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의 비담 역할로 정상의 인기를 누리게 된 배우 김남길. 그는 예명 이한으로 활동하던 시절 일찌감치 동성애자 역할을 연기한 바 있다. 4년 전 개봉한 저예산 영화 <후회하지 않아>가 바로 그것. 그는 재벌 2세인 동성애자 역할을 연기했는데, 작품 속 배역을 위해 상대 배우와 매일같이 사랑의 대화(?)를 나누었던 일을 고백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자신의 첫 영화 주연작이라는 부담감이 컸는데, 특히 자연스러운 동성애자의 모습이 좀처럼 표현되지 않아 연기에 무척 애를 먹었다고 한다. 절치부심하던 그는 주위의 도움만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해 스스로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터득한 방법은 극중 상대 배우인 이영훈과 촬영장 안팎에서 연신 “우린 정말 사랑하는 거야. 사랑해” 등의 밀어(?)를 속삭이며 스스로에게, 혹은 서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이었다.
이런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하며 그는 결국 작품 속 역할에 빠져들게 되었는데 개봉 후 그가 꼽은 최고의 칭찬은 다름 아닌 “정말 동성애자인가요?”라는 질문이었다고 한다. 다만 칭찬을 넘어 실제로 그를 동성애자로 보는 시각에 대해 김남길은 “그 당시 여자 친구의 응원을 통해 작품에 몰두할 수 있었다”며 자신의 성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동성애 연기를 하는 배우들에게 가장 어려운 장면이 뭐냐고 묻는다면 백이면 백 애정신이라 답한다. 지난 2008년 개봉한 영화 <앤티크 : 서양골동양과자점>에서 게이 역할을 맡았던 배우 김재욱은 상대 배우와 애정신을 찍을 당시의 고생담을 털어 놓은 바 있다.
그는 애정신을 찍기 한참 전부터 상대 프랑스 배우의 사진을 입수(?)한 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라며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고 한다. 얼마 뒤 문제의 애정신을 찍기로 한 날. 큰 키의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는 상대 배우를 처음 접한 순간 김재욱은 정말로 심장이 떨릴 정도로 설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성정체성이 흔들리는가 생각했던 것도 잠시, 막상 촬영이 시작되자 그는 “뜨거운 마음(?)과는 달리 몸은 내 마음대로 따라주질 않았다”며 “경험해 보지 못한 스킨십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 김남길, 김재욱, 정찬 |
그런가 하면 영화 <쌍화점>에서 강도 높은 키스신을 펼쳤던 배우 주진모와 조인성도 촬영을 앞두고 긴장했던 일화를 털어놓은 바 있다. 영화 촬영 당시 동성과의 키스신이 썩 내키지 않았다는 주진모는 결국 촬영 당일 감독에게 “동성애의 모습만 가볍게 표현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유하 감독은 화를 내며 사실적인 묘사를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결국 두 배우의 키스신 촬영이 시작됐다. 여기서 이들 두 배우가 선택한 방법은 다름 아닌 취중촬영. 동성 사이의 키스신에 영 자신이 없던 두 사람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종이컵에 독한 코냑을 따라 나눠 마신 뒤 열렬한 키스신에 돌입했다고 한다. 당시 조인성이 키스신을 앞두고 주진모에게 건넨 말이 나중에 화제가 됐다. 대개 여배우들이 남자 배우와의 키스신을 앞두고 “오빠만 믿을게요. 잘 부탁드려요”라고 말하곤 하는 데 이날은 조인성이 주진모에게 “형만 믿을게요. 잘 부탁드려요”라고 말했다고.
배우들에게 동성애 연기는 특별한 추억을 안겨주기도 한다. 지금처럼 동성애 연기가 환영받지 못하던 시절인 2002년 영화 <로드무비>를 통해 동성애자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는 평을 받은 배우 정찬은 “영화 개봉 이후 나를 찾아와서 커밍아웃한 팬들의 숫자를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였다”며 “그 작품이 팬과의 색다른 소통의 통로가 됐다”고 얘기한 바 있다. 본인 역시 <로드무비>가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준 잊을 수 없는 작품으로 기억된다는 말과 함께.
그런가하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대남보’ 역할로 출연한 배우 류상욱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헬로우 마이 러브>를 통해 절친이 생겼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 역시 이 영화에서 신인 배우인 민석과 함께 동성애 연기를 소화했는데 촬영 초반부 둘이 미처 친해지기도 전에 키스신을 촬영해야 했다고 한다. 그 또한 복분자주를 연신 마시며 그 긴장감을 달랬다고 한다. ‘선을 넘기지는 말자’며 키스신을 앞두고 다짐(?)한 두 사람은 결국 멋지게 촬영을 끝냈다. 그리고 결국 이 두 배우는 키스신으로 시작된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지금까지 잘 이어오고 있다.
▲ 조인성, 주진모 |
국내 커밍아웃 1호 연예인인 홍석천은 요즘의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자신의 7년 전 출연작인 드라마 <완전한 사랑>을 예로 들었다.
“김수현 작가의 <완전한 사랑>에서 저는 캐릭터가 동성애자 설정이었을 뿐, 저의 사랑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 방송되고 있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 동성애자들의 사랑 이야기가 매회 나오고 있거든요. 조금 열린 사회가 됐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어 참으로 반갑습니다.”
덧붙여 그는 “동성애를 다루는 대중문화 콘텐츠가 나날이 많아지고 있는데 성적 소수자들을 위해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과 다양한 모습을 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