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군이 박 전 대표 구애에 나선 것도 이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할 듯하다. 기존의 친박 인사들은 물론 친이계로 분류되는 후보들조차도 박 전 대표와의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란 소식이 들리고 있다. 내년부터 대권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는 박 전 대표는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요즘 ‘짝퉁’ 친박들이 너무 많아졌다. 내부에서도 솎아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나라당 친박계 한 의원의 말이다. 그 의원은 “(‘짝퉁’이 많아진 게) 지방선거 때문이다. 몇몇 지역은 ‘박근혜’ 이름만 달고 나가면 당선되는 곳도 있다. 자칫 박 전 대표에게 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조만간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몇몇 현직 단체장들은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할 경우 친박연대 혹은 무소속출마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벌써부터 당내 일각에서 친박-친이 간 내홍에 따른 공천 후유증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년 지방선거의 ‘하이라이트’이자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서울시장 선거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서울은 전통적으로 야당세가 강한 곳이다. 오세훈 시장 역시 야당 시절에 당선된 것 아니냐.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고 있는 박 전 대표의 서울 지지도가 30% 이상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야당 역할을 하고 있고 유력한 대항마가 없이 독주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서울시장을 준비하는 한나라당 후보들이 박 전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도 “지금 이명박 대통령 지지도가 하락 추세에 있고 세종시 수정과 4대강 사업 등에 대한 여론도 좋지 않다. 예전에 이 정도면 서울시장을 포함한 지방선거 승리는 떼어논 당상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라는 변수를 무시하기 힘들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우리 쪽에서 박 전 대표만 한 ‘뉴스메이커’가 누가 있느냐. 박 전 대표가 유세장에 나타난다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처럼 여야를 막론하고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 전 대표 ‘역할’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군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특히 이들로서는 지난 7월 23일 열렸던 서울시당위원장 선거를 떠올리고 있을 법하다. 당시 선거는 한나라당 안팎에서 “서울시장 선거보다 더 뜨거웠던 한 판”이라는 평이 나올 정도로 치열했는데, 특히 친박과 친이의 대결로도 이목을 끌었다. 결과는 당초 불리할 것으로 예상됐던 친박 성향 권영세 의원의 완승. ‘수도권 맹주’를 자처하던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과 정몽준 대표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전여옥 의원을 200여 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된 것이다. 대부분 정치권 관계자들은 권 의원 승리의 결정적 원동력을 ‘박풍’으로 꼽았다.
‘대통령 인턴’으로 여겨지는 서울시장 자리를 꿈꾸고 있는 한나라당 후보들이 박 전 대표 힘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지난 12월 14일 한나라당 ‘당헌당규 개정 특별위원회’가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후보의 선거인단 투표를 기존 방식(대의원 20% 일반당원 30% 국민경선인단 30% 여론조사 20%)으로 치르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이 더욱 힘을 발휘할 것이란 전망이다. 대의원과 일반당원은 당협위원장(옛 지구당위원장)이 추천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서울시당위원장 선거에서 ‘친박계’ 당협위원장들과 당원들의 높은 지지를 받은 권영세 의원의 입김이 그만큼 커진 셈이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지방선거 후보자 공천에서 각 시·도당 위원장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예비 후보자 등록이 끝나면 위원장에게 눈도장을 찍으려는 이들이 줄을 선다”고 귀띔했다. 한때 친이계가 선거인단 투표에서 당원들의 비중을 줄이려고 했던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시도는 친박계의 강한 반발로 무산됐다고 한다.
현재 한나라당에서는 자천타천으로 5~6명 정도의 인사들이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오세훈 시장이 이미 재선의사를 나타냈고 원희룡 의원도 지난 12월 초 “출마를 준비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밖에 원내에서는 권영세·나경원·박진·정두언 의원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고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과 맹형규 청와대 정무특보의 ‘전략 공천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 원희룡 의원(왼쪽)과 오세훈 서울시장. | ||
더군다나 원 의원과 박 전 대표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친이상득계 성향으로 분류되는 원 의원은 지난 2006년 사학법 재개정 투쟁을 이끌던 박 전 대표에게 막말을 퍼부었을 뿐 아니라 대선 경선에서도 중립을 유지하긴 했지만 사실상 친이의 손을 들어줬다. 친박계 의원의 한 보좌관은 “본인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원 의원을 저쪽(친이) 사람으로 본다. 박 전 대표를 방문한 것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신호를 보낸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친이계가 이번 원 의원과 박 전 대표 회동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후보들도 ‘박심(朴心) 얻기’에 동참할 경우 내년 지방선거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 한 명이 원 의원에 이어 최근 박 전 대표를 독대했다는 소문이 국회 내에서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 이 때문에 친이계 내부에서는 일찌감치 오세훈 시장을 후보로 정리하고 친박과의 일전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는 전언이다.
지난 대선캠프에서 친이 핵심멤버로 일했던 한 관계자는 지난 17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친이 쪽에서도 몇몇 인사들이 서울시장을 준비해온 것으로 안다. 그렇지만 경선에서 이기려면 단일 후보를 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지금까지는 오 시장이 가장 유력한 후보”라면서 “박 전 대표를 향한 줄서기 행렬이 계속되면 오히려 친박이 분열할 수도 있다는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