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괘방산의 능선은 동해안과 나란히 달린다. 산길을 걷다보면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동해의 포구들이 눈에 잡힌다. 사진은 괘방산에서 바라본 정동진. | ||
<여행안내>
▲길잡이: 영동고속국도 강릉분기점→강릉IC→정동진 방면 7번국도→안인교차로에서 좌회전→모전교차로에서 우회전→안인진→괘방산.
▲먹거리: 안인진에 생태찌개를 잘 하는 늘푸른식당(033-643-2550)이 있다. 요즘은 생태가 물이 오르는 시기다. 하지만 동해에서 생태가 사라진 지는 오래. 국내산 생태라고들 간판에 걸어놓지만, 그게 다 바다 건너 어디에선가 온 것들이다. 늘푸른식당의 생태는 국내산이라는 뻔한 거짓말 대신 일본산이라고 메뉴판에 써 놓았다. 양심적이다. 생태찌개에 달려 나오는 고사리, 도토리묵 등의 반찬이 정갈하고 메인음식인 찌개 역시 조미료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개운하다. 반찬을 싹 비운 손님에 한해 공기밥값을 받지 않는다.
▲잠자리: 정동진에 숙박시설이 많다. 절벽 위에 세워진 유람선 모양의 선크루즈리조트(033-610-7000)는 두 말 할 나위없이 최고지만 문제는 비용. 인근에 정동힐(033-644-1671), 탑스빌모텔(033-643-1057), 정동비치모텔(033-644-5861) 등이 있다. 안인진에는 해안선모텔(033-644-6294), 이스트비취모텔(033-644-6486) 등이 있다.
▲문의: 강릉시청 관광과 033-640-5125, 산림녹지과 033-640-5577.
산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다. 높이가 겨우 399m에 지나지 않으니 1000m 이상의 산들이 즐비한 영동지방에서 괘방산은 명함조차 내밀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업신여겨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괘방산은 그 지리적 위치만으로 모자란 높이를 벌충하고도 남는다.
▲ 함상공원. | ||
그렇지만 안인진 또한 정동진 못잖게 특별한 새벽을 선사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의외로 많지 않다. 안인진(安仁津)은 ‘강릉 동쪽의 편안한 포구’를 뜻한다. ‘인(仁)’이 방위에서는 동쪽을 가리킨다. 군선강이 바닷물과 합수하는 지점인데, 양분이 풍부해 숭어가 많다.
해오름 그 자체야 ‘정동(正東)’에서 비껴났으니 의미를 부여할 게 못 되고 다른 데서 경쟁력을 찾아야 하는데, 안인진의 진정한 매력은 활기찬 포구에 있다. 안인진에서는 동이 터오기 시작하면 만선찬가를 부르며 어선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흥겨운 것은 어부들만이 아니다. 무전취식의 대가인 갈매기들 또한 신이 난다. 멀리서부터 어선 위를 맴돌며 춤을 춘다. 꽁꽁 얼어붙은 날은 해무가 잔뜩 피어오르는데, 어선들은 익숙한 듯 그 끈적끈적한 장막을 잘도 헤치고 들어온다. 포구에서는 밤새 잡은 귀한 것들이 바로 그 자리에서 경매가 붙는다. 요즘은 도루묵과 양미리가 제철이다. 배에서 생선들을 내리기 바쁘게 팔려나간다. 정동진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안인진의 새벽을 맛보고 이곳에서 괘방산을 오른다. 안인진에서 정동진까지는 육로로 약 4~5㎞에 불과하지만, 산행을 하자면 약 9㎞ 거리다. 보통의 등산이라면 5시간 가까이 걸릴 거리다. 하지만 괘방산의 특성상 3시간 정도면 주파 가능하다. 그만큼 능선이 유순하고 오르내림이 부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안인진에서 정동진으로 향하는 해안도로의 시작점 우측에 괘방산주차장과 등산로가 보인다. 등산로 초입은 나무계단이다. 이 계단을 밟고 150m쯤 오르자 전망대가 나타난다. 뒤를 돌아보니 안인진의 전경이 잡히고, 왼쪽으로는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가 막힘없이 펼쳐진다. 이제 겨우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앞으로 가야할 길이 까마득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한 땀방울을 식히고나 가자는 핑계를 대며 강릉 바다에 빠져 헤어 나올 줄 모른다.
