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한 신용정보업체 관계자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최근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운 외국 신용업체들이 잇따라 한국시장에 상륙하면서 토종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국내시장을 노크하고 있는 곳은 세계적인 조직망과 자금력, 그리고 막강한 정보력을 갖춘 론스타, GE캐피탈 등이다. 이들은 올 하반기부터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영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부터 국내 신용정보 시장은 ‘해외파 대 국내파’ 간의 불꽃 튀는 시장쟁탈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신용정보업체들이 부실채권을 해결해주고 채권자로부터 받는 수수료율은 단기 채권의 경우는 총액의 15~20%, 장기채권의 경우는 총액의 40%까지 받고 있다.
최근 국내 신용정보시장은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개인 신용불량자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면서 신용카드 채권, 소액 개인 대출 미수금 등 부실채권이 급증해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실제로 금융권에서는 이 사업을 두고 ‘황금알을 낳는 신종 거위’라는 표현을 쓸 정도다.
신용정보업계 관계자는 “신용정보업은 경기가 나쁘건 좋건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경기가 안 좋을 때는 부실채권 회수율이 낮지만 물량 자체가 많은 반면 경기가 좋으면 물량은 줄어들지만 채권 회수율은 높아진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국내 신용정보 업체 수는 모두 26개. 이들이 올린 매출 총액은 6천4백억원 정도. 이는 전년(2001년도)보다 무려 23.4%(1천2백여억원)나 증가한 수치다.
현재 활발하게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 있는 업체로는 미래신용정보, 솔로몬신용정보, 고려신용정보 등 18개사 정도. 이들은 지난해 연말을 기준으로 매출뿐 아니라 순익에 있어서도 전년 대비 20%대의 상승률을 기록할 만큼 높은 신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더 이상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론스타, GE캐피탈 등 외국 기업들이 국내 신용정보시장에 뛰어들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막강한 자본력과 정보망 등을 앞세워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GE캐피탈의 경우는 국내 은행 및 카드사 등 금융기관 인수를 동시에 추진중이어서 신용정보업을 향후 국내 금융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가장 강력하게 국내 신용정보시장으로 달려들고 있는 곳은 론스타 펀드. 지난 6월 론스타 펀드의 계열사인 LSH홀딩스는 규모가 작은 신용정보업체 중 하나인 신한신용정보의 지분 49%를 매입했다.
당시 신한금융지주회사는 자회사의 사업기반 확대를 꾀하기 위해 론스타측에 신한신용정보의 지분 49%를 15억3천만원에 팔았다. 이로써 신한신용정보는 론스타의 자금을 등에 업고 순식간에 업계 4위(매출액 기준)에서 1위로 뛰어올랐다.
이후 합작법인이 된 신한-론스타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부실채권 및 론스타로부터 4천억원 상당의 카드채권을 위임받아 추심 업무를 진행중이다.
그러나 신한-론스타의 1위 지키기도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일 미국 투자금융사인 GE캐피탈이 금감원에 서울보증보험, 삼성캐피탈 등과 함께 신용정보회사 설립을 위한 예비허가 신청을 했기 때문.
특히 GE를 주축으로 채권 추심업만을 전문으로 하게 될 이 신용정보회사는 자본금만 1백억원이 넘는 대형 회사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동안 대표적인 신용정보업체였던 미래신용정보, 솔로몬신용정보, 고려신용정보 등의 자본금이 20억∼30억원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규모 면에 있어서도 월등히 앞서는 것이다.
당초 GE캐피탈이 국내시장에 진출할 것으로 알려지자 현대캐피탈, 삼성캐피탈 등은 앞다퉈 GE와 합작을 모색했다. 그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GE-삼성-서울보증보험이 손을 잡는 구도가 형성됐다는 것.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GE의 경우 그동안 카드사 인수 등 말이 많았으나 철저한 계산을 통해 삼성, 서울보증보험 등과 손을 잡은 만큼 그 영향력이 가공할 수준인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여기에 지난해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이 손을 잡고 자본금 50억원으로 설립한 A&D신용정보도 향후 신용정보시장에서 태풍의 눈으로 등장할 전망이다. 이 회사도 세계적인 은행인 도이치방크가 전체 지분 중 35%를 갖고 있어 순수 토종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 같은 해외파들의 융단폭격에 대한 국내업체들의 맞불작전도 만만치는 않아 보인다. 현재 토종 기업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구분된다.
국민은행, 우리은행 등 시중은행을 모회사로 두고 있는 업체와 미래신용정보(LG그룹이 대주주), 글로벌신용정보(SK그룹이 대주주) 등 대기업을 배경에 두고 있는 곳으로 나뉘는 것.
지난 1월에는 농협 자회사인 농협자산관리가 채권 추심업을 허가받아 신용정보시장에 신규 진출했다. 지난 6월에는 지방은행인 부산은행이 30억원을 들여 부산신용정보(주)를 설립, 현재 전산설비 등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부산신용정보는 오는 9월부터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해외 기업들의 공세에 맞서 기존 국민, 우리은행 등의 채권추심부서에선 인력보강작업에 본격 나섰고, 미래, 솔로몬, 고려신용정보 등도 고객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막강한 자금력과 정보력 등의 강점을 앞세운 외국회사의 대공세에 맞선 국내 기업들의 전략은 국내 시장에서 쌓은 노하우와 기존에 장악한 판로를 최대한 마케팅에 유리하게 활용하겠다는 것. 따라서 토종기업과 외래기업 간의 불꽃튀는 경쟁은 누가 승리할 것인지 쉽게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금융자본이 국내에 투자하는 것을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지만, 향후 이들이 자금력을 앞세워 구조조정회사 등의 경영권을 수중에 넣는 등 금융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특히 이들이 국내 알짜기업의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장악할 경우 상당수 우량기업이 외국 신용정보회사의 수중에 넘어갈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