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17일 개통된 금악마을 4.3길.
[제주=일요신문] 박해송 기자 = 잃어버린 역사의 현장을 걸어보는 4·3길이 개통된다.
4·3 사건이 일어날 당시 제 9연대장이었던 김익렬은 ‘더 이상의 동족 상잔의 비극을 지켜볼 수 없다’ 면서 무장대에게 평화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것을 요구하게 된다.
당시 군경은 무장대와 평화 협상을 맺었고 72시간 내로 전투를 끝내는 것에 대해 협의를 마치게 된다. 하지만 72시간이 지나기도 전인 5월 1일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들에 의해 방화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데 이것이 ‘오라리 방화사건’이다.
오라동은 4·3초기부터 다양한 사건들로 유독 피해가 많은 지역이다. ‘오라리 방화사건’으로 연미 마을의 가옥들은 불타버렸고 진행 중이던 평화협상은 결렬됐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군정이 강경진압작전을 전개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오는 28일 오라동 연미마을회관에서 오라동 4.3길 개통식을 갖는다고 18일 밝혔다.
오라동 4·3길은 올해 2월 공모를 통해 선정됐다. 오라동 마을 관계자, 4·3 전문가 등과 수차례 현장 답사를 통해 2개 코스 총 12km를 조성했다.
오라동 4·3길 1코스(6.5km)는 제주시 오라동 연미마을회관에서 출발해 조설대(朝雪臺), 어우늘, 월정사 등을 탐방한다.
조설대는 12인의 유림들이 ‘집의계(集義契)’를 결성하고 ‘조선의 치욕을 설원한다’는 뜻의 조설이라 바위에 새겨 항일의 의지를 굳힌 유서 깊은 장소이다.
어우늘은 25여 호 130여명의 주민이 살았던 마을이다. 1949년 1월초 군경의 초토화 작전으로 마을은 잿더미로 변했고 복구되지 못한 채 끝내 잃어버린 마을이 됐다.
월정사는 1948년 12월 10일 토벌대에 의해 불태워졌다 4·3이후 지금의 월정사의 모습을 갖췄다. 제주 최초의 선원으로서 4·3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은 사찰이다.
2코스(5.5km)는 연미 마을회관, 오라지석묘, 고지레, 선달뱅듸 등을 탐방하는 노선으로 선정했다.
길 조성은 2015년 동광마을을 시작으로 2016년 의귀·북촌마을, 2017년 금악·가시마을까지 총 5개의 4·3길이 조성됐다. 현재까지 1만 6천여명 이상의 탐방객이 4·3길을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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