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토와 돌로 쌓아올린 담장이 아름다운 방촌마을 풍경. 왼쪽 작은 사진들은 마을 어귀에 세워진 돌장승과 위성룡 가옥을 혼자 지키고 있는 할머니. | ||
장흥읍에서 용산면 방면으로 향하는 길가에 위백규 동상이 우뚝 서 있다. 호남실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위백규와 그 겨레붙이가 살았던 곳이 바로 방촌마을이다.
마을 어귀에는 석장승 두 기가 버티고 있다. 화강석으로 된 이 두 장승은 성별이 남녀로 다르다. 고려 말경에 조성된 것으로 전라남도 기념물 제33호로 지정돼 있다. 장승은 보통 마을을 수호하거나 경계를 표시하는 역할을 한다. 방촌마을의 이들 장승은 수호의 기능을 담당한다. 서쪽의 것이 미륵석불로 여장승이고, 동쪽의 것이 진서대장군이라 불리는 남장승이다. 언뜻 보아도 성별구분이 가능하다. 남장승이 훨씬 우락부락하고 코가 대단히 커서 얼굴의 반을 차지한다.
장승을 지나면 우측에 방촌유물전시관이 보인다. 마을은 도로 좌우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을 둘러보기 전에 대략 어떤 마을이고, 어떤 가옥들이 있는지 미리 살펴보는 게 필요하므로 유물전시관으로 먼저 길을 잡는다. 방촌마을이 언제 생겼고, 사람들이 어떠한 생활을 했는지 자세히 보여주는 전시시설이다.
방촌마을에는 1578년 위덕후라는 인물이 입향하면서 위씨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방촌마을에서 살았던 다양한 위씨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오래된 전축, 안경, 옷가지, 농기구 등 모두가 방촌마을에 사는 위씨들이 기증한 것들이다. 전시관 한편에 탁본체험시설이 있다.
꽃 만발 아름다운 돌계단
전시관을 나온 후에는 하나 더 둘러볼 것이 있다. 고인돌군이다. 전시관 건너편 소나무숲에 고인돌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134호로 지정된 것으로 모두 93기가 이 숲에 있다. 고인돌은 그 형태에 따라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나뉜다. 북방식은 일명 탁자형 고인돌이라고 부른다. 큰 돌을 괴고 그 위에 판판한 돌을 올린다. 반면 남방식은 작은 굄돌 위에 덮개돌을 올려 바둑판모양이다. 방촌리 고인돌들은 남방식이다. 크고 작은 것들이 어울려 있는데 숲 속에 있던 탓에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지석묘군까지 본 후에야 방촌마을로 들어간다. 일단 길 좌우측에 있는 마을 중에서 왼쪽으로 향한다. 이곳에 위백규 생가(중요민속자료 제161호)와 위성룡 가옥(전남 민속자료 제6호), 위봉환 가옥(전남 민속자료 제39호) 등이 있다. 따사로운 가을볕에 벼들이 누렇게 익은 논을 지나 마을로 들어가자, 고풍스런 한옥들이 눈에 들어온다. 순서대로 보자면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위백규 생가이고, 다음이 위성렬 가옥이다. 같은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마을 앞으로 뻗은 길을 따라 200m쯤 가면 위봉환 가옥이 있다.
▲ 방촌마을 지석묘군. 오른쪽 사진은 다리가 놓여 자동차로 들어갈 수 있는 노력도. | ||
위성룡 가옥은 할머니 한 분이 지키고 있다. 집안의 넷째며느리다. 올해 여든 셋이지만 무척 정정하다. 혼자 큰 집을 지키노라면 적적하지 않을까 묻는데, “그럴 일 없다” 하신다.
