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기쁨도 잠시 김 할머니를 포함한 일가 생존자들은 천신만고 끝에 받은 국가배상금을 한 업체에 투자했다가 사기를 당하면서 두 번이나 형언할 수 없는 피해자가 됐다.
김순자 할머니가 자신이 고문받던 남영동 대공분실(현 민주인권기념관) 방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삼척 일가족 고정간첩단 사건은 어떻게 해서 발단됐고 어떠한 사건이었나.
“친정과 진외가(아버지 외가) 두 집 식구 12명이 고정 간첩으로 조작돼 고초를 당한 사건이다. 6·25전쟁을 계기로 행방불명된 가족이 있는 일가가 많다. 아버지가 그렇게 행방불명됐다가 북한에서 갑자기 찾아온 외사촌 동생을 신고를 하지 않고 밥 해주고 잠재워줬다고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당했다. 일가 대부분 삼척 농촌에서 농사짓던 사람들이었다. 어머니는 문맹이었고 이름도 못 썼다. 국가기밀을 누설했다는데 우리가 국가기밀을 어떻게 알겠는가. 1983년 우리 아버지와 진외가 가장 두 사람이 한 날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했다. 나머지 10명은 각각 무기 징역을 비롯해 징역 5년∼10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일가 모두 남영동 대공분실에 잡혀가 온갖 고문을 당했다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남영동 고문실 방방에 다 우리 가족이 들어가 고문을 받고 있을 때 내는 비명 소리가 너무 괴로웠다. 난 1987년 6·29선언의 촉매였던 박종철 열사가 숨진 방에서 고문 받았다. 자기들 마음대로 고문하고 싶으면 고문하고 때리고 싶으면 때렸다. 나중에 동생 얘기를 들어보니까, 고문을 하던 사람이 동생에게 짬뽕을 시켜와 ‘건더기만 먹고 국물은 놔두라’고 했단다. 그리고 고문하는 사람은 동생이 남긴 짬뽕 국물을 동생 코에 쏟아 부었다고 한다.”
―가족에게 간첩가족이라는 오명은 지워지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살아 왔나.
“나는 남영동에 끌려가기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보험회사에 다니며 어린 1남 2녀를 키우는 평범한 가정주부였고 남편은 간첩을 잡는 방첩대 소속이었다. 하지만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된 이후 남편과 이혼했다. 5년 2개월의 실형을 살고 출소한 이후 나와 아이들은 간첩가족이라고 온갖 멸시와 조롱을 당했다. 나는 보안감찰법으로 인해 파출부도 할 수 없는 등 생계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사노라니 많이 힘들었지만 목숨이 붙어있으니 살았다.”
―일가 모두가 무죄를 확정받기까지 재판과정은 어땠는가.
“노무현 대통령 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위원회 설립 취지와 활동을 보고 가족들과 논의해 재심을 신청하기로 했다. 2009년 위원회의 재심 권고로 2014년 4월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지면서 다시 재판을 받았다. 결국 2016년 일가 12명이 모두 무죄를 확정 받았다. 무죄 확정을 살아서 보지 못한 가족들도 있었다. 현재 조작사건에 연루됐던 일가 12명 중 나를 포함해 4명만 생존해 있다.”
―무죄로 받은 국가배상금 상당액을 A 사기업체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봤다는데.
“A 업체에서 이익금을 많이 준다고 했다. A 업체 사람이 ‘회사가 엄청 돈을 벌고 기부도 많이 한다’고 했다. 투자를 하면 투자금으로 휴대폰 관련 장비 등을 도매로 들여와 이익을 많이 창출하는 사업을 한다고 했다. 은행에 넣어봤자 이자도 적고 해서. 그렇게 투자했지만 A 업체는 약속했던 이익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가족과 같이 투자했고 피해자가 됐다. 현재 피해자들은 A 업체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철저히 수사해 피해를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주범은 안 잡혔다.”
―현재 1만 2700여 투자자들로부터 1조 960억 원을 가로챈 다단계 금융 사기업체 IDS홀딩스 피해자연합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소감은.
“IDS홀딩스 사건으로 많은 피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정부가 이런 초대형 사기사건 피해자를 보호하고 책임을 져야 되는데 오히려 정부가 사건에 개입하고 방관해 이렇게 피해를 키웠다. 사기사건 피해자들에게 위로의 말씀이 되겠냐마는 욕심이 죄인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잘 살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죄인인가. 아니다.”
―정부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아직도 정부는 우리에게 공식 사과를 하지 않았다. 정부가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게 생활여건을 만들어줬으면 한다. 정부는 사기꾼들이 없게 해 달라. 일가족을 간첩단으로 조작해 고문을 하고 형벌을 받게 하는 것은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국민들은 힘이 없다. 국가의 힘으로 사기꾼들이 사기를 쳐서 사람들을 어렵게 만드는 것에 대해 강력한 형벌로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사·내레이션=장익창 기자 sanbada@ilyo.co.kr
영상촬영·편집=문성재 PD yayoong@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