전망대를 지나 약 200m를 더 오르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왼쪽이 쉼터 가는 길, 오른쪽이 정동진으로 향하는 길이다. 쉼터는 좀 전에 지나온 전망대와 다름없는 곳이니만큼 정동진이라고 푯말이 가리키는 쪽으로 걸음을 던진다. 물론 쉼터에서도 정동진 방향으로 길이 이어지니 들렀다 가는 것은 전적으로 산행자의 자유다.
길은 거의 평지처럼 뻗다가 활공장을 앞에 두고 점점 경사가 진다. 활공장은 대한민국 패러글라이딩협회에서 만든 공간으로 토요일과 일요일을 비롯한 법정공휴일이면 이곳에서 패러글라이딩 모임을 종종 갖는다. 이곳 역시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하게 동해가 조망된다. 정면 아래로는 통일공원이 잡힐 듯 가까이 있다.
▲ 활기찬 아침의 안인진포구. | ||
송전시설이 있는 정상은 딱히 감흥을 주지는 않는다. 송전시설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정상 표지석이 있지만, 마땅히 쉴 곳이 없고, 또한 조망도 삼우봉이나 활공장과 전망대 등에 미치지 못 한다. 정상을 넘어서면서부터는 거의 내리막이다. 간혹 조금씩 오르막의 능선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 거리가 짧아서 부담이 없다.
정동진을 약 4㎞ 남겨 놓고, 당집을 만난다. 근처에 서낭나무가 있는데, 이곳에서 제를 지낼 때 쓰는 도구들을 보관하는 집이다. 당집 앞으로 돌담이 쌓여 있다. 이곳에서부터 183고지까지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 산길이다. 그저 소나무숲을 지나간다. 이곳의 소나무들은 그리 큰 편이 아니다. 모진 해풍에 시달린 탓인지 키가 작고 몸통은 말랐다. 어쩌면 그것은 토양 때문인지도 모른다. 괘방산의 흙은 다른 지역에 비해 검다. 자세히 보니 석탄가루가 많이 섞여 있다. 183봉을 향해 걷다보면 채탄장이 보이기도 한다.
183봉에 이르자 벤치가 놓여 있다. 그 벤치에 앉으니 정동진의 썬크루즈호텔이 보인다. 1.3㎞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이곳을 지나면 다시 산길이 바다를 지워버림을 알기에 넉넉히 머무르다 다시 길을 나선다.
대개의 산행이라면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원점회귀를 하게 되지만, 괘방산행은 그럴 필요가 없다. 버스가 1시간에 1대씩 정동진과 안인진을 오간다. 두 포구의 사이에는 등산 중에 내려다보였던 통일공원을 비롯해 등명락가사, 하슬라아트월드 등의 명소가 있다.
통일공원은 통일안보전시관과 함상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통일안보전시관에는 강릉 잠수함침투장비를 비롯해 육군 전차, 장갑차, 공군 수송기 등이 전시돼 있다. 통일안보전시관에서 정동진 방향으로 약 1㎞ 떨어진 곳에 있는 함정전시관에는 잠수함과 해군 퇴역함정이 국내 최초로 육상에 전시돼 있다. 이 잠수함이 바로 1996년 무장공비들이 침투했을 때 이용했던 그것이다.
함상공원에서 다시 정동진 방면으로 약 1㎞ 떨어진 곳에는 락가사가 있다. 신라시대 때 최초로 지어졌다가 조선시대 때 폐사된 등명사 자리에 1956년 새로 지은 절이다. 영산전은 오백나한을 모시고 있다. 이 오백나한은 인간문화재 유근형이 5년에 걸쳐 옥으로 만들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된 오층석탑도 이 절에 있다.
락가사에서 조금 더 가면 하슬라아트월드를 만난다. 소나무, 시간, 습지, 바다 등을 테마로 놀이정원을 만든 곳으로 각종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산행을 마친 후 정동진에서부터 안인진까지 걸어가며 찬찬히 둘러보면 좋을 곳들이다. 물론 다리야 피곤하겠지만.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