집을 한 바퀴 둘러보니 이해가 간다. 바람이 늘 먼지를 내려두고 가는 툇마루마저도 반들반들 깨끗하고, 마당에는 콩이며 결명자 따위가 심어져 있다. 담장을 끼고 있는 유자나무도 가꾸고, 대밭 옆에 있는 감나무도 보살핀다. 하나 더, 콩과 결명자를 심은 마당의 남는 부분과 집으로 오르는 돌계단에는 각종 꽃들을 심었다. 특히 계단에는 함부로 밟아 올라설 수 없을 만큼 꽃들이 만발했는데, 이보다 아름다운 계단을 이제껏 보지 못했다. 이런 모든 일들을 하노라면 적적할 틈이 있을 리 없다.
위봉환 가옥은 담장이 아름답다. 황토를 이겨 돌과 함께 쌓은 토석혼축담이다. 담장너머로 석류가 빨갛게 익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집 오른쪽으로 대나무밭이 자연 조성돼 있다. 아직까지도 낮 동안은 더위가 남아 있는 요즘, 바람이 사르르 댓잎을 간질이고 가는 소리가 시원하다.
위봉환 가옥까지 둘러본 후 길 반대편 마을로 향한다. 이곳에는 위성탁 가옥(전남 민속자료 제7호)이 있다. 대문 앞에 배롱나무가 있다. 또한 대문 우측에는 자그마한 연못도 하나 있다. 바람이 ‘쉬’ 지나칠 때마다 안채의 처마 끝에 달아 놓은 풍경이 은은하게 울린다.
한편, 방촌마을 인근에도 둘러볼 곳들이 꽤 많다. 방촌마을에서 천관산을 바라볼 때 오른쪽 등성이에 자리한 장천재를 비롯해 남으로 20분쯤 길을 달리면 닿은 노력도와 천관산 남쪽 기슭에 있는 천관문학관 등이 있다.
장천재는 장흥 위씨들이 장천암 터에 세워 한학의 서재로 이용하던 건물이다. 위백규가 이곳에서 공부했다고 전한다. 전남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돼 있다. 봄이면 주변으로 동백이 좋다. 가을이면 또한 억새산행객들이 이 앞을 무던히 지나가는데, 정작 장천재에 관심을 두는 이들은 별로 없다.
노력도는 회진면 덕산리에 자리한 섬이다. 아니 이제는 섬이 아니다. 다리가 놓여 자동차로 건너갈 수 있다. 섬은 작다. 해안선의 길이가 7㎞밖에 되지 않는다. 노력도로 들어가는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해오름이 장관이다.
천관문학관은 대덕읍 연지리 천관산 등산로 상에 자리한다. 그 위로 천관문학공원과 천관사가 있다. 장흥 출신 문인들의 연보와 대표적 작품, 육필원고 등을 전시한 문학관을 관람한 후 마음을 울리는 시구들이 돌에 새겨진 문학공원을 산책하고, 보물 제795호로 지정된 3층석탑 등의 유물이 있는 천관사까지 둘러보면 여행이 마무리된다.
여행안내
▲길잡이: 서해안고속도로 목포나들목→2번 국도(장흥 방향 직진)→순지교차로→23번 국도→장흥읍→방촌마을
▲먹거리: 장흥군청 정문 건너편에 있는 한정식집 신녹원관(061-863-6622)을 추천한다. 육회, 피조개, 전복, 낙지, 소라, 해삼, 장어구이, 홍어 등 30가지가 넘는 요리들이 상다리를 휘게 만든다. 1인분 1만 5000원, 특정식은 2만 원이다.
▲잠자리: 숲에서 하룻밤 어떨까. 장흥읍 우산리에 우드랜드((www.jhwoodland.co.kr·061-864-0063)라는 편백숲이 있다. 30만 평이나 되는 임야에 40년생 편백나무가 들어선 숲이다. 편백을 테마로 한 전통한옥과 편백노천탕, 편백톱밥찜질방 등을 갖추고 있다.
▲문의: 장흥군청 문화관광포털(http://travel.jangheung.go.kr) 061-860-0224, 061-863-7071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