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간펜'' 지난달 27일 동국대 불교병원 개원식 에 참석한 이회창 후보 | ||
소위 3김, 특히 김대중 대통령(DJ)과 김영삼 전 대통령(YS)은 돈(정치자금), 정보, 공천권 등과 같은 강력한 무기를 사용해 사람을 관리해왔다. 자신의 직계부대인 ‘가신그룹’을 형성해서 당의 구석구석을 장악했던 것도 DJ, YS의 사람 다루기의 공통점이다. 양김은 지역주의를 인재 발탁의 중요한 잣대로 작용했던 것도 흡사하다.
그러나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의 용인술은 이 같은 요소들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정치자금 씀씀이만 해도 세 사람 모두 문외한에 가깝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이 후보의 경우 97년 대선 당시 세풍사건에 휩쓸렸지만 본인이 정치자금을 주무르지는 않는 스타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후보의 신임을 얻어봐야 정치자금을 얻어쓰지는 못한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 후보는 돈을 만들지도 주지도 않는 스타일이다. 97년 대선 때 아무개 의원이 이 후보가 불러서 들어가니 모 기업체가 가져온 후원금을 손가락으로 밀어주면서 ‘당에서 알아서 쓰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치자금에 관해서 일종의 결벽증까지 있는 셈이다”라고 전했다.
노 후보도 마찬가지다. 노 후보 캠프가 “정치자금이 없는 게 가장 어렵다”고 토로할 정도다. 지난 3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초기에 ‘노풍’이 불면서 기자들이 노 후보의 지방일정에 따라 붙었지만 노 후보측은 상당기간 ‘기자단 버스’조차 대절하지 않았다고 한다. 민주당 의원들 대부분도 노 후보가 너무 돈을 쓰지 않는 게 약점이라고 지적한다. 김영배 의원이 “노 후보가 후보로 당선된 후 설렁탕 한 그릇도 사지 않았다”고 꼬집었던 것은 일례에 불과하다. 그만큼 노 후보는 돈을 쓰지 않는 스타일이다.
정 후보도 ‘짠돌이’로 소문이 자자하다. ‘재벌 2세’ 출신이라 돈으로 사람을 관리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정 후보 캠프에 들어간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선친인 정주영 회장이 막대한 정치자금을 뿌렸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돈에 관해선 모두 ‘결벽증’에 ‘짠돌이’ 가신그룹 줄세우기식 인맥관리는 안해 한 여권 인사는 “내가 의원 시절에 정 의원과 친한 사이라 가끔 용돈을 얻어 썼는데 액수는 미미했다. 한 번에 2백만∼3백만원 정도 받았던 것 같다. 일 년에 합쳐봐야 1천만원을 넘지 않았다”고 말했다.
▲ ''싦음 말구'' 지난달 26일 정책자문단 전체 회의 에 참석한 노무현 후보 | ||
이 후보는 ‘업무장악력’과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사람을 끌어모으는 힘이라는 게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평이다. 97년 대선 패배 이후 다양한 계파가 혼재한 한나라당의 전열을 재정비하고 끌어온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고위관계자는 “이 후보에게 보고를 하러 들어가면 대부분은 주눅이 든다. 원체 까다롭게 추궁하고 잘못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풍부한 국정경험과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이 후보 앞에서는 대충 대충 보고하려 들다가는 혼쭐이 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깐깐함과 치밀함 등으로 인해 이 후보는 일종의 ‘카리스마’를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 후보가 당내에서 ‘빨간 펜’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후보는 양김과 같은 측근그룹을 형성하지 않고도 정치판의 험난한 파고를 넘어왔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97년 대선 때 ‘7인방’이 구설수에 오르고 올해에도 연초까지 ‘3인방’ 얘기가 무성했지만 그들 역시 이 후보의 ‘가신’그룹은 아니다. 오히려 이 후보가 집권하면 3인방도 도태될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않다.
이 후보는 강력한 가신그룹을 통해서 당을 지배하는 대신에 ‘분할통치’에 가까운 스타일이다. 민정계, 민주계, 재야세력, 자민련 출신 등을 적절히 기용하고 어느 한쪽에도 힘을 몰아주지 않고 있다. 한 중진의원은 “내가 한나라당에 들어간 것은 내 자신의 선택이었다. 이 후보도 ‘그 사람은 부르지도 않았는데 왔다’고 얘기했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만큼 이 후보는 사람을 치밀하게 끌어모아서 관리하는데는 무신경한 셈이다.
▲ ''초보운전'' 지난달 25일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방송기자 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한 정몽 준 의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한 중진의원은 “노 후보는 ‘나는 원래 혼자 다니는 스타일이니 그냥 놔두라’는 반응을 보였다. 속된 말로 ‘줄을 서러 갔던’ 의원들은 무안을 당하는 심정이었다”고 고백했다. 반면 한 번 정한 목표는 끝까지 밀고나가는 ‘신념’과 ‘돌파력’ 그리고 3후보 중 개혁성향 면에서는 대표주자라는 점이 노 후보의 흡인력이다.
노 후보가 2000년 4•13총선에서 당선 안정권인 종로 지역구를 버리고 지역주의 불식을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서 낙선한 뒤 오히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 결성된 것은 대표적 사례다.
민주당 개혁파의 한 의원은 “경선 직후 주변에서 이인제 의원을 만나서 설득하라는 건의를 했지만 노 후보에게 먹히지 않았다. 한번 정하면 바꾸지 않는 고집불통이다. 그 점이 노 후보의 강점이면서 약점이다.”고 말했다. 지지자만 모아서 돌진하는 게 노 후보의 용인술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정 후보는 4선의원이지만 그간 무소속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활동이 거의 없었던 탓에 꼬집어서 용인술이라고 할 만한 대목이 없다. 다만 기업 경영인으로서 “외부 인사에게는 관대한 반면 부하직원들에게는 혹독하게 엄하다”는 일각의 평가가 있다. 올해 대선 출마를 밝힌 이후 드러난 스타일은 캠프의 참모들에게 권한을 위임하지는 않는 경향을 보인다.
민주당 박상천 의원이 지난달 정 의원과 회동한 후 개혁신당 창당에 합의했다고 밝혔을 때도 정 의원 캠프는 ‘사실 여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였다. 정 의원은 정치인으로서 사람을 관리하고 역할을 주는 것조차 아직 익숙하지 못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김병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