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시내 면세점을 추가로 허용하기로하면서 면세업계가 딜레마에 빠졌다. 사진=연합뉴스
기획재정부는 최근 신규 시내 면세점 6곳의 추가 출점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대기업 시내면세점은 서울 3곳, 인천 1곳, 광주 1곳이다. 중소, 중견기업은 충남 1곳에 출점할 수 있다. 관세청이 이달 말까지 신청을 받아 심사를 시작하면, 오는 11월에 신규 면세점 수와 최종 사업자 선정이 확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소비 진작과 관광 산업 활성화를 위해 면세점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앞서 지난해 말 올해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서울 등을 중심으로 시내면세점을 추가 설치해 외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을 활성화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2월엔 관세법을 개정해 신규 특허 요건을 대폭 완화하고 요건을 충족하는 지자체는 가급적 특허를 내주기로 결정했다. 이번 새 면세점 추가 출점 허용은 바뀐 관세법이 처음 적용된 사례다.
사업을 늘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오히려 시장 반응은 싸늘하다. 실제 정부가 신규 면세점 추가 출점 허용을 발표한 직후 주식시장에선 호텔신라와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대기업 면세점을 비롯한 면세점주가 대부분 5% 넘게 추락했다. 업계 표정도 밝지 않다. ‘일요신문’은 현재 면세점을 운영하는 대기업과 중견, 중소 업체 관계자들을 만나봤다. 이들 대부분은 아직까지도 신청서 제출 자체를 망설이고 있거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업체들도 사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신청한다고 설명했다.
면세 업계는 면세점 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경쟁을 피할 순 없겠지만, 현재 업황을 보면 그 강도가 과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서울 시내 면세점 출점에 최근 면세점 특허를 반납한 한화갤러리아를 제외하면 현재 전국 면세점은 총 25곳. 서울 내 대기업 시내 면세점은 9곳이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올해만 12개로 늘어나게 된다. 여기에 중소, 중견 면세점까지 더하면 총 15곳이다. 2015년 6곳에 불과했던 서울시내 면세점이 2배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국내 면세점 시장 규모는 월 2조 원에 육박한다. 국내 면세점 매출은 지난 3월에 2조 1656억 원, 4월에는 1조 9947억 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주요 면세점들은 대부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제 신세계면세점은 올해 1분기(1~3월) 매출이 지난해와 비교해 107% 상승한 7033억 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46.6% 줄며 적자전환했다. 현대면세점도 매출액 1569억 원, 영업손실 236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매출 증가율이 매달 오르고 있지만 흑자전환은 하지 못하고 있다. SM면세점, 동화면세점 등 중견업체들도 매년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이는 기형적인 면세시장 구조 탓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과거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유커의 발길이 끊기면서 그 자리를 따이공(보따리상)이 채웠는데, 이 현상이 고착화 됐다는 얘기다. 한 대기업 면세업체 관계자는 “매출의 70~80%는 따이공이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면세업체들은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송객 수수료와 각종 프로모션 등으로 큰 비용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면세점이 따이공을 유치하는 여행사와 가이드에 지불하는 송객수수료는 2017년 1조 957억 원에서 지난해 1조 2767억 원으로 늘었다. 특히 지난해 10월에는 중국의 국경절을 앞두고 국내 면세 업체들이 따이공 유치를 두고 ‘수수료 전쟁’을 벌였다. 통상 20% 수준이었던 수수료는 당시 40%까지 치솟았다. 매출은 늘지만 남는 게 없다는 얘기다. 이러한 출혈경쟁이 지속되면서 최근 3년 사이 1000억 원에 적자를 낸 한화 갤러리아는 “면세시장이 심각하게 왜곡돼 있다”며 면세 사업을 포기했다. 과거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던 면세점이 이제는 대기업도 버티지 못하고 나갈 만큼 속 빈 강정이 된 셈이다.
한 중견 면세업체 관계자는 “면세 사업이 경기뿐만 아니라 국가 간 정치와 외교에도 영향을 받아 사업 불확실성도 크다”며 “수수료 경쟁 탓에 새로 면세점을 출점하면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이 들어간다. 잃는 건 확실한데 외부 요인에 따른 리스크가 커 얻는 건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다른 중소 면세업체 관계자는 “대형 면세점들과 중견, 중소 면세업체들의 양극화가 더 심화되고 결국 버틸 수있는 업체만 버티는 강제 구조조정이 일어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면세점 매출의 87%는 롯데, 신라, 신세계 등 ‘빅3’ 면세점이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면세업체들은 볼멘소리를 내면서도 신규 면세점 출점을 포기할 수는 없다. 면세 사업은 명품 및 화장품 브랜드와의 구매 협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점유율이 늘면 납품 단가를 조정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마진율을 높일 수 있다. 면세업계 관계자들은 “영업이익률을 지킬 것인지, 시장점유율을 높일 것인지를 두고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업계의 우려의 목소리는 알고 있지만, 특히 서울의 경우 매출이 가파르게 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업체들이 내부적으로 사업성을 검토해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