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의도 증권가의 야경. |
지난 4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은행법 개정안에는 은행 지배구조 관련 조항을 정비하는 내용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이사회에서의 사외이사 비율을 현행 2분의 1 이상에서 과반수로 확대하는 동시에 사외이사 결격요건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은행지주사의 상임 임직원은 계열은행의 사외이사가 되는 것이 금지된다’는 내용의 개정 은행법 22조 7항이 금융권의 눈길을 끌고 있다. 우리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등 국내를 대표하는 대형 금융지주들이 은행법 개정안에 저촉되는 사외이사 구성을 이루고 있는 까닭에서다.
우리금융의 경우 지주사 임원 3명이 우리은행 광주은행 경남은행 등 계열은행의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다. 우리금융의 이팔성 회장은 우리은행의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며 김경동 수석전무와 박인철 상무는 각각 광주은행과 경남은행의 사외이사로 등재돼 있다. 신한금융의 사정도 비슷하다. 신상훈 대표이사 사장과 위성호 부사장이 나란히 신한은행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그런데 은행법이 개정됐다 해서 이들 금융지주들이 당장 사외이사진 구성에 손을 댈지는 의문이다. 이들이 더 중요시 여기는 금융지주사법이 있기 때문이다. 이 법 39조 2항은 ‘기타 금융관련 법령에도 불구하고 금융지주사의 임직원은 자회사의 임직원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다 보니 국회에서 통과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은행법 개정안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4일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논평을 통해 “(사외이사 겸직 관련) 금융지주사법상에는 개정 은행법 조항과 반대로 해석될 수 있는 조항이 있어 이를 시급히 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경제개혁연대는 “자본시장법 보험업법 여신전문금융업법 상호저축은행법 등에도 개정 은행법과 유사한 사외이사 자격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자본시장법 보험업법 여신전문금융업법 상호저축은행법 등에 포함된 사외이사 선임 규정에 따르면 최대주주 혹은 최대주주의 특수 관계인, 계열회사의 상근 임직원이거나 최근 2년 이내 상근 임직원이었던 자는 계열 금융투자업자의 사외이사가 될 수 없다. 이런 법규들을 일일이 적용한다면 금융지주사 임원들이 계열은행뿐만 아니라 금융 자회사들의 사외이사를 맡는 것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 왼쪽은 신한은행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신상훈 신한금융 사장, 오른쪽은 우리은행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
지주사 임원의 사외이사 겸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된 금융지주들은 일단 사외이사 교체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있다. 지주사 고위 임원이 계열은행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는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비공식적으로 당국에 확인한 결과 금융지주사법에 따르면 된다는 답변을 얻었다”며 “계열은행 사외이사 교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금융지주사법엔 ‘다른 법령에도 불구하고 금융지주사의 임직원이 자회사 임직원이 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으니 우린 그 법을 따를 뿐”이라고 말했다. 지주사 임원의 자회사 사외이사 겸직을 고수하고 있는 다른 금융지주 측도 “금융지주사법이 개정되지 않는 이상 현재 이사회 구조를 바꿀 필요는 없다”며 사외이사진 구성에 변화가 없을 것이란 입장을 보였다.
이들 금융지주들은 “우리는 금융지주사니까 금융지주사법을 따른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은행법 개정을 통한 사외이사 논란에 편치 않은 기색은 역력해 보인다.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금융지주 관계자들은 “(회사와 담당자의) 실명을 거론하지 말아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정부당국과 정치권이 만든 법안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여 괜한 마찰을 부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선 금융지주 전·현직 임원들이 계열은행 사외이사진에 대거 포함돼온 까닭에 계열은행 이사회가 지주사 입김에 휘둘린다는 이른바 ‘거수기’ 논란이 줄곧 제기돼 왔다.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이 주요 재벌 계열사 사외이사 못지않은 거액의 보수를 받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들의 역할에 대한 갑론을박도 커지는 상황이다. 여기에 은행법 개정안 통과가 맞물리면서 사외이사 겸직 논란에 대한 금융지주들의 부담이 결코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지주들이 금융지주사법을 따른다고는 하지만 금융지주사 임원을 사외이사로 고용한 곳은 은행이기 때문에 은행들은 은행법을 따라야 한다는 딜레마가 있다”며 이번 사외이사 겸직 논란이 간단히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렇다 보니 금융업계의 시선은 자연스레 금융산업 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위원회(금융위)를 향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위가 은행법 개정안과 금융지주회사법 중 어떤 것을 우선순위로 정하든 간에 은행권 사외이사 겸직 논란을 쉽사리 가라앉히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