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영 동아일보 제주주재기자(55)가 지난달 뉴질랜드 로토루아 지역에서 열린 타라웨라 160㎞ 울트라 트레일러닝대회에 참가해 완주에 성공했다.
트레일 러닝(Trail Running)은 Trail과 Running의 합성어로 포장되지 않은 길이나 산, 들, 초원지대 등을 달리는 것을 말한다.
타라웨라 울트라 트레일러닝대회는 국제트레일러닝협회(IRTA)가 인증한 울트라 트레일 월드투어(UTWT)의 하나로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트레일러닝대회다.
임 기자는 지난해 2월 스페인 그란카나리아 125㎞ 울트라 트레일러닝 대회를 한국인 최초로 완주하기도 했다.
임재영 기자는 2월9일 오전 4시에 출발해 35시간 7분7초를 기록하며 트레일러닝 코스를 완주했다. 대회 제한시간은 36시간이다.
-완주 소감은?
“‘정신력으로 버틴다’는 말의 의미를 새삼 깨달았다. 왼쪽 무릎 부위 근육통으로 걸음을 내딛는 자체가 고통이었다. 시야에 건물이 하나둘씩 들어오고 길가에서 응원하는 관중들의 목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면서 기나긴 레이스의 끝이 보였다. 없던 힘이 어디선가 생겨났고 몽롱했던 정신은 다소 맑아졌다. 근육도 마지막 힘을 쥐어짜면서 결승선을 넘었다.”
-기록은 어떻게 됐나?
“2월9일 오전 4시(현지 시간) 로토루아박물관을 출발해 35시간7분7초 만에 완주했다. 이 대회 제한 시간은 36시간으로 1시간가량 남겨두고 가까스로 결승선이 마련된 로토루아 에너지이벤트센터에 도착했다. 이번 대회는 50㎞, 102㎞, 160㎞ 등의 부문에 37개국에서 1300여 명이 참가했다. 160㎞ 레이스는 타라웨라산과 7개 호수 등을 지나는 코스로 짜여졌다. 코스 오르막을 합친 누적해발 고도는 5300m로 한라산을 성판악코스로 정상까지 5번 정도 왕복하는 난도이다.”
-뉴질랜드는 ‘자연을 수출하는 나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연환경이 뛰어난데, 코스에서도 보이는 모습은 어떠했나?
“로토루아박물관 앞에서 출발했는데 시내 중심가를 거쳐 테푸이아 민속촌을 지날 때는 어둠 속에서도 지열온천인 간헐천에서 솟아나는 유황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원시림에는 야자수 같은 나무고사리가 지천으로 널렸다. 뉴질랜드에는 190여 종의 고사리가 자생하는데 식민시대에 뉴질랜드가 ‘고사리 땅(Fern Land)’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였다는 것이 실감났다. 숲을 벗어나자 햇빛에 반짝이는 맑은 호수가 눈을 시원하게 했다. 1886년 로토루아 지역 화산 폭발로 지형이 크게 바뀌면서 여러 호수가 만들어졌다. 소나무 숲길에 미역취, 인동초, 애기범부채 등이 피어 있어서 언뜻 보기에 제주의 올레길과 비슷한 풍경을 보여주기도 했다.”
-레이스과정이 힘들지 않았나.
“10여㎞마다 마련된 구호소(aid station)에서 간식과 과일, 음료 등을 보충했지만 100㎞ 지점을 지나면서부터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졸음과 전쟁을 벌여야했다. 걸음을 잘못 디디면 원시림 계곡으로 추락할 수도 있는 위기를 여러 차례 넘겼다. ‘졸면 제한시간에 완주하기 힘들다’는 걱정 때문에 천근만근 내려앉는 눈꺼풀을 억지로 잡아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코스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아버렸다. ‘아 유 오케이?’라는 말이 바람소리처럼 귀를 스쳤다. 뒤에 오던 선수가 지나면서 한마디를 던진 것이다. 시계를 보니 15분가량 지났다. 몸은 다시 충전된 듯 달릴 힘을 얻었지만 120~130㎞를 넘기면서는 다시 체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환각, 환청도 나타났다. 나무줄기가 원숭이가 앉아있는 모양처럼 보였고, 이상한 동물 울음소리도 들리는 듯 했다.”
-그야말로 한계에 이른 극한의 레이스였는데,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뭔가?
“완주를 하고 나서 반응이 비슷했다. 처음에는 ‘대단하다’는 말을 하고 나서 ‘근데 그렇게 힘들 것 왜 해요?’라고 묻는다. 목표를 세우고, 도전해서 완주하는 과정이 행복이다. 개인적으로는 일상생활로 복귀 후 활력과 자신감이 상승한다. 그리고 트레일러닝에 대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해외 유명 트레일러닝 경험 등을 통해 국내 트레일러너들에게 새로운 도전의 장을 열어주고 싶다.”
-제주의 트레일러닝은 어떤가?
“트레일러닝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2021년 세계챔피언십 대회 개최를 공식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마라톤 강국인 일본이 트레일러닝에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중국이 신흥 강자로 급부상했다. 한국은 대한울트라마라톤연맹에서 2004년 한라산 트레일런 148㎞를 처음 개최했지만 참여 인원이 소수에 불과했으며 코스에 포장길이 상당 거리가 포함되는 단점이 있었다. 2012년부터 ‘트레일러닝’ 용어 등장과 더불어 제주, 경기도 등에서 대회가 개최됐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다. 제주 자연환경은 세계적인 유명 트레일러닝 대회 코스에 견줘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세계적인 트레일러닝 대회로 성장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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