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만 해도 그렇다. 지난 정권에서 인기를 끌었던 광화문 신문로 등지의 ‘코스식 고급 한정식’ 식당 대신 인사동이나 삼청동의 저렴하고 정갈한 식당이 그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는 것. 대표적인 곳이 인사동에 있는 ‘동루골’이다.
주인 나경희씨는 대구 출신이다. 10여 년 전 서울로 올라와 음식점을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 94년 문인들의 단골 술집이던 ‘탑골’이 사라진 뒤 그 빈자리를 메운 곳이 바로 동루골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문단 술꾼들이 주로 드나든다. 일산에 살고 있는 시인 김지하씨도 서울에 오면 가끔 들른다고 한다. 시인 강형철씨(한국예술문화진흥원 사무총장)도 이곳의 ‘오랜 친구’다.
원래 동루골은 안국동 참여연대 뒤편과 마포경찰서 근처에 자리를 잡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강 시인이 주인 나경희씨에게 “시내로 진출해서 제대로 한 번 해 보라”고 권유해서 이곳 인사동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사한 뒤로도 옛 단골들이 그대로 드나들 만큼 동루골 팬들의 성원도 대단하다고 한다.
정치권 단골도 많다. 주로 노무현 정부의 인사들이다. 이강철 대통령 정무특보는 주인 나씨와 오랜 기간 친분을 나누고 있는 사이. 그리고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도 옛날 통추 시절부터 이곳에 자주 드나들었다. 민주당 신주류인 김원기 고문과 이상수 사무총장도 가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은 이곳에 오면 주인과 흉허물 없이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친하다고 한다. 그밖에 김근태 이부영 임종석 의원도 자주 찾는다.
그렇다면 왜 동루골이 새 정부 인사들 사이에서 이처럼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일까. 일단 편안한 분위기와 저렴한 가격 정도면 손님들의 입맛을 맞추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을 자주 출입하는 민주당 한 관계자는 “동루골은 다른 인사동 음식점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고 분위기도 편안하다. 점심 2만원, 저녁 3만원으로 다른 한정식 집에 비해서 싼 편이다. 이곳 단골은 주로 옛 통추 멤버들이다. 그들은 지난 정권에서 가난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다. 고급 한정식집이나 룸살롱에 갈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분위기 좋은 곳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다 보니 단골이 된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인 아주머니의 손님 접대가 정성스럽고 정감 있어서 계속 손님들의 발길을 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인 나경희씨는 언론의 관심에 대해서는 몹시 부담스러워했다. 그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일부 정치인들과 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곳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의 사생활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밝히고 싶지 않다. 나는 신실한 마음으로 음식점을 운영하고 싶다. 단골들의 생활이 외부에 알려져 (입소문을 타고) 내 사업이 더욱 번창하는 것은 정말 바라지 않는다.”
나씨는 참여연대 운영위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참여연대 회원들에게는 음식값 일부를 할인해준다고 한다. 나씨는 이에 대해 “참여연대 회원들이 자주 오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민변 회원들도 이곳에서 자주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한편 서울 서대문에 있는 한정식집 ‘수정’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시절 자주 가던 곳이었다. 그래서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동교동계 인사들의 단골집으로 소문나 한때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문민정부 시절에는 YS가 애용했던 신문로의 한정식집 ‘향원’이 인기를 많이 끌었다고 한다. 지금은 새 정부 인사들이 이들 음식점에 자주 드나들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정치권 인사들의 매력적인 ‘회합장소’로 손꼽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