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탤런트 선우용여(오른쪽)와 전원주가 지난해 한나라당 이재훈 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모습.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의정부지방검찰청 형사5부(부장 한동영)는 6·2 지방선거에서 시의회 의원 공천을 받도록 해주겠다며 수천만 원을 수수한 혐의에 대해 전원주를 조사하고 있다. 전원주는 친분 있는 유력 정치인에게 말해 한나라당 시의원 공천을 받게 해 주겠다며 오 아무개 씨(59)에게 3000만 원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전원주는 “음식점 개업식에 간 사례비와 오 씨를 소개해준 지인 최 아무개 씨가 빌려갔던 돈인 줄 알았다”며 “공천을 약속한 일도 없고, 돈은 이미 최 씨에게 돌려줬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전원주의 사례를 접한 개그맨 A는 평소 친분이 있던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상담을 구했다. 개그맨 A는 얼마 전 소개로 한 행사의 사회를 맡기로 해서 갔는데 지방 선거 출마 후보자의 사무실 개소식이었다고 한다. 일종의 행사라 생각한 그는 별 다른 생각 없이 사회를 봤는데 개소식이 끝난 뒤 사례비를 받는 과정이 영 찜찜했다고 얘기한다.
“선거 사무실 관계자가 저를 불러 은밀한 곳으로 데려가더니 사례비 봉투를 건넸어요. 그러면서 선관위 관계자들 눈에 띄면 안 된다고 하기에 깜짝 놀랐어요.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싶었죠. 며칠 뒤 전원주 선생님 기사를 보고 나도 선거법을 위반한 건 아닌지 불안해지더라고요.”
개그맨 A가 해당 선거 사무실 개소식에 사회를 맞게 된 것은 지인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해당 지인은 과거 연예계에서 성인가수 매니저로 활동하다 현재는 행사 전담 매니저로 활동하는 이였다. A에 따르면 요즘 그는 자신뿐 아니라 많은 연예인들에게 이와 유사한 선거 관련 일을 소개해주고 있다고 한다. 전문 브로커라는 얘기. 그런데 전문 브로커인 B 씨는 자신의 행위가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만약 연예인이 해당 행사에서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는 등의 공연을 하면 불법이지만 사회만 보는 것은 합법입니다. 또한 사례비를 받는 것도 문제될 게 없고요.”
과연 브로커 B 씨의 주장이 사실일까. 정확한 확인을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법규안내센터 측에 문의했더니 “연예인이 공연행위를 하면 제한된 기부행위에 해당돼 공식선거법 113조 위반”이라며 “다만 공연이 아닌 일상적인 사회를 보는 행위는 불법이 아니고, 통상적인 임금 수준의 사례금을 받는 것도 합법”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사안은 ‘통상적인 임금 수준’이다. 요즘 방송인 C는 절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면서 고민이 많아졌다. 친구 부친의 사무실 개소식 사회를 부탁받은 C는 방송 촬영 스케줄과 겹치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동료 방송인을 소개해줬다. 그런데 고맙다는 연락과 함께 친구 부친과 같은 당의 후보자 사무실 개소식에도 연예인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 그런데 저렴한 비용에 해당 연예인을 섭외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뒤 입장이 매우 난처해졌다. 그런데 C의 경우 이 부탁을 들어줄 경우 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다.
‘통상적인 임금 수준’에 대해 브로커 B 씨는 “아마 해당 사무실에선 개그맨 A에게 너무 많은 금액을 줬다고 생각한 모양”이라고 “너무 많이 받아도 문제지만 오히려 너무 싸게 받으면 더욱 문제”라고 얘기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법규안내센터 측은 “연예인마다 ‘통상적인 임금 수준’이 달라 명확히 얘기하기 힘들다”라며 “해당 연예인의 통상 행사비보다 많이 받으면 후보자의 불법 기부행위가 되고 적게 받으면 그만큼 연예인이 해당 후보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지원한 것이 돼 불법”이라고 설명한다.
브로커 B 씨는 “방송 출연이 뜸해진 연예인과 방송인에게 선거철은 한몫 챙길 수 있는 기회”라며 “특히 후보자가 많은 지방 선거철이 더욱 그런데 모두 합법적인 행사 출연이고 나 역시 브로커가 아닌 통상적인 행사 스케줄 매니저일 뿐”이라 항변한다. 그렇지만 개그맨 A의 경우처럼 지나치게 선거법 위반 공포로 인해 선거철 각종 행사를 마다하는 연예인이 많다고 한다.
문제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된 뒤다. 실제 지난 지방선거 당시 연예인이 이를 위반해 불구속 기소된 경우도 있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중견 탤런트와 개그맨 등 14명이 1인당 200만 원씩을 받고 선거운동에 참여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것.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연예인 14명이 무더기 불구속 기소된 사건으로 인해 이번 지방선거 풍경도 달라질 전망이다. 2006년 사건 당시 해당 후보자의 선거 운동을 도운 연예인은 불구속 기소된 14명의 연예인 외에도 3명이 더 있었지만 금품을 받지 않아 수사 대상이 되지 않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법규안내센터 측은 “선거사무원으로 등록된 경우 법이 규정한 일정 수준의 임금은 받을 수 있지만 등록하지 않고 자원봉사자 차원에서 선거운동을 돕는 경우에는 별도의 사례비를 받으면 불법”이라며 “그렇지만 연예인이 선거운동 차원에서 공연 행위를 하면 불법인데 연설이나 유권자와 악수를 하거나 사인해주는 행위는 공연이 아닌 통상적 선거운동으로 본다”고 설명한다.
결국 연예인이 선거운동에 참여하는 길은 선거 사무원으로 등록하는 것, 사례비 없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것 등이 있는데 두 경우 모두 공연행위를 해선 안 된다. 2006년 사건은 자원봉사자 형식으로 선거운동을 한 연예인 14명이 금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된 것으로, 이번 지방선거에선 이런 사례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대신 선거사무원으로 등록하고 한 후보만 돕는 방식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 경우 역시 다른 선거 사무원과 같은 수준의 사례비만 받아야 하는데 연예인 행사비에 턱없이 모자란 액수다. 결국 상당한 규모의 뒷돈이 오고갈 가능성이 크다.
순수한 의미로 선거 운동에 뛰어드는 연예인도 있지만 선거철을 한몫 잡는 행사철로 생각하는 연예인도 많다. 유권자들이 스스로 거주 지역 선거운동에 참여하는 연예인들을 좀 더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