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이석희 전 국세청장이 구속 수감되고 있다. 정 치권에 다시 ‘세찬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문제는 97년 대선 당시 국세청을 동원해 국내의 삼성 현대 대우 등 24개 기업에서 불법 모금한 대선자금 2백30여억원 가운데 1백20여억원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
지난 97년 9월부터 12월 초까지 당시 이 전 차장과 서상목 신한국당 의원, 이회창 후보의 동생 회성씨 등이 불법모금한 1백66억7천만원 중 98억3천만원은 신한국당의 공식 계좌에 입금된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바 있다.
그런데 서 의원과 회성씨 등이 한국종합금융 등 기업체로부터 70억원을 추가로 모금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체 모금액은 당초보다 크게 늘어난 2백30억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검찰은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국세청 모금액 중 사용처가 불분명한 액수는 용처가 확인된 1백10억원 정도를 빼고나면 기존에 확인되지 않은 58억원과 새로 드러난 70억원 등 모두 1백20억여원에 이르고 있다.
이런 와중에 검찰 고위직을 지낸 DJ정부 사정기관 고위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업체로부터 모금한 대선자금을 (당시 신한국당 의원들이) 중간에서 착복한 경우가 많았다”고 증언해 파문이 예상된다. 특히 이 관계자는 ‘중간 착복’ 사례로 “B 전 의원의 경우 당에서 준 선거운동자금을 아들의 유학자금으로 송금했다”고 밝혔다.
더욱 충격적인 증언은 “자금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중진인 A 전 의원은 당시 일본에 사는 내연의 여인에게 수억원을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며 “일본에는 내연의 여자가 낳은 딸도 함께 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대선 당시 유력인사 C씨 측에서 고급 핸드백 1백여 개를 구입해 당 간부와 의원들 부인에게 선물로 돌린 사실도 자금추적 과정에서 드러났다”고 증언했다.
이 관계자는 이밖에 “대선에서 패배한 직후 당시 이회창 총재가 지방여행을 떠날 때도 기업으로부터 모금했던 수표가 사용됐다”며 “총재 비서실에서 항공권을 구입할 때 사용한 수표가 바로 기업으로부터 모금했던 자금이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 같은 사실들은 “당시 세풍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의 계좌추적 과정에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1일 부친의 빈소를 지키고 있는 이회창 전 한 나라당 총재와 동생 회성씨.
다음은 DJ정부 사정기관 고위관계자와의 일문일답.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에게 직·간접적으로 대선자금 모금 사실을 보고했거나 이 전 총재로부터 이와 관련한 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세풍사건에서) 그것이 핵심이다. 97년 대선 때 이석희씨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이회창 전 총재에게 줄을 댄 것으로 보인다. 생각해봐라. 그런 일(대선 자금 모금)을 하면서 이 전 총재를 직접 만나 칭찬을 듣고 싶지 않았겠나. 이 전 총재는 한 번도 이석희씨를 만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글쎄. 과연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는가. 후보자(이회창 전 총재)를 직접 만나 눈도장이라도 찍어야 열심히 뛸 것이 아닌가.
─당시 이 총재가 이석희씨의 대선 모금 과정을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검찰에서 세풍사건을 수사하던 당시(98년 8월부터 99년 9월) 이석희씨는 해외로 도피한 상태였다. 때문에 이씨에게 대선 자금을 제공했던 기업인들의 검찰 진술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내가 보고받기로는 경기고 출신인 한 기업체 회장이 대선 자금을 이석희씨에게 전달한 며칠 후 이 전 총재로부터 갑자기 ‘감사합니다’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이석희씨는 자금을 받아가면서 기업 관계자에게 ‘총재님이 직접 전화드리도록 하겠다’고 했단다. 그래서 (이 전 총재가 기업 회장에게) 전화했던 것 같다. 이석희씨가 이 전 총재에게 대선자금 모금 사실을 보고하면서 전화라도 한 통 해주라고 했을 것이고, 이에 이 전 총재가 전화했던 것 같다. 그 기업 회장은 검찰에서 ‘통 연락이 없었던 이 전 총재 전화를 받고 놀랐다. 전혀 연락이 없던 사람이 정치자금을 준 후 감사전화를 한 것이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틀림없다. 이 전 총재와 이석희 차장은 만났다고 본다.
