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숲과 강이 어우러진 풍취 좋은 곳에 자리한 퇴수정. | ||
퇴수정은 자동차들이 잘도 달리는 큰 길 바로 곁에 있다. 그러나 그 존재를 미리 알고 가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치고 말 확률이 높다.
퇴수정은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에 자리하고 있다. 인월면에서 경남 함양 방면으로 이어진 60번 국도가 이 마을을 지난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로 흥부골자연휴양림과 백장암계곡, 실상사 등이 이 길가에 있다. 백장암계곡을 지나치면 오른쪽에 일성지리산콘도가 보이는데 퇴수정은 그 아래 숲에 있다. 퇴수정이라는 푯말은 보이되 정작 정자를 찾기 어려운데, 그 탓에 음식점쯤으로 오인하고 발걸음을 돌려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퇴수정으로 가려면 일성콘도 옥외 주차장 쪽에 난 산책로를 이용하면 된다. 조붓한 숲길을 따라 2~3분쯤 걸어가면 된다. 퇴수정은 1870년 토목건축 등을 관장하던 선공감의 가감역관이라는 벼슬을 지내다가 공조참판의 자리에까지 오른 매천 박치기가 지은 정자다. 퇴수정(退修亭)은 그 이름에 건축 목적이 드러나 있다. ‘벼슬에서 물러나 자기 수양을 하기 위한 정자’, 그것이 바로 퇴수정이다.
이 정자는 규모가 큰 편이 아니다. 2층 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아래는 네모꼴, 위쪽 옆면은 삼각 형태를 가진 한옥 지붕 구조) 건물이다. 특이하게도 누각 한가운데 방이 만들어져 있다. 우리가 생활하는 번듯한 방이 아니다. 기둥을 박고 그 사이에 문을 설치했다. 현재 문은 남아 있지 않다. 열려 있는 누각 속의 닫힌 공간이 바로 퇴수정의 방이었다. 바람과 추위를 피하거나, 골똘히 생각할 게 있다거나 할 때 이 방을 이용했을 것이다.
없어진 문짝과 빛바랜 기둥만이 퇴수정의 연륜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마치 머리가 자라듯 기와 위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 한두 뿌리가 아니라 마치 숲처럼 서로 의지하며 용마루 위를 넘본다.
퇴수정 왼편 바위에 기생하는 소나무도 경이롭다. 흙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바위의 수직면에 단단히 붙어 있는 소나무가 그래도 제법 건강해 보인다.
주변이 온통 키 큰 소나무숲이라 퇴수정은 한여름에도 더위가 침입하지 못 한다. 게다가 앞에는 시원한 계곡이 이어져 있다. 그다지 깊지 않고, 또한 물살이 세지도 않은 편이어서 물 흐르는 소리가 사분사분 들린다. 소나무숲을 지나온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계곡의 기분 좋은 노래를 듣노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한편 퇴수정 우측에는 담으로 둘러쳐진 한옥이 한 채 있다. 관선재라는 건물로 퇴수정을 지은 박치기의 후손들이 1922년에 지은 사당이다. 손볼 구석이 많아 보이는 건물보다는 마치 눈 덮인 것처럼 담을 폭 싸고 있는 담쟁이에 먼저 눈길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