관련해 곤란한 처지에 놓였던 DJ정권의 입장을 상당히 고려한 것으로 사실상 남측 입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북한측 발표는 지난달 28일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남북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다 깽판 쳐도 괜찮을 만큼 남북문제는 중요하다”고 말한 이후에 나왔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또 남한이 월드컵 열기에 휩싸인 시점에 오는 9월 남북 국가대표팀의 축구경기를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갖겠다는 뜻을 박 대표를 통해 우리측에 알려오기도 했다.
한편 북한은 ‘이회창 때리기’를 빼놓지 않았다. 지난달 북한 〈로동신문〉은 이 후보의 친일문제를 제기하며 사진까지 게재해 이 후보를 비난했다. 또한 이 후보의 6·15선언 관련 발언에 대해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가로막는 행위”라며 공격하기도 했다.
김정일 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쪽은 당연 집권 가능성이 높은 한나라당이다. 북한이 올 대선에서 변수로 작용은 하겠지만 별다른 영향력은 없을 것이라는 게 당의 표면적 입장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미 쌀 재고량 처분문제와 관련해 대북한 쌀 지원에 동의한 바 있다. 이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더라도 북한에 대해 줄 것은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북측에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나라당도 북한과 간접적으로 접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북한의 반 한나라당 성향이 노골화되자 당 관계자들은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대선전략을 담당하는 이 후보의 한 특보는 “북한이 현 정부에게는 부담을 덜어 주면서 이 후보는 연일 비난하고 있다”며 북한의 대선개입을 지적했다. 그는 또 “이런 차원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10월 답방설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며 “이상한 조짐이 포착되고 있다”고 말했다.
월드컵으로 지방선거는 물론 남북관계도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 오히려 남북간 물밑접촉을 통해 남북대화 재개 등 몇몇 합의사항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 베이징,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등 제3국에서 남북한 정상회담이 이뤄질 것이라는 구체적인 견해도 내놓고 있다. 카트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사무총장의 방북 계획 등 북미간 대화도 월드컵 이후 합의될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북한은 향후 남한의 권력지형 변화에 적극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소식통들은 DJ정권하에서 확보해온 경제 이익과 북한의 체제유지를 위해서라도 북한이 남북대화에 적극 임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