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부모님의 뜻에 따라 변호사가 될 수도 있었다. 아이큐 150이 넘고 15세에 대학에 들어가 문학과 미술에 조예가 깊었던 소녀는 예술가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샤론 스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이 ‘차세대 마릴린 먼로’가 될 거라고 말하곤 했다. 흑백영화 속의 클래식 스타들을 보며 판타지에 빠지던 소녀는 17세에 미스 펜실베이니아로 뽑히고 포드 자동차 모델이 되면서 ‘몸’을 밑천으로 살아가야 하는 세계에 발을 내딛는다. 하지만 그녀가 진정 ‘위험한 육체’가 되기까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980년 샤론 스톤은 스물두 살의 나이에 우디 앨런의 영화 <스타더스트 메모리>(1980)의 단역으로 데뷔한다(그녀는 이때를 “굉장한 경험이었으며, 성적으로 표현하면 순결을 잃었던 순간과도 같았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B급 액션과 호러를 전전하던 그녀는 서른 살이 넘은 나이에도 무명 배우나 마찬가지였다.
서른두 살이 되던 해, 그녀는 <토탈 리콜>(1990)에서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아내 역할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플레이보이>에 누드를 실으면서 섹시 스타로 발돋움한다. 그리고 드디어 <원초적 본능>(1992)이 도착한다. 30대 중반의 무르익은 육체와 강렬한 마성과 카리스마가 결합된, 절정에 올랐을 때 남자를 얼음송곳으로 찔러 죽이는 치명적 여인 캐서린 트러멜. 그저 그런 영화에서 조연 배우로 끝나버릴 수 있었던 그녀는 줄리아 로버츠, 킴 베이싱어, 엠마 톰슨, 미셀 파이퍼, 멕 라이언 등이 완강히 거절한 캐릭터를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덥석 물었다. 그리고 단 1초의 노출로 스타덤에 올랐다.
“폴 버호벤 감독은 나에게 적나라한 섹스 신이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난 설마 관객들에게 내 성기를 정면으로 보여주는 장면일 줄은 몰랐다.”
배우 자신도 몰랐던 이 장면은 관객들에겐 더욱 큰 충격이었다. 특히 그녀는 취조실에서 시종일관 담배를 피워대는데 남근의 상징인 담배가 타들어가면서 관계는 역전된다. 취조받는 그녀는 압도하고 취조하는 수컷들은 거세 공포를 느끼며 침을 삼킨다. 혹자는 그녀를 ‘남근을 지닌 여신’이라고 표현했는데 사디즘적인 섹스와 동성애를 즐기는 캐서린 트러멜이라는 캐릭터는, 말 그대로 ‘원초적 본능’을 위해선 그 어떤 행동도 감행하는 악마적 여인이다.
수직 급상승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녀는 이후 섹스 심벌로서의 명성과 싸워야 했다. 일단 그녀는 팜므파탈로 전형화되는 걸 거부했다. <슬리버>(1993)에선 희생자가 되었고 리처드 기어와 공연한 <마지막 연인>(1994)에선 커리어 우먼이었다. 두 영화가 실패하자 실베스터 스탤론과 액션 영화 <스페셜리스트>(1994)를 찍었고 <퀵 앤 데드>(1995)로 서부극에 도전했다. 그리고 <카지노>(1995)로 오스카 후보에 오르며 연기파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샤론 스톤이 ‘위험한 여인’이길 바랐다. <디아볼릭>(1996)처럼 남자를 절단 내는 영화로 귀환하길 원했다. <원초적 본능 2>(2006)가 만들어진 건 그런 이유다. 그녀는 <원초적 본능 2>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극장에 앉아 이렇게 말한다. 난 샤론 스톤이 무슨 말을 하던 관심 없어. 난 그저 그녀가 벗는지 알고 싶을 뿐이야. 이 영화에서 벗을까? 이 영화에서 그녀의 누드와 엉덩이를 볼 수 있을까?”
사실 이 영화는 대표적인 ‘만들어지지 않았어야 할 속편’이었고 샤론 스톤은 이미 40대 후반이었다. 그럼에도 제작사가 그녀에게 1360만 달러의 거금을 개런티로 지불하며 프로젝트를 밀어붙인 건, 사람들이 아직 캐서린 트러멜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졸작이었고 실패했지만 어쩌면 이건 샤론 스톤이 <원초적 본능>이라는 영화를 선택한 숙명일지도 모른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