국세청 차장 정도면 이 전 총재를 만날 수 있는 위치다. 그래서 수사기관에선 이 전 총재가 분명히 대선 자금 모금 과정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보고 있었다. 4년 동안 일절 전화하지 않다가 대선 운동 기간중에 그것도 대선자금을 준 며칠 뒤 전화해서 거두절미하고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 뻔한 것 아닌가. 대선 기간이니 ‘한 표 부탁한다’는 부탁도 아니고 ‘감사합니다’라니.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지난 99년 세풍 수사 관련 검찰 수사발표 중 공개한 압수 물로 돈을 담았던 가방들이다.
▲주변 정황상 부국팀이 개입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리고 당시 국세청 건물이 부국팀 사무실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당시 국세청 직원들을 불러 조사하니까 이석희 차장은 97년 대선 당시 사무실을 자주 비웠다고 했다. 그래서 부국팀을 오가며 대선자금을 모았을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이석희 전 차장과 서상목 전 의원, 이회성씨 등이 모금한 1백66억7천만원 이외에도 70억원을 추가로 모금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아마도 이석희 차장 개인이 대기업에서 걷은 돈일 것이다. (이석희씨와 동문인) 경기고 출신들이 오너인 회사들은 거의 모두라고 보면 된다.
─검찰에선 기업으로부터 모금한 자금 일부를 97년 대선 당시 신한국당 정치인들이 사적으로 유용했다고 하는데.
▲정치인들 중에는 선거자금을 개인적으로 떼어먹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당에서 사용하라고 준 돈이라 그렇게 썼다고 하지만 일부 유용한 것은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치인이 어떻게 유용했다는 것인가.
▲정치자금을 제대로만 사용했어도 이 총재가 당선됐을 텐데, 중간에 착복한 경우가 많았다. B 전 의원은 아들 유학자금으로 송금했다. C씨측에선 고급 핸드백 1백여 개를 구입해 당 간부와 국회의원 부인들에게 선물로 돌렸다. 또 검찰의 계좌추적을 통해 ‘세컨드’가 들통난 경우도 있었다.
─누구인가.
▲A 전 의원이다. 당시 이석희씨 등과 기업에서 걷은 대선자금 일부를 개인 자금으로 사용했다. 그 여자는 일본에 있고, 딸아이도 거기에 있다. 아마 그 내연녀한테 몇억원은 건네줬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른 수사 비화는 없나.
▲서상목 전 의원은 수사받을 당시 이회창 총재와 갈등을 겪었던 것 같다. 다시 서 전 의원은 새벽에 이 총재를 찾아가 ‘총재님 오늘 검찰에서 이 정도까지는 얘기하겠습니다’라고 합의하고 나서 검찰에 출두해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이 전 총재는 ‘난 모르는 일이다’며 딴 소리를 했다. 이에 배신감을 느낀 서 전 의원이 등을 돌린 것으로 안다.
─대선자금으로 모금한 돈은 또 어떻게 사용됐나.
▲97년 대선 직후 이 전 총재가 마음을 달랠 겸해서 지방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당시 총재 비서실에서 항공권을 구입했는데, 그때 사용했던 수표도 대선자금으로 기업에서 모금했던 돈이었다. 대선자금으로 받았던 수표를 무심코 사용했던 것이다. 이는 계좌 추적 과정에서 밝혀졌다. 당시 기업에서 건네준 현찰이 많다보니 일부는 수표로 준 것 같다. 그게 밝혀진 것이다.
─정치자금은 어떤 식으로 기업에서 이 전 차장에게 전달됐나.
▲주로 회사 지하 주차장에서 전달됐다고 한다. 주로 현찰이었고, (신한국당 후원금) 영수증은 없었을 것이다. 이석희씨의 차 트렁크에 실었다고 한다. 검찰은 이석희씨가 이 총재의 동생인 회성씨한테 전달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기업인들도 그럴 것이라고 진술했단다. 당시 국세청장도 자금 모금에 동원됐다. 그러나 이 청장은 ‘이 총재가 직접 지시하지 않았다. 이석희씨를 통해 대선자금 모금을 거들었다’ 변명했다.
─이석희 전 차장은 “강제 모금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데.
▲당시 국세청에서 정치자금 달라면 안줄 수 없는 분위기였다. 더욱이 신한국당은 97년 대선 당시 여당이었다. 그리고 강요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협박해야만 하나. 누가(어느 기업인이) 거절할 수 있었겠나.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