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업계는 이러한 원인 중 하나로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가 개발해 운영하는 ‘자동차 수리비 견적시스템(AOS)’을 꼽고 있다. 특히 지난해 기존 버전의 기능 일부를 바꿔 출시된 ‘2018 AOS 버전’에 대해 정비업계 일각에서는 ‘개악’ 수준이라고 혹평하고 있다. 이들은 “손보업계의 눈치를 보는 보험개발연구원 자동차기술연구소가 정비업계를 상대로 ‘갑질’을 하고 있다”며 불합리한 문제들을 즉각 개선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경기도 이천시 소재 보험개발원 산하 자동차기술연구소. 사진=일요신문DB
2018 AOS 버전은 지난해 6월 말 국토교통부가 손해보험협회, 검사정비연합회와 적정 정비요금을 공표한 이후 9월부터 손보사와 일선 정비업체들이 사용하고 있다.
‘일요신문’은 지난 3월 말 경기도 이천 자동차기술연구소에서 2018 AOS 버전과 관련해 연구소와 인천시 40여 정비업체들의 협동법인인 ‘인천자동차정비협동조합(협동조합)’간 갈등의 현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AOS 사용은 강제는 아니다. 그러나 국내 11개 손보사들이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사용함에 따라 사실상 자동차 수리 견적 산출 시스템의 표준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해 AOS는 전국 약 6000개 정비업체 중 대다수가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험개발원은 보험사들의 회비로 운영되고 있고 AOS를 개발해 운영하는 자동차기술연구소는 보험개발원 산하기관이다. 따라서 AOS의 태생이 손보업계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실정이다.
정비업계는 AOS에 대항하기 위해 ‘한길’이라는 시스템을 선보였으나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정비업체가 ‘한길’을 통해 보험사에 수리비를 청구하면 보험사는 “AOS를 사용하지 않아 믿을 수 없다”며 지급을 미루고 나아가 소송을 제기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법원은 거의 “AOS가 손보업계와 자동차 정비업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시스템”이라며 보험사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협동조합은 2018 AOS버전이 정비업계에 지극히 불리한 문제점들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우선 협종조합은 차종도 많아져 수리항목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이전 AOS 버전에서 탑재됐던 수리 항목들이 2018 AOS 버전에 누락된 것들이 적지 않다고 주장한다.
AOS에 탑재된 항목들에 대해 정비업소는 클릭만 하면 자동으로 수리 견적이 나오고 푸른색으로 표시된다. 그러나 정비업소가 수리를 했음에도 2018 AOS버전에 없는 항목들은 수기로 입력을 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눈에 확 띄는 붉은 색으로 표시되는 동시에 수기로 입력했다는 뜻으로 U자까지 함께 표시된다.
이후 정비업체가 수기로 입력한 항목들은 견적 순서와 상관없이 견적서 등을 산출하면 맨 뒷부분에 모여 위치하게 된다. 협동조합은 “보험사 손해사정인들이 없는 항목이라고 주장하면서 임의 삭감을 하고 있고, 정비업체는 자동차 수리를 맡긴 고객들로부터 받지 않아도 될 오해를 받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협동조합 소속 정비업체 한 관계자는 “정비업체 수리 견적과 어떻게든 수리비 지급을 삭감하려는 보험사 손해사정인 간에 가격 산출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손해사정인들은 누락 항목 문제점과 관련해 정비업소의 작업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삭감하기 일쑤며 기술연구소에서 누락 항목을 신설해 주면 제대로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보인다”라고 질타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러한 견적서를 제시받는 고객들로부터 정비업체는 심지어 ‘사기꾼’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전 AOS 버전의 경우 자동차기술연구소는 탑재 항목인 범퍼, 후드, 도어, 트렁크, 백도어 등의 탈착, 작업시간(O/H)과 수리 작업 시 전산오류가 발생한 것에 대해 정비업계의 분리 요청으로 프로그램을 수정했다. 당시에는 이 부분에 대한 손보업계와 정비업계간 이견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2018 AOS버전은 이전 버전에서 분리됐던 항목을 하나로 묶어놨다고 꼬집었다. 다른 정비업체 관계자는 “정비업체는 똑같은 항목에 대한 견적을 중복 청구했는지 여부를 검사한다. 그런데 이전 버전에서 분리했던 항목들을 2018버전에서 한데 묶어놨기 때문에 이후 수리 작업 진행과 관련해 많은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이 역시도 자동차기술연구소가 정비업체에게 수리비 지급을 줄이기 위한 손보사들의 꼼수를 반영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2018 AOS버전에서 없는 항목들에 대해 정비업체가 수기로 입력할 경우 눈에 확 띄는 붉은 색으로 표기된다. 사진=인천자동차정비협동조합
또다른 정비업체 한 관계자는 “환경부는 자동차 도장과 관련해 환경 문제로 수용성 도료를 쓰도록 하고 있다. 수용성 도료 사용으로 인해 정비업체는 조색을 해야 하는데 한 번 작업으로 맞출 수 없는 실정이다”라고 지적했다.
정 아무개 협동조합 이사장은 “국토부에서 발표한대로만 자동차기술연구소가 AOS프로그램에 반영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라며 “탑재 항목들에 임의 변경과 누락 등으로 인해 일선 정비업체들은 애로를 겪을 수밖에 없다. 국토부 발표대로 하라고 하면 자동차기술소연구소는 그대로 했다고 하는데 그 괴리를 지적하면 검사정비연합회에 문의하라는 식이다. 손보업계와 정비업체간 진정한 상생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자동차기술연구소 관계자들은 “정비업체에서 산발적으로 건의를 하면 일일이 다 수용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따라서 검사정비연합회에서 일선 정비업체들의 건의를 수렴해 우리 연구소에 건의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협동조합에서 문제를 제기한 사안들에 대해 검토해 보겠다. 손해보험협회가 자동차기술연구소에서 수정을 요구하면 수정한다. 검사정비연합회에서 수정할 사안이 있다면 손보협회랑 합의를 한 것에 대해 우리 연구소는 수정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협동조합 측은 “자동차기술연구소가 AOS와 관련해 손보업계가 요구하면 수정해 주고 정비업계가 요구하면 손보업계와 합의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모순이다”며 “사용료를 내고 AOS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정비업계로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장익창 기자 sanbnad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