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16일 항소심을 앞둔 권노갑씨가 현장검증 을 하기 위해 옛 자택인 평창동 S빌라에 모습 을 드러냈다. 우태윤 기자 | ||
김대중(DJ) 정권 시절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게 따라다니던 ‘수식어’다. 실제로 권 전 고문은 2000년 4월 총선 때 민주당 공천을 사실상 좌우한, 또 총선 이후에는 공기업 산하단체장 인선에 관여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권 전 고문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손’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경선을 앞두고 ‘이인제 후보’를 미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4년여 동안 ‘궐밖 대신’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권 전 고문은 2002년 5월3일 급작스레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민주당 대선 후보와 당 대표가 결정된 지 일주일 만에 검찰에 소환돼 전격 구속되는 신세가 됐던 것. ‘2000년 7월 권노갑 전 고문에게 금감원 조사 무마 청탁을 하며 5천만원을 주었다’는 진승현 MCI코리아 부회장과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의 검찰 진술이 계기가 됐다.
그후 권 전 고문은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한이 깊었기 때문일까. 지난해 12월 병보석으로 풀려난 뒤 그는 결코 ‘주군’인 DJ에게 찾아가지 않았다. 대신 ‘명예회복’을 벼르며 항소심 재판에 나서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권 전 고문이 진승현씨의 돈을 받았다는 ‘현장’인 서울 평창동 S빌라에서 항소심 재판부 주관으로 ‘현장검증’이 실시됐다. 진씨와 김은성씨 진술의 신빙성을 가늠하는 자리였다. S빌라는 권 전 고문이 2001년 6월까지 거주했던 곳이다.
권 전 고문을 둘러싼 ‘5천만원 알선수재 사건’은 이제 ‘현장검증’까지 마친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이 사건이 당시 정치적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법리 논쟁을 떠난 정치적 사건이란 시각이 그것이다. 과연 권노갑 전 고문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일단 당시 정치적 상황을 되짚어 보자. 제16대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던 2002년은 이른바 ‘게이트 정국’으로 점철됐다. ‘이용호 게이트’에 대해 차정일 특별검사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수동 아태재단 이사, 김대중 대통령 처조카 이형택 예금보험공사 전무 등이 구속됐다. 이에 앞서 2001년 12월 최택곤 민주당 부위원장이 진승현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고, 최씨로부터 자금을 받은 신광옥 법무차관이 구속되기도 했다.
한편 최씨가 구속 직전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씨를 찾아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홍업씨 연루 의혹도 제기되던 시점이었다. 이와 함께 체육복표사업자 선정과 관련, 김홍걸-최규선 게이트가 연일 대서특필되고 결국 최규선씨가 4월 중순 구속된 상태였다.
여기에 김홍업씨의 친구 김성환씨의 금품 수수 의혹이 새롭게 제기되고, 아태재단을 둘러싼 로비, 금품수수 의혹이 정점을 향해 치닫던 시점이었다.
이 같은 상황과는 별개로 민주당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도입한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 노무현, 당 대표 한화갑’이 4월27일 확정됐다.
이처럼 권노갑 전 고문의 구속 전후 정치적 상황은 ‘지는 해’와 ‘뜨는 해’가 막 배턴 터치를 하려던 시점이었다. 더욱이 DJ정권 출범의 산실 아태재단의 운영 책임을 맡았던 김홍업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사건이 연일 새롭게 불거지면서 ‘불똥’이 자칫 청와대로 직접 튈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이 같은 시점에 권 전 고문의 ‘5천만원 수수 의혹’이 갑작스레 불거져 나왔다. ‘지는 해’ 김대중 정권 입장에서는 ‘안정적 임기종료’를 위해 자꾸만 청와대로 향하는 의혹의 화살을 흐트릴 ‘화제’가 절실하던 시점이었고, ‘뜨는 해’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민주당 대표 입장에서는 향후 대선 정국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는 ‘의혹으로 얼룩진 과거 실세의 퇴장’이 요원하던 시점이었던 셈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미묘한 시점에 ‘2인자’ 권노갑 전 고문의 구속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권 전 고문을 구치소로 불러들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진승현씨와 김은성씨가 구속된 시기는 각각 2000년 12월과 2001년 12월이었다. 반면 두 사람이 권 전 고문에게 청탁을 위해 돈을 건넸다고 진술한 시기는 2002년 4월. 오랜 시차를 두고 구속된 두 사람이 대통령의 아들들이 연루된 의혹이 한창 폭로되던 시점에 갑자기 권 전 고문의 자금 수수에 대해 진술한 배경에 자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물론 검찰의 집념이 담긴 수사의 개가로 볼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러나 진술의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진술 시점의 ‘절묘함’은 새로운 의문을 낳고 있다.
당시 정황에 비춰볼 때 국민의 정부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군림했던 권 전 고문이 임기 종료와 대선을 앞두고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전격 구속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만약 항소심 재판에서 권 전 고문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질 경우 진승현씨와 김은성씨가 왜 당시 그런 진술을 했는가에 의혹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 권 전 고문 주변 인사들은 벌써부터 당시 청와대 인사를 ‘배후’로 거론하고 있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권 전 고문은 “짚이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얘기할 때가 아니다”며 즉답을 피했다. 다만 권 전 고문은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는 법”이라고 언급해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