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일요신문] 김성영 기자 =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권영진 대구시장의 22일 첫 공판에서 검찰이 벌금 150만원을 구형하면서 내달 14일 있을 1심 선고공판에서 법원이 검찰 구형을 그대로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권 시장은 100만원 이상의 형을 최종 확정 받으면 시장직을 잃게된다. 검찰은 구형에 앞서 유사한 선거법 위반 판결 사례를 철저히 살폈다고 밝혔지만, 시민단체는 검찰 구형이 너무 관대하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최종 선고에서 형이 줄어든 일부 사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강은희 교육감 등에 대한 선거법 위반 관련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다.
대구지검은 이날 첫 공판에서 “증인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 만큼 공소사실이 모두 인정된다”면서“권 시장에게 벌금 150만원을 선고해 달라”며 대구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손현찬)에 요청했다.
권 시장에 대한 검찰이 밝힌 공소 사실은 두 가지다. 지난 6·13 지방선거를 앞둔 4월과 5월 현직 시장 신분으로 대구의 한 초등학교 총동창회 체육대회와 조성제 달성군수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 특정 후보와 정당 지지 발언을 하는 등 선거 운동을 한 혐의다. 이날 공판에서는 총동창회에서 권 시장의 특정 후보 지지 발언 여부가 검찰과 변호인측의 핵심 쟁점이 됐다. 변호인 측이 검찰의 두 공소사실 중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 측 증인신문에 나온 3명 중 한 명은 “권 시장이 ‘경쟁 정당’의 후보자에게 구청장 자리를 주자고 언급한 점이 이상해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변호인 측은 “증인들은 권 시장이 경선 상대 후보 선거운동에 참여한 측근들로 권 시장을 흠집 내기 위해 사실과 다른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반박했다. 이에 검찰은 “당시 이재만 후보는 자유한국당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탈락하고 권 시장이 확정된 상황이었다”며 “증인들도 권 시장의 발언이 문제 소지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점을 미뤄 음해 의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했다. 조성제 달성군수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의 선거법 위반 혐의는 당시 관련 영상자료 등 증거가 충분히 확보돼 이 날 쟁점이 되지 못했다.
첫 공판에 출석하는 권영진 대구시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검찰이 이같이 권 시장에 대해 시장직 상실에 해당하는 형량을 구형하면서 유사한 선거법 위반 판결 사례를 자세히 살폈다고 밝히면서 앞서 언론들이 제기한 유사 사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김생기 전 정읍시장과 김선교 전 양평군수 사례다. 김 전 시장의 경우 검찰이 300만원을 구형했지만 최종 200만원이 선고되면서 시장직을 잃은 반면, 김 전 군수의 경우는 검찰이 100만원을 구형했지만 법원이 검찰 구형 보다 낮은 50만원을 선고하면서 직을 유지했다.
김선교 전 군수는 지난 2014년 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둔 4월 현직 군수 신분으로 같은 당 소속 군의원 예비후보 선거사무실에 방문했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김 전 군수 또한 권 시장과 같이 “선거법을 위반했는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김생기 전 시장은 지난 4·13총선을 앞둔 3월 정읍지역 유권자로 구성된 산악회의 등반대회에 참석, 정읍고창 선거구에 출마한 하정열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를 호소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 전 시장은 또 정읍의 한 식당에서 산악회 회원 등 35명을 상대로 하 후보의 지지를 당부한 혐의도 함께 받았다. 권 시장 또한 김 전 시장과 같이 선거법 위반 사례가 두건이다. 이같은 이유로 권 시장에 대한 가중처벌 가능성도 대두됐다. 하지만 검찰이 이번 구형에 앞서 선거법 위반에 대한 유사 판결 사례를 어디까지 들여다 봤는지는 알 수 없다.
검찰이 이 날 권 시장에 대해 시장직 상실(100만원)에 해당하는 이상의 벌금을 구형했지만 시민단체의 반응은 싸늘했다. 23일 우리복지시민연합은 “정치적 고려 없이 엄중한 처벌을 약속한 검찰이 명백한 불법이라고 강조하면서도 고작 150만원의 벌금을 구형한 것은 관대한 처분”이라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면피성 구형을 한 검찰에게 당초 수사 의지와 엄정처벌 의지가 있었는지 조차 의문스럽다”며 “여러차례 선거를 치뤄본 권 시장이 공직선거법을 연이어 위반했음에도 솜방망이 구형을 해 사건을 흐지부지시키려는 것 아닌 지 의혹이 든다”고 주장했다. 앞서 사례에서 보듯 검찰 구형 보다 낮은 법원의 최종 판결 사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이유로 이 단체는 검찰이 ‘정치적 고려’를 한 구형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함께 제기했다. 앞서 대구의 주요 시민단체와 민주당·정의당 대구시당 등은 권 시장의 이번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법원의 공정하고 엄중한 판결을 여러차례 촉구해 온 바 있다. 검찰에 대해서는 선거 후 한 달이 넘도록 권 시장을 소환하지 않은 점을 들어 ‘늑장수사’, ‘봐주기 수사’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한편, 권 시장은 검찰 구형 뒤 마지막 진술에서 “시민을 대표하는 시장이 법정에 서게 된 것 자체가 역사에 오점을 남긴 것”이라며 “재판부의 결정에 존중하고 따르겠다. 관대한 처분을 해달라”고 말했다. 권 시장에 대한 선고공판은 오는 11월 14일 오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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