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서히 황금으로 물들어 가는 학원농장 보리밭. | ||
예부터 민물장어는 최고의 보양식품이었다. 비타민A가 쇠고기보다 20배나 많고, 단백질이 풍부해 기력을 충전하는 데 민물장어만 한 게 없다고 했다. 그 민물장어를 대표하는 것이 풍천장어고, 풍천장어 하면 떠오르는 곳이 바로 고창이다.
여기서 잠깐, 질문 하나. 그런데 과연 ‘풍천’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지명이 아니냐고? 고창에 풍천이라는 지역이 있지 않느냐, 이 말인 것 같은데 틀렸다. 고창에는 풍천이라는 곳이 없다.
그렇다면 왜 풍천장어일까? ‘풍천’은 바닷물과 해풍이 수시로 드나드는 강의 하구역을 이르는 말이다. 선운사 앞을 흐르는 인천강이 풍천의 특성을 띤다. 밀물 때면 강 안쪽으로 바닷물이 밀려들어오고 썰물이 되면 다시금 빠져나간다. 찾아보면 고창 말고도 전국적으로 풍천이 많지만, 이곳이 보다 특별한 이유는 기수역이 길다는 데 있다. 기수역은 바닷물과 강물이 뒤섞여 있는 지점을 이른다. 인천강의 기수역은 10㎞에 달한다. 이곳에 개펄이 형성되고 영양분이 풍부해서 장어가 자라기에 최적의 공간을 제공한다.
민물장어는 6400㎞나 떨어진 바다에서 태어나 강으로 거슬러 올라와 성장하고 다시 바다로 나가 산란한 후 생을 마친다. 치어들은 유전자에 각인된 해로를 따라 제 어미의 고향으로 찾아드는데, 그 여정이 너무나 험난하다.
새끼손가락보다 작고 실처럼 가는 치어는 물고기의 밥이 되거나 기수역 하구에 이르러 사람들이 쳐놓은 그물에 걸리며 여정을 마치는 것이 보통이다. 요행으로 그 두 ‘고난’을 피하더라도 강을 오르다가 배고픈 새들의 밥이 되기 일쑤다. 요즘에는 특히 무서운 것이 그물이다. 인공부화가 힘든 장어는 치어를 잡아서 양식을 한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장어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치어잡이도 늘었다. 마리당 1000원에서 비쌀 때는 2000원까지 거래되기도 한다. 강으로 올라와 풍천의 양분을 한껏 취하며 커야 할 장어들이 그물이라는 고비를 넘지 못하고 대부분 양식의 운명을 맞는 것이다.
▲ 노릇하니 군침 돌게 하는 풍천장어숯불구이(맨위).학원농장 보리밭 한가운데 맹종죽숲이 있다(가운데). 고창의 또 다른 상징인 복분자(아래). | ||
물론 자연산 풍천장어가 최고지만 양식도 그에 못지않다. 고창의 장어양식법은 독특하다. 두 가지 방법으로 장어양식을 한다. 하나는 다른 지역처럼 치어를 잡아서 민물에서 양식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민물에서 키우던 장어를 갯벌에 다시 풀어 넣어 6개월에서 1년 동안 자연 상태로 양식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갯벌에 풀어 넣은 후에는 인공의 먹이를 일체 주지 않는다. 이렇게 키운 장어는 일반 양식장어에 비해 힘이 좋고, 자연산에 버금갈 정도로 맛과 영양, 육질이 뛰어나다.
풍천장어는 크기에 따라 숫자 끝에 ‘미’자를 붙여 분류한다, 보통 1~5미로 나눈다. 1미가 가장 크고, 먹기에는 4~5미가 적당하다. 길이 약 50㎝에 200g 정도 되는 크기다. 풍천장어는 참숯불구이로 먹어야 제 맛이다. 그래야 살점이 눅눅하지 않고 쫄깃하다. 참숯의 향이 비릿함을 잡아주기도 한다. 그래도 비린 맛이 우려된다면 소금구이보다 고추장양념구이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고추장양념을 바른 후 미리 초벌로 살짝 구운 후, 상에 올려 참숯불 석쇠 위에서 마저 굽는다. 뜨거운 숯불 위에서 장어의 기름기가 떨어져 타는 소리가 입맛을 돋운다. 완전히 익은 장어는 입맛에 따라 채 썬 생강이나 달콤한 소스 등을 곁들여 먹는다. 한없이 고소하면서 부드러운 장어의 살이 입안에서 살살 녹고, 힘이 불끈불끈 솟아오르며 잠들었던 몸을 깨운다.
아, 빠진 게 하나 있다. 흰 머리도 검게 만들 정도로 정력에 좋다는 복분자주다. 고창은 ‘나무에서 자라는 딸기’인 복분자의 특산지다. 고창에서는 한 해 5000톤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복분자를 생산하는데, 이는 전국 재배량의 40%에 이른다. 고창 복분자주는 최근 미국 샌디이에고국제와인대회와 댈러스와인대회 등에서 입상하는 등 그 맛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풍천장어와 달콤한 복분자의 조합이 환상이다.
미당시문학관에는 미당 서정주의 육필원고와 시작품이 전시돼 있다. 그 앞 안현돋음볕마을은 국화꽃벽화가 인상적인 곳으로 이 마을 입구 담벼락에는 미당의 ‘국화 옆에서’가 적혀 있다.
요즘의 고창은 보리가 황금옷으로 갈아입을 때다. 공음면 선동리 학원농장에 가면 그 황금물결을 감상할 수 있다. 그 면적만도 17만 평. 끝없이 펼쳐진 보리밭이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든다. 밭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산책하기가 좋다. 보리밭 한편에는 죽순이 막 올라오고 있는 맹종죽숲이 자리하고 있다.
>>여행 안내
★길잡이: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IC→좌회전→22번 국도→선운사사거리(풍천장어촌) ★먹거리: 선운사 입구에 풍천장어촌이 형성돼 있다. 할매집(063-562-1542), 연기식당(063-562-1537), 풍천장어쌈밥(063-562-7520) 등이 유명하다. 일반 양식장어 1인분 1만 8000원, 갯벌풍천장어 1인분 2만 5000원. ★잠자리: 선운사 관광단지에 선운산관광호텔(063-561-3377), 선유산유스호스텔(063-561-3333), 햇살가득한집펜션(063-562-0320) 등 숙박업소가 많다.
★문의: 고창군문화관광포털(http://culture.gochang.go.kr) 문화관광과 063-560-2234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