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5일 재·보선에서 당선된 후 기자회견장에 서 활짝 웃는 유시민 당선자. 이종현 기자 | ||
재·보선 직후 민주당에서는 한동안 주춤했던 개혁신당론이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고 한나라당의 개혁세력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더불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다선 중진의원들에 대한 세대교체 압력이 높아지는 등 정치권 전체가 세대교체와 정계개편의 격랑에 휩싸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재·보선 결과를 냉정하게 분석해보면 유 당선자와 개혁당의 정치적 역량이나 현주소는 정치권이나 언론이 부여하고 있는 의미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 유 당선자는 이번 선거에서 1만4천8백여 표를 얻어 1만3천3백여 표를 얻은 한나라당 이국헌 후보에게 1천4백여 표를 이겼다.
이번 선거에서 여당인 민주당이 독자적으로 후보를 내지 않은 데다 정대철 대표를 포함해 주요 당직자들과 신주류 핵심 인사들이 총력지원을 한 것에 비하면 결코 충분한 표차로 보기 어렵다. 한나라당 출신으로 이 지역 토박이인 ‘하나로 국민연합’의 문기수 후보가 출마하지 않았다면 유 당선자가 패배했으리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문 후보가 출마하지 않았다면 문 후보가 득표한 2천7백여 표 중 대다수가 이국헌 후보에게 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 일각에서는 유씨 당선의 정치적 의미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구주류의 한 의원은 “단지 개표결과의 수치적 분석에 의거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며 “유 당선자가 본인이나 개혁당이 주장해온 ‘지역주의 타파’나 ‘정치개혁’이란 명분 때문에 당선된 것인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유 당선자의 주요 지지세력은 역시 개혁지향적인 표심이었지만 당락을 결정한 것은 호남 표심을 포함한 ‘지역주의 정서’라는 것이다. 유 당선자는 선거를 앞두고 상대후보인 이국헌 후보에 비해 열세로 평가받다 연합공천 후보로 민주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이 후보를 근소한 차로 앞서갔다.
그러나 유씨는 선거운동이 계속되면서 이 후보와의 표차를 벌이지 못했고 오히려 이 후보의 조직표에 밀리는 양상마저 보였다. 이와 관련해 개혁당과 민주당 내에서는 두 가지 분석이 제기됐다. 하나는 유씨 자신이 정치적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해당 지역의 호남 출신 유권자를 포함한 민주당 지지 표심이 유씨에게 쏠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 덕양갑의 호남향우회에서는 유씨에 대한 지지가 50%대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 민주당 자체 분석이었다. 이에 따라 민주당에서는 ‘3패 우려설’ 등을 흘리며 호남 출신 표심의 결집을 유도했고 선거 막바지에 호남향우회의 유씨 지지가 70%를 넘어서면서 결국 유씨 승리로 선거가 마무리됐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유 당선자가 내세워온 ‘정치개혁’이란 명분이 적지 않게 훼손됐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당장 민주당이 중앙당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 ‘호남 표심’ 결집까지 유도한 것 자체가 ‘정치개혁’과 어느 정도 상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유 당선자 본인은 선거법을 제대로 지켰겠지만 민주당 지원 과정 등에서 유 당선자나 개혁당의 이미지와 부합하기 어려운 이러저러한 문제점이 노출됐다는 지적도 있다.
유 당선자는 지난 25일 기자회견을 통해 “선거를 치르면서 정치인들이 왜 지역주의에 묶이는지 실감했다”고 말해 지역주의가 선거에서 어느 정도 작용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이 같은 정황분석에 대해 민주당 신주류 내에서도 공감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유씨 당선 이후 민주당 신주류들이 한결같이 과감한 정당 개혁이나 신당창당을 주장하고 있지만 일부는 개혁당과의 연대를 통한 신당창당 등 정계개편에 대해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개혁당과의 연합공천 결과가 이처럼 기대 이하인 점을 감안하면 개혁당과의 신당창당이 차기 총선에서 승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님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결국 유씨의 당선은 민주당 내 개혁신당 창당 논의의 촉매제가 될 수 있지만 신당창당의 핵심동력이 될 것으로 보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 가능성이 높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