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기부한 영포빌딩. 이 건물 1층에 청계재단이 입주해 있다. | ||
이명박 대통령의 아호 ‘청계’를 딴 청계재단은 이르면 내년 1월 장학생을 최종 선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 대통령 후원회장을 맡았던 송정호 재단 이사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보건복지부 등 여러 부처와 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장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이사회에서 논의해봐야 알겠지만 200~300명 정도가 될 것이다. 한 명당 100만 원씩 지급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고 밝혔다. 장학금을 받을 대상은 국가유공자 및 다문화가정 자녀, 소년·소녀가장 등이라고 한다. 재단 측은 늦어도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전에는 모든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송 이사장이 밝힌 사업 내용을 토대로 청계재단이 지급할 내년 장학금 총액을 계산해보면 2억~3억 원 수준이다. 장학사업 재원으로 쓰일 건물 세 곳의 임대료가 연 10억 원 안팎(월 9000만 원가량)으로 예상돼 사업은 별 차질 없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청계재단은 이 대통령 소유였던 서초동 영포빌딩 1층에 입주해 있는데 기자가 지난 9월 말 찾았을 때만 해도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지난 12월 10일 다시 방문했을 때 사무실 안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건물 관계자를 만나 재단에 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관계자는 “예전엔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엔 직원이 거의 매일 출근해 근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송 이사장을 포함해 이사진들도 자주 드나들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그렇지만 일각에서는 청계재단이 검토하고 있는 장학 사업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당초 알려진 것보다 그 규모가 줄어들었기 때문. 출범 이후 청계재단은 ‘장학생 500명, 장학금 300만 원’ ‘장학생 300명, 장학금 500만 원’ 등 여러 방안을 놓고 논의를 거듭한 끝에 ‘장학생 200~300명, 장학금 100만 원’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청계재단이 현실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 그리 넉넉지 않기 때문이다(<일요신문> 908호 참조). 청계재단은 이 대통령으로부터 331억 원가량에 해당하는 건물을 넘겨받긴 했지만 사업을 위한 비용은 임대료로만 충당한다.
청계재단 살림살이가 어렵다는 소식이 들리자 몇몇 대기업들이 청계재단 출연을 검토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솔직히 모른 척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 우리를 포함한 대기업들 중 일부에서 ‘자진 납세’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여러 통로를 통해 확인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대기업 임원 역시 “아무런 제안이 없어 손을 놓고 있기는 했는데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단 다른 기업들을 지켜본 후 입장을 정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송 이사장이 여러 차례 “대통령 재임기간 중 기업으로부터 일체의 출연을 받지 않겠다”고 천명하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몇몇 시민단체와 야당에서는 재단이 설립되기 전부터 이러한 자금 문제를 지적해왔다. 건물 일부를 처분해 기금액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일부 정치인과 재벌들이 장학재단을 상속과 증여의 수단으로 삼아왔던 선례가 되풀이될 수 있을 것이란 우려도 제기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현직 대통령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는 점에서 박수칠 만한 일인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그렇지만 ‘급’에는 맞지 않는 규모 아니냐. 부동산을 매각해 그 돈을 기부하면 그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송 이사장은 “선의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치적인 의도나 그런 것은 전혀 없고 이 대통령의 철학과 신념 때문에 재산을 내놓은 것”이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이처럼 자금부족 속에서 2010년 장학 사업을 위한 밑그림 그리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청계재단이 지난 10월 14일 우리은행으로부터 50억 원대의 돈을 빌린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인 사업 논의가 10월 말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재단설립 후 첫 업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거액 대출이었던 것. 이에 대해 송 이사장은 “이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건물 세 곳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채무를 해소하는 데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 이 대통령 소유였던 건물에 천신일 회장과 우리은행이 설정해놓은 근저당권이 말소됐음을 보여주는 부동산 등기부. | ||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번에 청계재단이 갚은 채무에는 이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죽마고우’로 알려진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에게 빌렸던 돈을 갚기 위해 우리은행으로부터 빌린 30억 원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직전이던 지난 2007년 11월 자신의 양재동 건물(지금은 청계재단 소유)을 담보로 근저당권(채권최고액 39억 원)을 설정하고 천 회장에게 30억 원대의 돈을 빌린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이 가운데 30억 원을 특별당비로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놓고 민주당은 지난 6월 이 대통령과 천 회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고 지난 11월 25일 1차 재판이 열렸다.
이재명 민주당 부대변인은 “친구 사이인 이 대통령과 천 회장은 직접 돈을 주고받으면 되는데 왜 굳이 근저당 설정, 예금담보대출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치며 불필요한 금융비용(6000만 원 상당)을 냈는지 모르겠다. 이는 천 회장이 이 대통령의 당비를 대신 내줬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천 회장은 지난 11월 초 검찰에 소환돼 “이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낼 특별당비를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도록 나의 정기 예금을 담보로 제시했고, 대신 이 대통령 소유의 양재동 건물에 근저당을 설정했다”며 법적으로 하자가 없음을 호소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한나라당의 고발(명예훼손 혐의)을 받고 정세균 민주당 대표 등의 소환을 검토하고 있어 향후 정치적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4월 29일 자신의 서초동 건물 한 곳을 담보로 우리은행에서 30억 원을 대출받아 천 회장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았고 천 회장과의 근저당권 계약도 해지됐다. 이는 야당에서 줄기차게 제기했던 ‘30억 대납설’ 의혹을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기도 했다.
어찌 됐건 이번에 청계재단이 50억 원대의 돈을 빌려 이 대통령의 빚을 청산함으로써 이제 대선과 연관된 채무는 남아 있지 않게 됐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앓던 이가 빠진’ 셈이다. 청계재단은 50억 원대의 대출금 중에서 30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 역시 그동안 건물이 안고 있었던 채무를 청산하는 데 전액 쓸 계획이다. 애초 이 대통령 측이 소유 부동산에서 채무를 정리한 나머지 재산을 기부한다는 방침을 밝혔던 만큼 문제 될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불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 사실을 기자로부터 전해 듣고 “청계재단이 당초 계획보다 사업을 줄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면서 “그런 거액을 빌려 모두 빚을 갚는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그 돈 중 일부를 장학 사업에 쓰는 게 나을 듯싶다. (채무상환이) 그렇게 급한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 역시 “그동안 청계재단이 뭐 하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제일 먼저 한다는 게 이 대통령 대선 빚 갚기였느냐”며 씁쓸해했다. 반면 한 여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한 만큼, 절차상의 문제나 지엽적인 문제로 그 의미를 훼손시키지는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